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챙겨주는 만큼 쓰레기봉투를 뜯는 일도 줄어들었다. 주민들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이안희씨(가명)를 마뜩잖아 했다. 이사를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실랑이에 지친 이씨는 서울 구로구에서 마포구 연남동으로 운영하던 식당을 옮겼다. 건물주 역시 이씨처럼 ‘캣맘(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돌보던 고양이 일곱 마리를 구조해 함께 이사할 수 있었다. 고양이들은 가게와 가게 앞 잔디밭을 자유롭게 오갔다.
7월13일 오전 8시2분, 이씨의 가게 CCTV 화면에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나타났다. 목장갑을 낀 남성은 화분에 앉아 쉬고 있던 고양이 ‘자두’의 꼬리를 잡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가 땅바닥에 내리쳤다. 여러 번 바닥에 자두를 내리치면서 발로 짓밟은 남성은 수풀에 사체를 버리고 그 위에 세제 탄 물을 부었다. 살해부터 유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구석에 몸을 숨긴 채 그 장면을 지켜봐야 했던 고양이 ‘하늘이’는 남성이 떠나자마자 도망쳤다. 다음 날 새벽 가게로 돌아온 하늘이는 이후 다시는 잔디밭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씨의 연락을 받은 건물주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위층에서 카페를 하는 건물주는 CCTV 영상을 가게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근처 빌라에 사는 한 주민이 자두가 묻힌 화단에 꽃 한 송이를 놓고 간 이후 자두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게 앞에는 주민들의 편지가 적힌 쪽지 수십 개가 붙었다. ‘출퇴근길에 널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쓴 단정한 글씨부터 ‘자두야, 학원 가는 길을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웠어’라고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까지 다양했다.
자두 살해 사건을 담당한 서울 마포경찰서와 경찰청에 빠른 수사를 요구하는 캣맘과 주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수사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붙잡힌 정 아무개씨는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자두를 비롯해 이씨가 돌보던 길고양이는 모두 중성화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캣맘’들의 연대와 구청의 협력
마포구청은 ‘마동친(마포구 동네 고양이 친구들)’의 요청에 따라 경의선 숲길 곳곳에 동물 학대 행위를 경고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마동친 대표 장양숙씨는 길고양이 대신 ‘동네 고양이’라는 단어를 쓴다. 남의 길에 사는 고양이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 사는 고양이라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다. 캣맘들의 꾸준한 연대와 구청의 협력, 주민들의 관심은 자두 살해 사건이 흐지부지 잊히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검찰은 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대검찰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법원은 “정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조사에 성실히 임했으며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라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자두를 살해한 범인을 잡아 강력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명의 추천을 받아 현재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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