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돌보미가 길고양이들에게 직접 밥을 주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길고양이 돌보미가 길고양이들에게 직접 밥을 주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라인.’ 건조한 제목이 달린 63쪽짜리 얇은 책자다. 하지만 여기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다. 지난해 12월27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발표한 이 가이드라인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최초의 길고양이 돌봄 매뉴얼이다. 지금까지는 지자체별로 자체 기준에 따라 길고양이 관련 사업·민원 응대 등을 해왔다. 물론 농식품부에서 발표한 이번 가이드라인도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자체에서 참고할 만한 공통의 기준선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중앙 부처에서까지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주민 간 갈등 때문이다. 가이드라인 발간을 이끈 농식품부 동물복지환경정책관실 동물복지정책과의 한 사무관은 “2018년부터 정부가 국비 지원 사업으로 중성화수술 사업을 보조해왔는데, 길고양이 관련 민원이 계속 들어왔다. 지난해 3월 중성화수술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중성화수술뿐만 아니라 적절한 돌봄까지 함께 이루어져야 갈등과 민원이 줄고 공존이 지속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후속 조치로 가이드라인 마련을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말에는 길고양이 돌보미(‘캣맘’ ‘캣대디’를 통칭하는 말로 ‘케어테이커’로 부르기도 함) 활동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격렬해졌다. 야생 조류 관찰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 ‘새덕후’에 올라온 한 영상이 발단이었다. 사냥한 새를 입에 문 길고양이 사진을 섬네일로 하고 있는 해당 영상의 제목은 ‘고양이만 소중한 전국의 캣맘 대디 동물보호단체 분들에게’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어진씨는 이 영상에서 “TNR(Trap-Neuter-Return, 길고양이를 포획해서 중성화수술을 한 뒤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은 개체 수 감소 효과가 없으니 입양을 해야 한다. 책임(입양)을 못 진다면 밥을 주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책적으로 정부 입장에서 ‘입양’은 선택지가 아니다.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고양이를 데려가 키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길고양이가 모두 입양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정부가 할 일은 두 가지뿐이다. 죽이거나, 번식을 제한하는 것. 둘 중 인도적인 방식은 번식 제한이다. 지난해 3월 농식품부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의 효과와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낸 이유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정부는 고양이가 발정기를 겪는 시기가 아닌 여름과 겨울에도 중성화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영역 동물인 고양이의 특성을 고려해 한 구역을 대상으로 집중 중성화수술을 하는 ‘군집 TNR’을 통해 개체 감소 효과를 더욱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길고양이 35만8000마리를 중성화시켰다. 그 결과 7대 특별·광역시의 ㎢당 마릿수는 2020년 273마리에서 2022년 233마리로 줄고, 새끼 고양이 비율은 2020년 29.7%에서 2022년 19.6%로 감소했다.

아울러 농식품부는 길고양이에 대한 통일된 의견 형성을 위해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길고양이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3개월 뒤인 2023년 6월29일, 농식품부는 동물보호단체·수의사회·학계·법조계·길고양이 돌보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길고양이 복지 개선 협의체(이하 협의체)’를 만들어 첫 회의를 열었다. 협의체에 참석한 오경하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 대표는 회의가 열릴 때마다 첨예하게 논쟁했다고 기억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우리 입장과, 반대 민원을 많이 받는 공무원 입장 사이에서 타협 지점을 찾아야 했다. 문구 한 줄을 가지고 한 시간 넘게 토론하기도 했다. 돌보는 입장에서는 더 욕심이 나고 아쉬운 지점도 있지만 초안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TNR을 한다는 건 한 사회가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공존할 수 있을까? 가이드라인의 목표는 이 질문에 대해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게 아니라, 비록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이 읽어도 합리적인 선에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공식적 문서로 남기는 것이었다.

길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는 일은 쉽지 않은 돌봄 노동이다. ⓒ시사IN 이명익
길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는 일은 쉽지 않은 돌봄 노동이다. ⓒ시사IN 이명익

길고양이 돌보는 건 쉽지 않은 돌봄 노동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하는 돌봄 방식은 ‘청결’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양만큼만 밥을 주고 바로 치워야 한다. 주변 이웃과 갈등을 빚지 않고 길고양이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방법이다. ‘허탕 치고 가는 고양이가 있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사료를 쌓아두면 냄새가 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조윤주 수의사(한국고양이수의사회 동물복지위원장)는 “길고양이를 돌볼 때, 이 행위가 정말 길고양이를 위한 것인지 나의 마음을 위한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밥을 굶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야 한다. 길고양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밥을 줘야 그때마다 건강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불쌍하게 여겨 지나가다 한 번씩 불규칙적으로 간식을 줘서는 안 된다. 주차장이나 차량 밑처럼 재산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간, 어린이들이 노는 놀이터나 길고양이가 차에 치일 수 있는 도로 위에서도 밥을 주면 안 된다. 밥만 챙겨주고 중성화수술을 해주지 않거나, 길고양이가 아파 보이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것은 올바른 돌봄이 아니다. 혼자 하는 게 벅차다면 동네에 사는 다른 돌보미와 함께 구역과 일정을 나눠 함께 보살필 수도 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좋으면 당신 집에 데리고 가서 살아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어쩌면 길에 사는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보는 것보다 더 고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나가 밥과 물을 챙겨주고 다시 흔적 없이 치우는 일, 쉽게 잡히지 않는 길고양이를 데려다 중성화 시키고 건강을 챙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돌봄 노동이다.

협의체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제 비로소 첫발을 뗐다고 말한다. 농식품부의 가이드라인을 살펴본 한 돌보미는 앞으로 사람들 인식에 맞추어 가이드라인을 조금씩 수정해나가면 된다며 기대를 내비쳤다. “세금으로 TNR을 하면 나라 살림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길고양이들이 최소한 어디 가서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아야 한다. 딱 그만큼이라도 허용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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