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두 번은 동료 에디터를 채용한다. 그때마다 기성 언론사 기자들의 자기소개서가 꼭 들어오곤 한다. 이들의 자기소개서에는 항상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독자가 외면하는 공급자 중심의 기사 작성은 그만하고, 〈뉴닉〉에서 독자 중심의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공급자 중심의 기사란 무엇을 말할까. 독자가 기사를 다 읽었는데도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되묻는 경우를 말한다. 독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다. 기사가 사건의 앞뒤 맥락과 핵심 용어를 독자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전제한 채 작성되어 그런 것이다. 이렇게 독자에게 ‘불친절한’ 기사를 ‘공급자 중심으로 썼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이슈에서 이런 식의 보도가 반복된다. 요즘 독자를 물음표의 늪으로 내모는 이슈는 단연 ‘쌍특검법’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쌍특검법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쌍특검법이란’과 ‘쌍특검법 뜻’이 뜬다. 하지만 실제 뉴스 검색 결과는 연관검색어와 어긋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야당은 권한쟁의심판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같은 기사가 쏟아진다. 독자는 쌍특검법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슈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이럴 때는 쌍특검법의 핵심인 특별검사제도를 먼저 짚어줘야 한다. 실제로 특검이 열린 건 1999년 이후 10여 회로, 독자에게 생소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별검사제도는 법을 만들어서 검사를 ‘특별히’ 임명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에게 범죄 혐의가 있어 수사해야 할 때 현직 검사가 맡으면 정권의 간섭을 받을 수 있으므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특검을 추진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처럼 개별 사안에 대해 특검을 임명하며 수사 범위와 활동 기간, 언론 브리핑 등 세부 사항이 법에 명시된다.
독자에게 ‘뉴스 읽는 맛’ 주려면
이제 독자는 쌍특검법 흐름의 첫 징검다리를 건넜다. 다음은 여야가 왜 이 사안을 총선과 엮어서 대립각을 세우는지 알 차례다. 쌍특검법 중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을 대표로 뜯어보자. 이 이슈는 수사 시작 시점과 기간이 쟁점이었다. 특검은 기본 70일 동안 수사하는데 1~2월에 수사를 시작해 과정을 중간중간 발표하면 총선 결과에 타격을 입는다는 게 국민의힘 논리였다. 정부·여당을 총선 시즌에 흠집 내려고 특검법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야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이슈가 된 지 1년도 넘었는데 진즉 수사했다면 총선과 엮을 일 없었다고 반박한다.
이 지점까지 맥락을 파악했다면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다. 주위에서 누가 “쌍특검법이 도대체 뭔데 정치인들이 싸우냐” 물을 때 “이게 어디서부터 알아야 하냐면” 하면서 시사 흐름을 아는 티도 팍팍 낼 수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흐름까지 알아둔다면 금상첨화다. 물론 이 사건이든, 쌍특검법의 또 다른 축인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이든, 사안이 여기까지 오게 된 맥락을 설명해주는 기사는 흔치 않다.
세상 돌아가는 맥락을 파악하고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일, 이런 경험은 ‘뉴스 읽는 맛’으로 이어진다. 효용을 느낀 독자는 뉴스를 다시 읽는다. 뉴스가 어렵다고 외면하지 않고 언론 곁으로 계속 돌아온다. 언론도 자극적 이슈와 헤드라인으로 독자와 ‘일회성 만남’에 그치는 일에서 벗어나, 오래오래 독자와 관계 맺을 수 있게 된다.
현장에서 분투하는 기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지면 사정, 경직된 데스킹 시스템 등 여러 사유로 원하는 만큼 쓰지 못해서 속앓이하는 것일 테다. 그래도 시도해보자고 제안을 남겨본다. 개념 해설만 따로 하는 기사 작성을 추천한다. 미국의소리 방송(VOA) 한국어판의 ‘뉴스 맥락잡기’ 같은 코너가 그 예다. 정치 싸움 생중계에 치중된 기사 사이에서 가뭄에 단비처럼 돋보일 것이다. 좋은 독자와 기자를 언론에 남기는 일은 여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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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장일호 기자·최한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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