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꼭 물어본다. “선거 시즌인데, 뭐 재미난 거 없어?” 보수정당이 대구에 내리꽂기 공천을 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진보정당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다간 ‘갑분싸’ 될 가능성이 있으니 내 딴에는 돌려 돌려 물어본 셈이다. ‘우리 동네 후보는 하이디라오 춤 춘 릴스(인스타그램 숏폼) 대박 났던데 봤어?’ ‘우리는 현역 국회의원이 이번에 또 나오더라’ ‘부모님이랑 선거 얘기 하다가 싸웠어’ 같은 이야기가 나왔으나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는 않았다.
선거 보도 탓도 있다. 유권자 중심, 정책 중심이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방법을 물으면 쉽지 않다. 선거 과몰입과 무관심 사이의 영역을 넓히기 위한 방법도 궁리하지만 쉽지 않다. 내가 일하는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은 이번 4·10 총선 기획 주제를 ‘기후위기’로 잡은 만큼 더더욱 쉽지 않다. 기후위기가 문제인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국회가 해결해야 한다거나, 해결할 거라고 구체적으로 기대하는 이는 적어 보인다.
〈뉴스민〉 기자들은 2월부터 제21대 국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떤 법안을 발의했는지 살펴보고, 대구경북의 기후위기 현장을 찾아가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들었다. 청송 사과 농민, 청도 복숭아 농민, 울진의 어민과 산불 피해자를 만났다. 마이크가 잘 닿지 않는 경북 주민들은 기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관련 공약을 내는 후보가 있다면 뽑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유권자 중심, 정책 중심의 보도는 꼭 필요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쏟아지는 선거 보도 대부분은 후보자가 한 말, 여론조사, 판세 분석에 집중된다. 이들과 경쟁해 이목을 끌기 쉽지 않다. 〈뉴스민〉이 찾은 해결책은 ‘참여’다. 유권자가 직접 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다. 첫 번째는 ‘유형 분석 테스트’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40개 질문에 답하면 내가 어떤 유형의 기후 유권자인지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지역 환경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16개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기후위기에 예민하고 행동하는 ‘기후로운 흰수염고래’부터 기후위기에 별 관심이 없는 ‘나른한 고양이’까지, 사이트를 공개한 4월1일, 하루 만에 180여 명이 참여했다. 우리 같은 지역 구멍가게에선 고무적인 일이다.
선거 보도 바뀌면 유권자 대화도 더 풍부해진다
두 번째는 ‘기후 유권자 광고’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순 없지만 누구나 의견 광고를 게시할 수 있도록 신청을 받고 있다. ‘정신차려 총선! 지구 망하면 끝이야’ ‘앗! 총선 투표, 기후위기보다 싸다!’ 같은 기후 유권자들의 광고가 홈페이지에 실렸다. 후보자 광고보다 좋은 자리다. 본인 광고를 캡처해서 보내며 한 유권자가 덧붙였다. “재미 삼아 보냈는데, 이름이 광고에 담기니까 책임감이 생기네요.”
4월1일 오전 내가 속한 단체 카톡방들에 ‘기후 유권자 유형 분석 테스트’를 보냈더니, 친구 몇이 결과를 공유했다. 펭귄 캐릭터 핑구부터 플라스틱 빨대, 주말농장, 동네 제로웨이스트 숍, RE100과 CF100의 차이까지…. 맥락은 없지만 어쨌든 선거 이야기다. 지역 후보자들에게도 유형 분석 테스트를 포함한 질의서를 보냈다. 나의 테스트 결과와 우리 동네 후보들의 결과를 비교해볼 수 있는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선거 보도가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띨 때 유권자의 대화도 풍성해진다는, 좋은 사례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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