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나 고양이는 사람보다 작다. 몸 크기가 사람의 20분의 1 혹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동물 사체를 들여다보는 부검대도 그만큼 작다. 양팔 너비도 채 되지 않는다. 이 작고 차가운 테이블 위로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댄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동물위생시험소 동물질병진단팀에서 수의법의 검사를 담당하는 이현호(49)·유지숙(46)·이현경(33) 주무관(사진 왼쪽부터)이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죽은 사람이 부검대에 오르듯 의문사한 동물도 부검대에 오른다. 죽은 사람을 위한 학문이 법의학이라면 죽은 동물을 위한 학문은 수의법의학이다.
이들이 들여다보는 건 학대를 받아 죽은 걸로 의심되는 반려동물이나 길고양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들개나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의 사체다. 야생동물도 사람의 해코지 때문에 죽을 수 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전염병이나 광견병 같은 인수공통감염병 때문에 사망했다면 정부가 이 사실을 빨리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2023년 4월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전부 개정안에 따르면 ‘국립가축방역기관장’뿐만 아니라 ‘시·도 가축방역기관장’도 동물 학대 여부 판단을 위한 검사를 의뢰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학대로 의심되는 동물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에서 부검을 했다. 2019년에는 102건이었던 의뢰가 2023년에는 453건으로 늘었다. 이제 서울에서 발생한 동물 학대 의심 사건 사체는 이곳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으로 온다. 세 사람은 전국 지자체 최초의 수의법의 검사 담당 공무원이다.
부검 의뢰는 경찰을 통해서 받고 있다. 간혹 시민이 직접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지만, 구청 동물보호 업무 부서를 통해 관할 경찰서로 신고가 이루어지도록 하거나 관할 경찰서로 직접 신고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각 경찰서에도 공문을 보내 서울시에서도 수의법의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홍보한다. 원래 검역본부가 있는 경북 김천까지 가야 했던 경찰도 업무가 훨씬 편해졌다. 다만 아직 엑스레이나 CT, MRI 같은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아 건국대학교 동물병원과 업무 협약을 맺고 그곳에서 영상을 판독한다. 다시 경찰에게 결과를 통보하기까지 짧으면 1주, 길면 2주 정도가 걸린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지금까지 반려동물 총 20구, 너구리는 50여 구를 부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해 9월30일 의뢰된 첫 사건이다. “강남 아파트에 사는 까만 새끼 고양이였는데, 누군가 목을 잘라서 그 고양이를 돌보던 사람에게 보란 듯이 둔 거예요. 머리밖에 없었지만 부검을 해보니 죽은 후에 머리가 잘린 게 아니라 산 채로 머리가 잘린 걸로 밝혀졌어요.” 이현호 주무관은 끔찍한 사체 앞에서 드는 인간적인 감정보다 이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이코패스 강력범죄자의 흔한 행동 특성 중 하나가 동물 학대라는 점을 가슴에 새긴다. 동물을 지키는 일은 곧 사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한번은 이웃집에서 마당 개를 독살시킨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심장사상충으로 인해 죽은 경우도 있었다. 수의법의학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억울한 누명도 풀어줘야 한다. 20건 중 학대로 인한 죽음은 7건, 질병사가 4건, 나머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였다. 원인 미상은 부패가 심하거나 사체 보관 방법이 잘못돼 검사 결과 정확도가 떨어진 경우다. 검사를 의뢰할 계획이라면 사체를 냉동 보관이 아닌 냉장 보관을 해야 한다. 냉동할 경우 녹는 과정에서 조직에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원인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는 검역본부에서 오랫동안 수의법의 업무를 담당했던 선배들에게 자문한다. 지난달부터는 지자체 두 번째로 경기도동물위생시험소에서 수의법의 검사를 시작해 이들과 함께 결과를 논의하기도 한다. 국내 수의과대학에는 수의법의를 가르치는 곳이 없고 전공한 전문가도 없기에 업무 담당자들 간 교류가 중요하다. 해외에서는 수의법의팀이 학대 당한 걸로 의심되는 동물을 검사하고 그 주인으로부터 격리해 안전하게 보호하는 업무까지 담당한다. 부검대에 오르기 전 안타까운 죽음을 막는 것이 세 사람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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