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정 제공

참외를 깎았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 여름이 찾아올 무렵부터 자주 먹곤 하는데 쟁반에 참외를 얹고 과도를 챙겨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껍질을 깎아내고 네 조각을 낸 다음,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천천히 먹었다.

참외를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 싶어서 새삼스러웠다. 그동안 참외는 싱크대 앞에 선 채로 깎아서는 급하게 먹어치워야 하는 과일이었다. 독립하고 혼자 지내는 방을 얻은 다음부터는 늘 그랬다. 우리 집엔 참외를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집고양이들은 사료 이외에 탐내는 게 없다는데 나의 고양이는 달랐다. 내가 먹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였고, 음식을 집어가는 내 손을 앞발로 저지하며 일단 자신에게 검사를 맡고 먹으라는 것처럼 킁킁대고 마음에 드는 건 핥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본인 취향으로 정한 게 참외·키위·수박이었다. 깎아놓은 대로 다 핥고는 조금 먹다가 말기 때문에 고양이의 몫으로 얼마 남겨두고 나머지는 얼른 먹어치워야 했다. 지난 10년간 나에게 참외는 그렇게 먹어야 하는 과일이었다.

그랬는데 이번 여름부터는 이렇게 조각낸 참외 겉면이 마를 정도로 천천히 먹을 수 있게 됐다. 10년을 함께했던 나의 고양이 미묘가 이제는 고양이별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함께 산 사람들은 고양이가 죽은 걸 두고, 지구별에 잠시 머물던 고양이가 고양이별로 돌아갔다고 표현한다. 자신의 전체를 떼어줄 정도로 사랑하고 보살폈던 고양이들이 이제 이곳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고양이별에서 여전히 발랄하게 뛰어놀며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고 싶어서다. 나 역시 그렇다. 열 살에 발견된 신부전 때문에 1년3개월 동안 처방 사료만 먹으며 하루 두 번씩 약을 먹고, 마지막 4개월은 아침 점심 저녁 피하수액까지 맞아야 했던 미묘가 지금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먹고, 어르고 달래며 맞아야 했던 따끔한 바늘도 없이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 옆에서 자는 걸 좋아하던 미묘를 혹시라도 건드려서 곤한 잠을 깨울까 봐 침대에서 뒤척일 때마다 조심해야 할 일이 없어졌고, 아침에 눈 뜨면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간밤에 토한 흔적은 없는지 살펴보고 아침 약과 수액부터 챙기던 일상이 통째로 사라져서, 이곳에 남은 나는 너무 많이 허전하긴 하지만.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건 보호자 몫

고양이와 함께 사는 누구나 자신의 고양이에 대한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거다. 밥을 잘 먹는 것, 햇볕을 받으며 늘어지게 자는 것, 온몸을 정신없이 그루밍하는 것에도 의미를 심어주고 싶을 만큼 자신의 고양이를 특별하게 여긴다. 나의 고양이 미묘도 나에게 그랬다. 내가 일이 없어 한가할 때나, 바빠서 많이 챙겨주지 못할 때나, 속상한 날이나 기쁜 날이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준 것은 물론이고 살아가는 순간순간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미묘가 아픈 뒤부터 더욱 그랬다. 예전에는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쪼르르 달려 나오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기력이 없어 침대에서 꼬리만 살랑대는 걸 보며 생명체의 노화를 실감했다. 움직임, 먹는 것, 반응하는 것 모두 둔화되는 걸 보면서 나와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고양이의 시간을 느꼈고 언젠가 내 부모와 나에게도 찾아올 늙음의 모습을 미묘를 통해 미리 접했다. 왜 이렇게 변했느냐고 안타까워하다가 아주 천천히 받아들였다. 마냥 속상해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었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식사와 처치를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미묘에게 찾아온 시간을 같이 떠안았다.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 없고 미묘의 고통만 연장시키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모든 처치를 멈추고 마지막 가는 길을 미묘의 의지로 남겨두기로 하면서, 나는 인간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리는 모든 선택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어떤 선택에도 후회와 자책이 따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심사숙고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걸 미묘의 마지막을 보며 배웠다. ‘병원을 옮겨서 치료를 더 받게 하면 나아질까’ ‘미묘는 살려는 의지가 있는데 내가 먼저 지쳐서 그만두려는 것은 아닐까’ 답도 없는 고민을 몇 달째 이어가던 밤들이 있었다.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일은 온전히 보호자의 몫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든 의심이 들 수밖에 없고, 크고 작은 후회가 따른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도 없다. 외롭지만 보호자 혼자서 내려야만 하는 선택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정말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면 그런 보호자의 어떤 선택이든 옳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조언이었다.

미묘가 떠나기 며칠 전, 치료를 받던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서 미묘의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려 애 많이 썼고 누구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에게 위로차 건넨 말씀이었겠지만, 사회생활하면서 이렇게 칭찬과 격려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미묘를 간호하고 보살피는 일로 내가 칭찬까지 받는 걸 보면 고양이란 정말 나에게 여러모로 고마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조금 있으면 미묘가 고양이별로 돌아간 지 한 달이다. 반려동물에게 보호자는 세상이자 전부이기 때문에 떠나는 순간에도 자기의 고통보다 남겨질 보호자를 더 걱정하고 신경 쓴다고 한다. 그래서 미묘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도록 너무 많이 울거나 슬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퇴근하고 돌아온 조용한 집 안이 여전히 어색하고 혼자 편안히 누울 수 있는 침대가 낯설어서 자주 운다. 떠난 사실이 슬퍼서라기보다는 그립고 보고 싶어서 운다. 건강한 애도는 세상을 떠난 존재가 생각날 때마다 억지로 그 생각을 지우고 억누르거나 피하지 말고, 함께했던 즐거운 추억을 나누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날 때마다 미묘의 사진과 영상을 보고 미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둔다. 미묘를 아는 친구들에게 미묘가 생각날 때마다 나에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도 했다. 그 덕분에 내가 잊고 있던 미묘와 나의 예전 모습을 전해 듣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미묘가 나에게 얼마나 크고 따뜻한 존재였는지 다시 한번 다가온다.

살아가면서도, 떠난 후에도 나에게 수많은 가르침을 준 나의 스승이었고, 10년 하고도 2개월간 나의 세월을 같이 지켜봐주며 언제나 편안한 안식이 되어준 부모와도 같았고, 내가 먹이고 재우고 보살펴야 했던 나의 자식이었으며,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무한히 전해준 나의 연인이었던 미묘가 오늘도 보고 싶다.

나와 마음을 나눴던 존재 중에서 가장 작은 몸집으로 가장 큰 사랑을 준 나의 고양이, 고마워.

기자명 홍재정 (MBC 라디오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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