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대상 혐오 댓글 관련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한 대학원생이 “이 연구는 정신건강에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화들짝 놀라 다시 물어보니, 며칠 동안 기자 대상 악플을 집중적으로 읽다가 자신의 기분까지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읽는 사람의 정신건강까지 해칠 정도로 맥락 없는 언론인 대상 욕설과 혐오가 난무하는 게 현실이다.때로는 언론 전문가의 글을 읽다가도 악플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보도의 질, 언론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물론 필요하지만, 언론을 호되게 꾸짖고 매섭게 몰아붙여 사회악처럼 묘사할
또 하나의 시도를 접는다. ‘오뜨밀’이라는 데일리 시사 라디오 겸 유튜브다. 이전에 한번 이 지면에서 말한 적 있듯(〈시사IN〉 제822호 ‘뉴미디어 PD가 라디오를 하는 이유’ 기사 참조), 처음으로 다른 직군의 동료와 호흡을 맞췄다. 우리가 방송을 하면서 어렴풋이 떠올린 독자는 ‘평범한’ 청년이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연령대의 사람들은 뉴스 회피층이기 전에 뉴스 소외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뉴스를 쉬운 말로 챙겨주고 뉴스 근육을 함께 다져보고 싶었다.조금 전 구독자들에게 개편 일주일을 남기고 이별을 고했다. 그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나랏빚 늘어나는 속도가 비기축통화국 중 2위’라고 한다. 기사를 보니 “IMF는 지난 10년간 한국의 정부부채 증가 폭이 비기축통화국 11개국 중 둘째를 기록하는 등 한국의 나랏빚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했다”라고 한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IMF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IMF의 보고서를 특정 언론이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다. 기자 본인의 주장을 IMF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비기축통화국 중 2위라는 기사의 주장도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기사
유승민 전 의원과 유시민 작가의 토론을 지켜보다 잠시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유 전 의원이 MBC를 위해서라도 패널조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혹평을 쏟아내던 참이었다. 2월 말 실시한 4차 패널조사 결과가 국민의힘이 한참 상승세를 보이던 일반 여론조사의 흐름과는 딴판이라며, 패널조사라는 게 믿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MBC는 이번 총선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패널조사를 실시했다. 매번 다른 응답자를 조사하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패널조사는 동일한 응답자를 반복·추적해서 조사한다. 아직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한 ‘미결정층’이 언제 마음을
좋은 시민이 갖출 덕목은 많지만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자신과 다른 의견, 특히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정치적 의견을 들을 자세다. 물론 나와 다른 정치적 주장을 온화한 표정을 유지한 채 듣고 있기란 어렵다. 몇 시간 전에도 나는 택시 기사님이 내가 수긍하기 어려운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는 바람에 “당장 내려달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하지만 정치적 이견(異見)에 일상적으로 노출될 때 우리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를 점차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 결과 정치적 관용이 높아
대구경북 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의 총선 기간 보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4월4일자 1면 헤드라인 기사 “내로남불 기득권 ‘좌파의 가면’ 심판의 표로 벗겨야”가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진보당·새진보연합 야 3당 대구시당은 4월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매일신문〉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사실을 밝히며 “총선 당시 불공정, 편파 보도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총선 사전투표 전날인 4월4일, 1면에 나간 기사는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선동 대자보에 가깝다. 야당이 말하는 편파성을 제쳐두더라도, 문장 대
부고를 듣고 나서야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너무 많다. 2024년은 내게 홍세화가 떠난 해이자, 홍세화를 알게 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선생의 부고 소식이 들려온 직후 정말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한 기억, 그와의 직접적 인연을 이야기하며 추모했다. 무엇 하나 절절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프랑스로 망명해 난민이 된 지식인.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 저자. 숨을 거둘 때까지 과거에 몸담았던 매체를 걱정한 언론인. 어려운 시기를 맞닥뜨린 진보 정당의 대표직을 기꺼이 감당했던 정당인. 생활고로 작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지원한 사회운
“이번 총선을 생각하면 어떤 감정이 드십니까?” 총선 직전인 3월25~28일 실시한 MBC 패널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절반은 ‘분노(47%)’라고 답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새로운 국회 구성원을 내 손으로 뽑는 희망적인 과정에서 느끼는 주요한 감정이 ‘분노’라니. 2년 전 대통령 선거의 주재료였던 ‘전례 없던 비호감’이 푹 고아져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로 찐득해진 걸까.175석, 108석, 그리고 12석. 누구의 의지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전선은 100석에서 형성됐고, 전선을 뚫지 못한 쪽
이번 총선의 주인공 중 하나는 대파였다. 3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물가 점검차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에 방문한 당시 할인 행사 중인 대파를 두고 “대파 한 단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는 보도 이후 대통령이 현실 물가를 모른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총선 판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대파 보도의 여파는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됐고, 위원회가 선거방송 특별규정 제12조(사실 보도), 포괄규정 제8조(객관성) 등을 적용해 이 건을 심의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연합뉴스〉 3월26일)가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꼭 물어본다. “선거 시즌인데, 뭐 재미난 거 없어?” 보수정당이 대구에 내리꽂기 공천을 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진보정당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다간 ‘갑분싸’ 될 가능성이 있으니 내 딴에는 돌려 돌려 물어본 셈이다. ‘우리 동네 후보는 하이디라오 춤 춘 릴스(인스타그램 숏폼) 대박 났던데 봤어?’ ‘우리는 현역 국회의원이 이번에 또 나오더라’ ‘부모님이랑 선거 얘기 하다가 싸웠어’ 같은 이야기가 나왔으나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는 않았다.선거 보도 탓도 있다. 유권자 중심, 정책 중심이어야 하는
지난해 세수결손 규모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56조원이다.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언론이 세수결손과 재정건전성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런데 올해 1월 나라살림은 무려 8조원 이상 흑자라고 한다. 3월15일 올해 1월 말 재정 결과를 담은 ‘월간재정동향’이 발간되었는데 이를 인용한 수치다. 지난해에는 세수결손으로 큰 규모의 적자가 발생했는데, 올해 1월 재정수지는 흑자라니 얼핏 보면 조금 안심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1월 재정수지가 적자인지 흑자인지는 정보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 조삼모사일 뿐
“아버지는 ‘나처럼 살지 않으려면 네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담감이 컸던 거 같아요. 장학금 이런 거 남들은 다 받는데 나는 게으르고 나태해서 그것도 못 받고 자책감이 컸고, 스트레스성 폭식을 반복했고 그러면서 악순환이 시작된 거 같습니다(〈씨리얼〉,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 인터뷰 중).”2021년 즈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계속 언급되는 ‘요즘 20대의 일생’이란 짧은 웹툰이 있다(원작은 가바나 작가가 2014년 그린 단편 〈완벽한 백수의 일생〉이지만 누군가가 ‘불펌’하며 퍼져 나갔다. 작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주요 신문·방송사 출신 언론인 다수가 각 당의 공천을 받고 있다. 한국에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을 칭하는 소위 ‘폴리널리스트(politics+journalist)’라는 조어까지 존재하는데, 이 용어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에 대한 꽤 부정적인 평가를 내포하고 있다.언론인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을 텐데 정치인이 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언론인은 민간인임에도 공직선거법에 따라 현직 신분을 유지한 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이해충돌의 가능성 때문이다. 규범적으로 언론인이 추구
내가 다니는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에는 이주민 전문기자가 있다. 박중엽 기자다. 박 기자는 최근에 통근버스를 운행하던 중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나온 법무부 공무원 11명을 다치게 한 한국인 운전기사 김민수씨(가명) 이야기를 썼다.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출근길에 갑자기 추방될 위기에 처한 이주노동자들은 운전기사에게 한국어로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하고 외쳤고, 김씨는 순간적으로 액셀러레이터을 밟았다. 차량을 충돌해 틈을 만들고 차 문을 열었다. 운전기사 김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징역 3
언론은 사실(fact)을 옮긴다. 그런데 가장 쉽게 사실을 적시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유명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의 내용이 진실인지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유명인이 그러한 말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기사는 쓰기도 쉽지만,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많은 비판 속에서도 ‘따옴표 저널리즘’이 지속되는 이유다.2월23일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윤 정부, 부자감세 한 적 없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물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경제부총리가 한 발언은 뉴스 가
내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아주 내밀한 것까지 알고 있는 동네가 있다. 그곳은 바로 충북 옥천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택배가 꼭 한 번씩 거쳐가는 ‘옥천 허브(hub)’의 그 옥천 맞다. 아는 사람은 안다. 옥천이 다름 아닌 지역 저널리즘의 산실이라는 사실. 중심에는 어느덧 34년이 된 〈옥천신문〉이 있다. 군민 222명이 주주로 모여 창간한 〈옥천신문〉은 지금도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다양한 방식의 공론장을 고민하고 구축하며 확장하고 있다.나는 〈옥천신문〉에서 뻗어 나온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이하 옥이네)의 외지인 구
‘미디어 사투리’라는 말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과장되거나 어색한 사투리를 일컫는 말이다. 예전에는 촌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다면 요샌 힙하고 쿨하다는 이미지가 더해졌다. (원인을 분석하는 순간 유행이 지나간다는데 아무튼) 드라마 속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 연기가 밈이 되고, 이를 해설하는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영상이 조회수 150만을 넘으면서 정점을 찍었다. 전조도 있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경상도 호소인 캐릭터나 개그맨 김대희의 50대 아저씨 부캐 ‘꼰대희’가 대표적이다.지방 사람으로서 유행이 마냥
〈중앙일보〉의 뉴스 콘텐츠 채널 ‘듣똑라(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의 마지막 방송을 최근에야 봤다. 2019년 ‘2030 세대의 시사 친구’를 내세우며 시작해 특히 여성 청년을 주 타깃으로 삼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이 서비스를 〈중앙일보〉는 2023년 12월부로 중단했다.지난 10여 년간 국내 저널리즘 업계에는 수많은 혁신 시도가 있었다. 좋은 저널리즘과 좋은 저널리즘을 원하는 이용자를 더 긴밀하게 연결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언론계는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매년 한두 번은 동료 에디터를 채용한다. 그때마다 기성 언론사 기자들의 자기소개서가 꼭 들어오곤 한다. 이들의 자기소개서에는 항상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독자가 외면하는 공급자 중심의 기사 작성은 그만하고, 〈뉴닉〉에서 독자 중심의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공급자 중심의 기사란 무엇을 말할까. 독자가 기사를 다 읽었는데도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되묻는 경우를 말한다. 독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다. 기사가 사건의 앞뒤 맥락과 핵심 용어를 독자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전제한 채 작성되어 그런 것이다. 이렇게 독자에게 ‘불친
1월9일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단식, 릴레이 걷기, 삼보일배, 오체투지…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긴 호소 끝에 진상규명의 첫발을 뗐다. 이튿날 나온 신문 지면을 살펴보니 통과됐다는 사실부터, 법 시행 날짜가 총선 이후라거나 ‘특검 요청권’이 삭제됐다는 등의 법안 내용, 야당이 ‘단독 처리’한 사실에 대한 강조 등이 언론사 성향에 따라 선별적으로 쓰여 있었다.그중 〈조선일보〉의 사설 “민주당 ‘핼러윈 특조위’ 강행, 제2의 ‘세월호 특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