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1월6일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고어전문방’이라고 불리는, 길고양이를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을 공유하는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이 있다는 제보였다. 40여 명이 참가하는 방이었다.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너구리, 고라니 등 야생동물을 실제로 고문하고 죽이는 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참가자들은 동물의 두개골을 으스러뜨리거나 산 채로 가죽을 뜯은 뒤 사체의 일부를 먹고 맛을 평가하기도 했다. 길고양이를 고문하는 사진과 해골이 된 사진을 나란히 올리며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폭력은 폭력을 부추겼다. 참가자들은 길고양이를 더 고통스럽게 고문하고 죽이는 방법을 서로 묻고 답하며 좀 더 자극적인 폭력을 학습했다(〈사진 1〉 참조). 누군가 ‘A라는 행위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은 그보다 더 잔혹한 ‘B라는 행위를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충격을 받은 내부 제보자는 대화를 캡처하고 사진을 다운받는 등 증거를 수집했다.

내부 제보자의 신고로 해당 채팅방의 존재가 알려진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이 올라왔다. ‘오픈 카톡방 고어전문방을 수사하고 처벌하여 주십시오’라는 청원은 나흘 만인 1월11일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동물자유연대는 채팅방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증 사진을 올린 이 아무개씨의 신원을 특정해 경찰에 고발했다. 혐의는 ‘동물보호법’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위반이다. 현재 동물보호법(제8조)과 야생생물법(제8조)에 따르면 각각 동물 학대와 야생동물 학대를 금지하고 있다. 또 동물보호법 제46조에 따르면 동물 학대 행위를 촬영한 사진 혹은 영상물을 전시·전달·상영하거나 인터넷에 게재하는 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 성동경찰서는 현재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이다.

〈사진1〉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자 채팅방은 ‘폭파’됐다. 카톡방을 없애기 전까지도 참여자들은 “처벌을 안 받을 거 아니 짜릿해지네요” “맞죠. 저희 텔레(그램)로 옮기면 더 열활(열심히 활동)합시다. 많이 많이 (동물을) 잡아버리죠. 텔레는 진짜 완벽한 익명의 공간” 따위 대화를 나눴다. 동물 학대 사건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경찰조사 단계에서 종결되거나, 재판까지 가도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만 받고 끝난다는 점을 노린 발언이었다. 특히 온라인으로 동물 학대 영상을 공유하는 범죄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2020년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55명 중 68%가 ‘동물 학대 영상을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수많은 동물 학대 영상이 온라인에 떠돌고 있다는 뜻이다. 카라는 해당 가이드라인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관객의 역할이다”라며 영상을 본 사람들의 적극적인 신고를 요청했다. 이번 ‘고어전문방’ 사건도 내부 제보자의 신고가 없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범죄다.

업데이트되지 않는 관련 매뉴얼

온라인 동물 학대만이 아니다.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에서 일하는 김나영 활동가는 물리적 현장이 있는 오프라인 동물 학대도 구조 활동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동물 학대 신고를 받아 현장에 가보면 경찰이 왜 이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낄 때도 있다. 가해자는 둘째치고 경찰부터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 학대는 형사처벌을 받는 불법행위이지만, 이를 알고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는 경찰관은 드물다. 해당 사건이 어떤 종류의 학대인지, 따라서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 학대 수사 관련 지침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2016년 10월 경찰청은 ‘동물학대사범 수사 매뉴얼’을 만들어 일선 경찰관들에게 배포한 바 있다. 한 달 전 열린 국정감사에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검거 건수가 2012년 118건에서 2015년 20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라고 지적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정작 매뉴얼은 실용성이 없어 현장에서 널리 쓰이지 않았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매뉴얼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서 공개한 해당 매뉴얼을 보면, 16쪽 중 13쪽이 동물보호법 등 관련 법안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데 할애됐다. 일선 경찰관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사 시 유의사항’은 3쪽에 불과했다. 해당 항목마저 ‘수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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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의 자세’ ‘피해 동물의 안전 최우선 원칙’ ‘관련 법령 숙지’ 등 원론적인 방법을 담고 있을 뿐이었다. 동물 학대의 불법성을 가볍게 보는 언행을 삼가고 피해 동물의 안전을 위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할 것 등을 안내하지만, 어떤 언행을 삼가고 어떤 방법으로 수사를 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 방안은 담겨 있지 않았다.

지침 관리도 허술했다. 지난 5년간 동물보호법이 다섯 차례 개정되는 동안 해당 매뉴얼은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 학대로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5년 동안 관련 업종에 종사할 수 없다. 또 동물을 유기한 자는 과태료가 아닌 벌금을 물고, 학대당한 동물이 죽을 경우 처벌도 강화됐다. 학대자는 종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바뀌었다. 잔혹한 동물 학대 사건들이 매스컴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그에 따라 ‘동물 학대는 범죄’라는 인식이 점차 강화된 결과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의 매뉴얼은 그대로였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이 점을 지적하며 “동물은 스스로 학대 상황을 증언하기 어렵기에 초기 대응에서 정황증거와 (사람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경찰의 전문성 있는 수사가 필요한 때다”라고 말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매뉴얼 개정을 충분히 검토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수사국 관계자는 1월25일 〈시사IN〉과 통화하면서 “담당 부서가 동물보호만 전담하는 게 아니라서 개정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개정 작업이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라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어느 단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매뉴얼에 ‘병원 이송 시 진료 중인 동물의 사진을 촬영하고 진단서·청구서 등을 확보했다’ ‘사인 분석 필요 시 사체를 증거물로 수집해 부검을 의뢰했다’ 같은 항목으로 이루어진 구체적인 체크리스트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찰청이 참고하는 모범 사례 중 하나는 미국 뉴햄프셔주 수사 매뉴얼이다. 해당 매뉴얼은 동물 학대 유형을 신체적·성적·정서적 학대와 방임 및 유기 등으로 세밀하게 분류하고, 유형별로 학대당한 동물이 어떤 징후를 보이는지 적어놓았다. 어느 시점에 영장을 받아야 하는지, 동물 개체수가 많아서 임시 격리하기 어려울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예외적인 상황까지 꼼꼼히 정리해두었다. 또 “동물 학대 행위가 가정폭력이나 기타 폭력범죄의 징후일 수 있다”라고 명시함으로써 동물 학대를 사소한 폭력 사건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논란이 된 오픈 채팅 ‘고어전문방’에는 동물뿐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훼손한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자해하려고 마취크림 바르고 기다리는 중이에요. 설렌다” “드릴로 사람 손등이나 발등 관통해보고 싶네요” 등의 대화가 오가고, “여자를 강간하고 싶다”는 발언도 나왔다(〈사진 2〉 참조).

ⓒ시사IN 조남진2019년 7월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고양이 ‘자두’가 잔인하게 살해된 뒤 마포구청이 설치한 현수막. 당시 범인은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법적으로 동물은 여전히 물건과 재물

동물법·환경법 전문가인 함태성 강원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사건 초기에 ‘고어전문방’이 ‘고양이 n번방’에 비유되기도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동물의 안전과 인간의 안전은 서로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1년 동물보호법이 도입된 이후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민법과 형법상 동물은 각각 ‘물건’과 ‘재물’로 규정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생명이 물건으로 규정돼 있는 한 동물보호법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물’을 파괴한 것과 ‘생명’을 해친 것은 엄연히 그 경중이 다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 개정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함 교수는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1933년 동물보호법을 시행한 독일은 1990년 민법을 개정해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2002년에는 헌법(기본법 제20a조)을 개정해 동물에 대한 보호 의무가 국가의 책무임을 명시했다. “국가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법률과 집행력과 판결을 통해 자연적인 삶과 동물들을 보호할 책임을 진다.”

고어전문방 사건을 최초로 고발한 동물자유연대 측은 하루 평균 25건 정도 제보가 들어온다고 밝혔다(2020년 한 해 기준으로 전화 제보 4327건, 홈페이지 제보 1876건). 김나영 활동가는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잔혹하게 죽어야만 개정된 발의안이 찔끔찔끔 올라오고, 결국 그마저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현실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2020년 국회에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총 25건이다. 동물의 사체를 훼손할 경우 형사처벌하거나, 동물을 학대한 자는 영구히 동물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부분 개정안이다. 통과된 발의안은 단 한 건도 없다. 함태성 교수는 “동물도 생명이고, 국가가 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데 독일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도 그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왔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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