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의 김건희 특검 사무실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 ⓒ시사IN 이명익
서울 광화문의 김건희 특검 사무실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 ⓒ시사IN 이명익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논의가 다시 불거졌다. 3년 전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에는 비언론 매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 논의로도 확장되었다. 여전히 논란은 뜨겁지만 3년 전과 비교하면 그 국면이 다소 달라졌음을 느낀다. 징벌적 손배제도 도입 자체에 대한 찬반보다는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매우 반가운 변화다. 어떤 유형의 불법행위가 자주 발생할 뿐 아니라 그 해악이 중대해 일반적 배상책임 법리로는 피해 보전도 어렵고 억제 효과도 미미할 때, 징벌적 배상제도 필요성이 제기된다. 중대재해처벌법, 부정경쟁방지법, 환경보건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이미 같은 취지로 도입되었다.

악의적인 허위 보도가 우리 사회에 끼쳐온 해악은 어떠한가. 그로 인해 심각해진 언론 불신과 혐오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두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언론 행위에 대한 징벌적 배상 제도를 설계할 때 가장 강조되어야 할 원칙은 명확성이다. 징벌적 배상책임의 발생 요건이 무엇인지, 즉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어떠한 잘못을 했을 때 그 대상이 될 수 있는지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 기준의 애매모호함이 언론에는 강한 위축 효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당한 언론 활동을 탄압하려는 누군가에게는 추상적 개념 사용이 남기는 여러 해석이 곧 악용의 여지가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에 대한 입증책임 문제도 섬세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허위 보도에 따른 일반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도 판례는 통상 적극 요건(기사의 허위성, 손해 발생 등)에 대한 입증책임은 피해자 측에, 소극 요건, 즉 면책 요건(기사 내용이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음 등)에 대한 입증책임은 언론사 측에 각각 부담시켜왔다.

징벌적 손배청구 사건에서도 이러한 입증책임 분담 구도가 크게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면책 요건에 대한 입증 전반을 언론사 측에 맡기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몇 가지 세부 사항이 지켜졌음을 입증하면 그 면책 요건 충족이 간주되도록 함으로써, 언론사의 입증 부담을 경감해줄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 세부 사항이 저널리즘 원칙에 부합할 뿐 아니라 언론 현장에서 용이하게 점검 가능한 실무적 지침으로 잘 구성되어 법령에 적시된다면 어떨까. 언론사 징벌적 손배제도의 본래 목적, 즉 언론 환경 정화의 효과가 그 지침에 의해 선제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해당 지침이 기자와 언론사 데스크에게 징벌적 손배책임을 피하기 위해 꼼꼼히 챙겨야 할 일종의 체크리스트처럼 작동함으로써 나쁜 취재와 보도 행위가 미리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양측 모두 달라야 한다

3년 전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에서 민주당은 명확성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징벌적 손배제도를 만들려 했고, 언론계에서는 자율적 심의 기구가 마치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결국 아무 실익 없는 논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양측 모두 달라야 한다. 나쁜 언론에 대한 법률적 제재는 지금보다 훨씬 강화되어야 한다. 다만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한 언론마저 위협하는 징벌적 손배제도는 그 자체로 나쁜 제도다.

그래서 나는 기자들이 징벌적 손배제도 도입 논의에 적극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언론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 명확한 기준을 직접 제시하면 좋겠다. 나쁜 취재와 보도 행태를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지침들에 대해서도 직접 의견을 내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해왔던 기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길 수 있는, 징벌적 손배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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