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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라는 말은 인적 드문 곳을 떠오르게 한다. 열대우림이나 초원, 최소한 인근 야산에는 가야 동식물의 터전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에도 생태계는 있다. 인간을 피해 다니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인간을 이용하는 생물들이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고 있다. 길고양이가 대표적이다. 고양이는 주차장에서 태어나고 주민들이 주는 사료를 먹으며 화단이나 지하실에서 죽는다. 수 세대 동안 살아온 아파트 단지가 없어지면 사람에게 의존해온 이 동물은 모두 어떻게 될까. 3월17일 개봉한 〈고양이들의 아파트〉(정재은 감독)의 관심사이다.

1979년 준공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164개 동, 5930가구이다. 고양이 250여 마리가 이곳에서 살아왔다. 주민들은 둔촌주공아파트 단지가 고양이들에게 “섬 같은 곳”이었다고 말한다. 차가 다니지 않고 먹이 주는 사람도 많아서 안전하고 풍족한 터전이었다는 의미다. 이곳 고양이는 겉모습부터 여느 길고양이들과 다르다. 털이 깨끗하고 살이 오른 고양이가 많다. 힘들여 먹이를 구하지 않아도 통조림이며 사료를 건네는 주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고양이 대다수는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다. 오히려 집고양이처럼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고, 앞에 드러눕기도 한다.

40년 이어온 ‘고양이 천국’이 어느 날 철거된다. 단지의 재개발이 확정돼서다. 2017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둔촌주공아파트의 풍경이 영화에 담겼다. 주민들이 아파트를 떠날 때부터 철거가 완료돼 착공에 들어갈 때까지다. 카메라는 먼저 ‘떠날 사람들’의 뒷모습을 좇는다. 재건축을 계기로 이사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밥 주던 고양이를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한다. 약국 주인은 줄곧 찾아오던 고양이 이름을 ‘공순이’라고 지었다. “공자처럼 점잖은 매력이 있어서”였다. 이따금 아픈 고양이가 보이면 ‘사람 약’으로 치료해주던 이 약국도 폐업을 결정했다. 전학을 가게 된 중학생들도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고양이를 부르며 “우리 이별이야”라고 말했다.

계절이 지나며 동네는 눈에 띄게 황량해진다. 나무는 뿌리째 뽑혀 어디론가 실려 가고 화단도 줄어든다. 사람이 떠난 건물을 동물만 배회하는 모습은 재난영화를 방불케 한다. 고양이는 삼삼오오 모여 갑자기 황무지가 된 단지를 배회한다. 굴착기를 피해 달아나던 고양이 한 마리는 깨진 유리문을 통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철거공사를 위해 문이 열려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간 이 고양이는 텅 빈 내부를 조금 둘러보다 흥미를 잃은 듯 도로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에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갇힌 채 날개만 퍼덕이는 까치도 등장한다.

남겨진 고양이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다만 이들을 어떻게 도울지를 두고서 생각이 갈렸다. 길고양이를 꾸준히 보살펴온 이른바 ‘캣맘’들은 종종 단지에 찾아와 사료를 주고 갔다. 반면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와 새를 촬영해온 사진작가는 “고양이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 더 야생에 가까운 상황을 만드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둔촌냥이’는 고양이를 위해 주민들이 만든 모임이다. 정식 명칭은 ‘둔촌주공아파트 동네 고양이의 행복한 이주를 준비하는 모임’이다. 둔촌냥이 회원들은 단순히 먹을 것이 떨어진 고양이들에게 밥을 줘 연명시키려 하는 게 아니다. 모임 명칭처럼 고양이를 이주시키려 한다. 고양이는 본디 위협을 느낄수록 가까운 곳으로 파고 들어가 몸을 숨기는 습성이 있다. 본격적으로 철거공사에 돌입해 큰 소리가 나면 도망가는 대신 빈 아파트에 숨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건물을 철거하면 매몰돼 떼죽음을 당한다. 둔촌냥이 회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밥도 전략적으로 준다. 단지 외곽에는 맛있는 먹이를 두고 캣닢(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식물)을 깐다. 반면 단지 중심에는 점진적으로 먹이를 없앤다. 숨어 있는 고양이들을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다. 경계심이 심해 좀처럼 단지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고양이들은 밤중에 먹이로 유인해 포획한다. 포획한 고양이는 ‘순화’ 과정을 거친다. 밥을 주고 놀아주면서 다른 환경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순화가 된 고양이는 희망 가정에 보낸다.

그들 역시 도시 생태계의 구성원

둔촌냥이의 활동이 지지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2018년 온라인 애묘 커뮤니티에서 한 캣맘은 둔촌냥이의 활동이 ‘불법 포획’이라고 주장했다.

여태 고양이들을 보살펴온 것은 둔촌주공아파트에 살던 자신인데, 어째서 둔촌냥이가 이주 사업을 도맡느냐는 불만이었다. 영화 속 둔촌냥이 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고양이는 내가 아니면 살 수 없어’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고양이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고양이들이 그냥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새끼,
내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라.”

철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단지에는 울타리가 섰다. 필사적으로 고양이를 구출해 입양을 보내고 인근 학교로 이주시켰으나, 개중에는 공사가 한창인 현장으로 되돌아간 고양이도 있었다. 둔촌냥이 회원은 “회귀본능 때문인 것 같다”라며 한탄했다. 재개발 현장의 고양이 개체수를 파악하고 단지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그는 다시 공사판 철문 앞에 섰다. 사료를 비비고 고양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타리 아래로 밀어넣었다.

이 영화는 동물을 다루지만, 동물의 생태만 다룬 〈내셔널 지오그래픽〉과는 거리가 있다. 불쌍한 동물을 구출해낸 사람들의 미담도 아니다. 가까이 살아왔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웃’들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풀어놓은 데 가깝다. 고양이는 살던 곳에 머무르고자 하고,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끼리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 둔촌냥이 회원 스스로도 자신의 활동이 고양이의 행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양이가 참 내 마음 같지 않다” “고양이에게 물어보고 싶다”라고 말한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애묘인보다 고양이·캣맘을 혐오하는 사람에게 효용이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갑갑하다. 어떠한 카타르시스도 주지 않는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대개 그들 눈높이에서 찍혔다. 이입할수록 무력해지는 앵글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보고 ‘고양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짓눌릴 것이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분개하기까지 하는 이라면 오히려 울림을 얻을 수 있다.

한 시간에 걸쳐 영화는 쉽게 지나쳐온 고양이와 캣맘의 일상을 끈질기게 좇는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들 역시 도시 생태계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설득한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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