옆 나라 일본에 ‘오리지널 러브’라는 뮤지션이 있다. 유명한 곡도 많고 가창력도 좋아서 1990년대에 음악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연말 음악 프로그램에 짱짱하게 나오곤 한다(부러워~).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그가 다른 팀 보컬이었을 때다. 그 팀은 당시엔 잘되지 않았고 나중에 엄청 잘되었는데, 앨범 속지에 당시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리더의 글이 있어서 ‘아 이런 사람도 인정받지 못한 시절의 설움은 그대로 남아 있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조금 얘기가 샜는데, 나는 그 인기 없던 시절의 앨범을 가장 좋아하고 그때의 수줍은 청년
도쿄를 좋아한 적이 없다. 도쿄에 처음 갔을 때 난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 만으로는 열아홉이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 전에 들른 오사카는 정신이 없었고, 교토에서는 태풍을 만났고, 넓고 조용한 삿포로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땅이 넓고 하늘이 커다란 곳은 이런 식으로 좋군. 그리고 다음 행선지가 도쿄였다.한적한 곳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도쿄는 너무 크고 시끄럽고 메마르게 느껴졌다. 나도 나름 서울에선 테헤란로를 무심하게 걸어 다니던 젊은이였는데 신주쿠나 시부야는 너무하다 싶었다. 이후에도 일본 관련 일을 하면서 도쿄에 종
지난번 글에, 시위에 공연을 하러 가면 울어서 노래를 못한다는 말을 적었다. 어떤 사람은 “그럼 더 뭉클하고 분위기가 좋지 않나요?” 묻기도 하는데 애석하게도 난 ‘꺽꺽’ 울기 때문에 더 이상 노래가 아니게 된다. 이걸 어떤 상황에 비유해야 할까. 무당이 굿을 하다가 갑자기 본인이 슬프다며 펑펑 우느라 옆에서 빌던 사람들이 뻘쭘해지는 그런 상황이 아닐지(굿판을 본 적은 없지만). 어이 형씨, 정신 차려! 울고 싶은 사람은 난데 당신이 왜 울어!그래서 ‘섭외가 와도 가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항상 가고 만다. 구미 옵티칼도 그랬
언젠가 누가 말했다. 너보다 어린 여자 뮤지션은 안 좋아하는 것 아냐? 나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즈음 이미 죽은 사람의 음악만 듣고 있었다. 3집을 내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도 우울증과 관련된 무엇이었던 것 같다. 음악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증세. 하지만 사실은 여성혐오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정말로 나보다 어린 여성을 안 좋아하고 있는 건데 단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것이라면? 그때부터 나는 백마를 타고 온 1990년대생 여성 뮤지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드디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았다. 장안의 화제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 이쯤 되면 장안을 넘어선 전 지구적 화제작이다. 사실 나는 공개되자마자 직감했다. 이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게 될 것을. 왜냐하면 여자아이들이 낮에는 케이팝 아이돌로 노래를 부르는데 밤에는 검을 들고 악귀를 때려잡는 내용인 데다가 자아까지 찾는단 말이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고명을 다 얹은 비빔국수 같은데? 조만간 봐야지.그렇게 감상하기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케이팝을 좋아하
매일 산책을 한다. 같이 사는 개 흑당이가 실외 배변만 하기 때문에 비바람이 쳐도, 폭염이 와도, 우리는 뚜벅뚜벅 산책을 한다. 전주로 이사를 오고부터 산책이 조금 더 좋아졌다. 사람이 적고, 풀밭이 많고, 길이 넓다 보니 개나 사람이나 마음이 더 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산책하며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산책용 플레이리스트도 열심히 만들게 되었다.제법 쿨한 플레이리스트도 있고(1990년대 여성 보컬 알앤비 중심) 제법 힙한 플레이리스트도 있고(클레어오 등 요즘 음악가 중심) 걸음이 더욱 힘차지는 플레이리스트도 있다(아무로 나미
‘잡지 전체가 시사 이야기이니 이 코너만은 음악 얘기로 조금 심각함을 덜고 가벼우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랬지만 첫 번째 글로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노래를 부른 얘기를 썼다. 두 번째 글에는 3·8 여성대회에서 사회를 본 얘기를 썼다. 세 번째 글에는 윤석열 파면이 선고된 날에 대해 썼다. 이제는 한갓진 얘기를 해도 되겠지···. 무슨 곡에 대한 얘기를 할지 은은하게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5월10일 새벽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또라이’ 같은 뉴스를 보았다. 국민의힘이 대선후보를 바꾼답시고 새벽 3시에 후보 신청을 받는
〈시사IN〉에 연재한다고 음악 코너에서 정치와 연관된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매번 생각하지만 어쩌다 보니 석 달째 연속으로 하고 있다. 나의 생활에 정치가 너무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4일은 날이 맑았다. 나는 확신과 함께 눈을 떴다. 오늘은 세상이 바뀌는 날이다. 강아지 흑당이에게 힘차게 말했다. “산책 가자!”요즘 산책할 때 음악을 자주 듣는다. 헤드폰을 쓰거나 이어폰을 꽂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을 종종 봤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산책은 산책, 음악 듣기는 음악 듣기.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안전도
지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열리는 한국여성대회 사회를 맡았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아직 겨울이 남아 있어 나는 광화문역에 내리자마자 급히 내복을 사 입었다. 〈시사IN〉에 연재하면서 꼭 정치적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지난달에 이어 또 집회 얘기를 하고 있다.행사는 정말 힘들었다. 진행하기가 어려웠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기운이 어마어마하게 쓰였다. 무당이 굿을 하고 나면 이런 느낌일까? 멋진 사람들을 보고 감동했다가(성평등 디딤돌 부문), 올해의 한심한 인간들을 비판했다가(성평등 걸림돌 부문), 이소선
2월8일 전북 전주의 윤석열 퇴진 시위에서 노래를 했다. 전주로 이사하고 언제 불러주나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건반 남메아리 선생도 모셨다. 개런티를 전부 그에게 줘도 그의 개런티 시세에 턱없이 못미치기 때문에 전주의 산해진미와 술상과 왕복 기차편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모셨다. 사실 그렇게 안 해도 그는 온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었다. 그 핑계로 내가 그 산해진미를 먹고 싶었던 걸지도···.무슨 노래를 할지 정해야 했다. 시위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는 항상 고민거리다.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