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는 ‘이태원 참사’를 말할 때 늘 떠올리게 되는 사진이 하나 있다. 서울 지하철 경복궁역 부근에 위치한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집’에 가면 볼 수 있는 사진이다.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희생자 159명의 사진 중 유일하게 참사 이후에 촬영된 사진. 마지막 희생자, 고 이재현 군의 사진이다.
열여섯 살 고등학생 재현 군은 친구들과 이태원에 갔다가 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43일 후, 스스로 삶을 놓았다. ‘별들의집’에 걸린 그의 사진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부모에게 남긴 영상에서 가져왔다. 그 영상 속에서 그는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누군가의 미소에 그토록 아파한 적이 있었던가. 참사 이후 죽음을 결심하기 전까지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미소였다. 159명의 희생을 넘어 남겨진 이들의 아픔까지 품고 있는 미소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 사회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단 한 장의 사진을 깊이 새겨야 한다면, 재현 군의 그 영정 사진일 수 있겠다고.
지난 6월17일, 참사 2년7개월 만에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조사 개시를 선언했다. 특조위는 참사 전후에 국가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책 수립, 피해자 지원 대책 점검·개선 등을 해야 한다(이태원참사 특별법 제6조). 특조위의 이러한 사업들과 관련해 전하고픈 두 가지 바람이 있다.
첫째, 특조위가 반드시 해야 했으나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도 세세히 남겨주길 바란다. 특조위의 활동은 최초 조사 개시일로부터 1년3개월까지로 제한되어 있고(특별법 제9조), 강제성 있는 조사 권한을 갖지 못한 탓에 대상 기관이나 개인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점들로 인해 특조위가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서 갖게 된 바람이다. 어떤 기관이나 개인의 방해 혹은 협조 거부로 끝내 밝혀내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그 구체적인 경위가 꼼꼼히 기록되길 바란다. 시간이 부족해서 완수할 수 없었던 과제들도 구체적으로 제시되면 좋겠다. 관련 기록들은 특조위 조사 결과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고, 후속 사업 준비에도 필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누가, 어떻게, 진상규명을 방해했다는 사실 자체가 특조위가 밝혀내야 할 진실의 단편일 수 있다.
냉철한 진실의 기록이자 따뜻한 치유의 기록 되길
둘째, 특조위의 활동 기간 전체가 피해자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사회적 참사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에 활동가 혹은 법률가로서 직간접으로 관여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피해 당사자에게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때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더욱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참사 전후에 국가 부재를 넘어 국가 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국가의 모습이 특조위 구성원들의 진심 어린 마음과 섬세한 태도로 구현된다면, 고통스러운 경험을 재생해야 하는 시간도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특조위는 모든 조사 내용과 권고 사항, 활동 내용을 ‘종합 보고서’와 ‘백서’로 작성·공개해야 한다(특별법 제46조). 그 기록들이 냉철한 진실의 기록이자 따뜻한 치유의 기록이 되길 바란다. 재현 군이 마지막 순간에서야 되찾을 수 있었던 평온한 미소에 우리 사회가 올바르게 응답하는 기록이길 바란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다. 희생자 유족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참사의 본질은 피해자의 고통과 바람을 올바르게 이해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이태원 참사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아직 다 온전히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본질을 알려는 노력, 즉 그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을 특조위가 먼저 세심하게 해주리라 믿는다. 이태원 특조위를 마음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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