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도이치모터스' 본사.ⓒ김흥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주가조작 의심 거래 전체에 대해 일일이 한 건씩 유무죄 판단을 내렸다. 주가조작에 사용된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의 거래 내역도 전부 유무죄가 가려졌다.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 범행 기간에 김 여사 계좌가 수십 차례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이번 판결로 모두 해소된 건 아니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의 핵심은 주가조작 범행 속 그의 ‘역할’이다. 김 여사가 적극적으로 주가조작에 가담한 공범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돈만 맡긴 단순 투자자인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져왔다(〈시사IN〉 제804호 ‘도이치모터스 1심 선고, '김건희 특검'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 https://www.sisain.co.kr/49569 기사 참조).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검찰 수사를 받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지지도, 법정에 증인으로 서지도 않았다. 김 여사 명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됐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가 주가조작 공범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과 완전히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가조작에 사용된 계좌 거래 내역의 유무죄 판단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주가조작 선수부터 계좌들의 주인, 개별 투자자 등의 진술과 검찰 수사 자료 등을 판결문에 상세히 담았다. 재판부는 김 여사 명의 계좌가 불법행위에 활용됐다고 판단하면서도, 그 경위와 배경은 적지 않거나 불분명하게 썼다.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 경과가 재판부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남은 의혹 해소는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을 미루고 있는 검찰 몫이 되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는 2월10일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전 회장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3억원을 선고했다. 주가조작 선수 등 주요 가담자들도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월13일 공개된 판결문은 139쪽 분량의 본문과 205쪽 분량의 범죄일람표로 구성됐다. 재판부는 본문과 범죄일람표를 통해 주가조작 범행의 과정과 결말, 이에 대한 유무죄 판단 근거와 사유를 상세히 밝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가 한 차례 서면조사만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연합뉴스

판결문에 ‘김건희’ 37차례 등장

판결문에 김건희 여사의 이름은 총 37차례 등장한다. 김 여사의 계좌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여러 계좌 중 하나였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건희 여사 계좌를 특정해, 선수들과 이들에게 주가조작을 의뢰한 권오수 전 회장의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주가조작 선수들이 김 여사 계좌를 주가조작에 사용한 과정과 방식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범행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의혹에 머물러 있던 김 여사 명의 계좌의 연루가 법원 판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권오수 전 회장은 2009년 9~10월께 주식 및 금융전문가로 알고 교류해오던 이 아무개씨를 만났다. 2009년 1월 상장 직후 폭락해 하한가에 머물고 있던 회사 주가를 띄울 목적이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권 전 회장은 2009년 11월 이씨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관한 주가 관리 및 시세조종을 의뢰했다. 이씨는 이 무렵부터 주변에 주식 투자자들을 모아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권 전 회장도 이씨에게 자신의 돈 5억5000만원과 계좌를 맡기면서, 지인이자 도이치모터스의 기존 투자자들을 소개했다.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이 김건희 여사였다.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 전인 2008년 12월부터 회사 주식을 6개 계좌에 나눠 보유하고 있었다. 권 전 회장 측 투자자 중 김 여사가 이씨를 가장 먼저 만났다. 도이치모터스 매장에서 권 전 회장으로부터 이씨를 소개받았고, 이후 그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이 들어 있는 계좌를 맡겼다. 재판부는 권 전 회장이 이씨에게 주가조작을 의뢰한 것을 김 여사가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판결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판결문을 보면, 김건희 여사는 다른 투자자들과 투자 방식이 달랐다. 투자자들에 대한 재판부 설명에 따르면, 이씨는 다른 투자자들에게는 ‘주식 투자’ 명목으로 계좌를 관리하면서 수익을 내면 사례나 수수료를 받았다. 재판부는 수수료 등 이씨에게 제공된 금원이 “주가조작의 대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김건희 여사와는 대가 지급 약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판결문에 적혀 있다. 이씨가 다른 투자자들과 달리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김 여사의 주식 투자를 대신 해줬다는 뜻이다. 앞서 도이치모터스 재판 과정(2022년 5월27일)에서는 김건희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주문을 지시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통화는 이씨 주도의 주가조작이 한창 진행되던 2010년 1월에 이뤄졌다. 김 여사가 이씨에게 단순히 계좌를 빌려준 게 아니라, 주식 거래를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녹취록에 따르면 증권사 직원은 “지금 2375원이고요, 아래위로 1000주씩 걸려 있고 지금 고가가 2385원, 저가가 2310원 사이에 있습니다. 조금씩 사볼까요?”라고 물었고, 김 여사는 “네, 그러시죠”라고 답한다. 직원은 “네, 그러면 2400원까지 급하게 하지는 않고 조금씩 사고 중간에 문자를 보낼게요”라고 말하고 통화가 끝난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계좌를 맡긴 투자자들이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 증인신문 등을 통해 수수료 지급 여부 등을 확인했다. 김 여사에 대한 내용은 판결문에 담지 않았다. 재판부는 “여타 증거만으로 주식 관리에 관한 대가 지급 약정이 있었는지 여부는 증명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 판단을 내릴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씨는 김건희 여사 계좌를 비롯해 권오수 전 회장으로부터 소개받은 투자자들의 계좌, 자신이 수급한 계좌들을 활용해 주가조작을 주도했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주가조작을 시작한 2010년 1월부터 6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식의 일평균 거래량은 약 20만 주에 달했다. 2009년 1년간 일평균 거래량은 13만 주였다.

주가조작 과정에서 이씨와 권오수 전 회장 사이 갈등이 생겼다. 대규모 자금과 주식을 주가조작에 활용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권 전 회장은 물론 그의 소개로 이씨에게 계좌를 맡긴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이 발생했다. 이씨와 권 전 회장의 악화된 관계는 2010년 8월께 단절됐다. 이때 이씨와 함께 선수로서 주가조작에 참여하고 있었던 김 아무개씨가 권 전 회장을 찾아가 '주포' 자리를 승계받았다. 김씨 주도의 새로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시작됐다. 2010년 10월21일이었다.

2월10일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전 회장(가운데)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김흥구

‘최은순 계좌’도 주가조작에 사용돼

김씨의 주가조작 방식은 이씨와 크게 달랐다. 김씨가 중심이 된 새 주가조작 세력은 투자자문사 블랙펄 인베스트먼트를 ‘컨트롤타워’로 삼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주식시장에서 알고 지내던 투자자들과 선수들을 통해 자금과 계좌를 새로 모집했다. 이 과정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계좌가 대거 교체됐다.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씨 명의 계좌는 김씨 주도 주가조작에도 사용됐다. 판결문을 보면, 이씨 주도의 주가조작과 김씨 주도의 주가조작 모두에 사용된 계좌는 김 여사와 최씨 명의 계좌가 유일했다. 여러 투자자들이 김씨에게 계좌를 맡긴 과정과 배경이 판결문에 나오지만, 김 여사와 최씨 명의 계좌가 이씨에서 김씨로 넘어간 구체적인 경위는 없다. 재판부는 이들 명의의 계좌에 대해 “주가조작 총괄인 주포가 바뀐 뒤(이씨→김씨), 권오수 전 회장이 넘긴 것으로 보인다”라고만 ‘짐작’했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건희 여사의 계좌와 최은순씨 계좌를 특정해 선수들이 어떻게 주가조작에 활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2010년 11월1일, 주포 김씨와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이 “3300원에 8만 개 매도하라고 하셈”이라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7초 뒤 김건희 여사 계좌에서 8만 주 매도 주문이 나왔다. 재판부는 ‘통정매매’ 즉, 서로 미리 짜고 사고판 거래라고 판단했다.

2010년 11월4일, 김씨 주도의 주가조작 세력이 관리하던 두 개의 계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팔겠다는 주문이 나왔다. 김건희 여사의 미래에셋증권 계좌에서 이 주식들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주가조작 선수들 사이 “10만 주 받았음. 두 사람한테 5만 주씩 뺏었음”이라는 내용의 문자가 오갔다. 재판부는 이 거래도 통정매매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자메시지 전송 7초 뒤 8만 주’ 거래에 대해 “해당 계좌에서 직접 주문을 낸 것이 누구인지를 확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김씨 등 주가조작 선수가 낸 주문인지, 계좌 주인인 김건희 여사가 낸 주문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계좌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또는 주가조작 선수들에게 일임됐거나, 적어도 이들의 의사나 지시에 따라 운용된 계좌로 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거래는 재판 과정에서도 상세히 다뤄진 바 있다. 앞서 검찰은 법정에 주포 김씨와 문자를 주고받은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을 증인으로 불러 ‘문자 전송 7초 후 8만 주 거래’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검찰은 “당시 김 여사 명의 계좌는 영업점 단말로 김 여사가 직접 전화해 거래한 것”이라며 ‘김씨→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주가조작 선수 A→권 전 회장→김건희 여사’ 순서로 연락이 간 것이냐고 물었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 세력 연락망에 포함돼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은 “모른다”라고 답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김씨로부터 권 전 회장에게까지 연락이 이뤄진 점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 여사가 직접 거래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판결문을 통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을 비춰보려면, 앞서의 이씨 주도의 주가조작과 새로운 주포가 된 김씨의 주가조작을 연결해서 봐야 한다. 김 여사 계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는지는 이 과정을 떼어놓고 확인할 수 없다.

‘법적으로’ 이씨와 김씨의 주가조작 행위는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재판부는 이씨 주도의 주가조작을 면소 판결했다. 면소란 사법적 판단 없이 형사소송을 종료하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씨를 ‘주포’로 지칭하고 ‘권오수 회장으로부터 시세조종 의뢰를 받았다’ ‘이씨의 수급팀 동원을 통한 시세조종 행위가 이뤄졌다’ 등의 표현을 쓰면서, 사실상 이씨 주도의 주가조작이 이뤄졌다고 판단하면서도 이씨에 대해 면소·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가 주도한 주가조작 기간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였다.

앞서 검찰은 2021년 12월 권 전 회장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도이치모터스의 주가조작이 2009년 12월부터 2012년 12월7일까지 3년 동안 총 다섯 단계에 걸쳐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각 단계들을 각각의 개별 범죄가 아닌 ‘하나로 연결된 범죄(포괄일죄)’로 묶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하나의 범죄’를 둘로 쪼갰다. 주가조작 범행이 진행된 3년 사이 주포가 바뀐 시점(이씨→김씨)을 기준으로 1차 작전, 2차 작전으로 구분했다. ‘주범’인 주포가 바뀌면서 범행 수법과 이용된 계좌 및 자금 모집 방식, 주가 변동 정도와 거래량 등이 전부 달라진 만큼, 하나의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그림 1〉 참조).

1심 재판부가 구분한 1차 작전 시기는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0월20일이다. 2차 작전은 2010년 10월21일부터 주가조작 범행이 완전히 종료된 2012년 12월까지다. 1차 작전 시기는 권오수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들이 재판에 넘겨진 시점(2021년 12월)을 기준으로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차 작전 주포 이씨는 형사처벌을 피했다. 2차 작전 주포 김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앞서 검찰이 권오수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들을 재판에 넘기며 ‘통정·가장 매매’로 분류한 거래는 522건이다. 현실 거래를 통한 시세조종은 7282건이다. 통정·가장 매매는 주가조작 선수들끼리 미리 짜고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다. ‘현실 거래’를 통한 시세조종은 선수들이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을 상대로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작전 주식이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잘못 알게 하거나 시세를 고정시키거나 안정시킬 의도를 가지고 하는 고가 매수, 물량 소진, 허수 매수, 시·종가 관여 주문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가조작이 의심된다고 제시한 거래 가운데 면소 판결한 이씨 주도의 1차 작전 시기 거래는 모두 제외했다. 김씨 주도의 2차 작전 거래 전체 통정·가장 매매는 130건으로, 재판부는 이 중 101건을 유죄로 판단했다. 현실 거래 시세조종 행위는 3702건 가운데 3083건을 유죄라고 판결문에 적었다(〈그림 2〉 참조).

선고 다음 날 나온 대통령실의 입장문

이번 판결에 따라 김건희 여사 계좌의 거래도 1차 작전 시기 거래와 2차 작전 시기 거래로 구분해야 한다.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에서 이뤄진 거래는 1, 2차 작전 시기를 통틀어 통정·가장 매매 106건, 현실 거래 178건이다. 1차 작전 시기 거래를 빼면 통정·가장 매매 50건, 현실 거래 1건이 유무죄 판단 대상이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통정·가장 매매 48건, 현실 거래 1건이 유죄라고 판단했다. 유죄가 선고된 2차 작전 전체 통정·가장 매매(101건) 중 절반에 가까운 거래가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에서 이뤄졌다. 일반 투자자 대상의 현실 거래(1건)보다 주가조작 선수들이 미리 짜고 사고판 통정·가장 매매 건수(48건)가 더 많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건희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사용됐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지만, 김 여사가 어떤 목적으로 계좌를 제공했는지에 대해선 적지 않았다. 다른 투자자, 전주들에 대해선 계좌를 넘긴 배경과 의도, 날짜를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이들의 진술서와 증언 등을 근거로 삼았다고 판결문에 밝혔다. 그러나 김 여사, 또는 김 여사 계좌에 대한 구체적인 등장 경위와 판단은 없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판결문 속 ‘빈 공간’은 선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논란을 낳고 있다. 대통령실은 판결문이 공개된 다음 날(2월14일) 장문의 입장문을 냈지만 이에 대해서도 의혹 제기와 반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판결에 대해 “판결문 중 범죄일람표에 김건희 여사가 등장하는 48회 모두 ‘권오수 매수 유도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표현 그대로 권오수 대표와 피고인들이 주변에 매수를 권유하여 거래하였다는 뜻에 불과하다. ‘매수를 유도’당하거나 ‘계좌가 활용’당했다고 해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이어 “매매 내역을 보면 2010년 10월28일부터 12월13일까지 기간에 단 5일간 매도하고, 3일간 매수한 것이 전부다. 아무리 부풀려도 ‘3일 매수’를 주가조작 관여로 볼 수 없다. (판결문은) 오히려 무고함을 밝혀주는 중요 자료다. 특히, 판결문에서 주목할 것은 김건희 여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높은 빈도로 거래하고 고가 매수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직접 낸 내역이 있어 기소된 ‘큰손 투자자’ A씨의 경우에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논리라면 ‘3일 매수’로 주가조작 관여 사실이 인정될 리 없다”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과 김건희 여사 측은 “2010년 1월14일 주가조작 선수 이씨에게 신한증권 주식 계좌를 맡겼고 손실만 봐서 5월20일 관계를 끊었다. 이후 이씨가 사놓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팔기만 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김 여사가 이씨에게 계좌를 맡겼다고 밝힌 시점은 1차 작전 시기다. 이번 대통령실 입장문을 보면, 2차 작전 시기에도 계좌를 맡겼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2021년 10월15일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오른쪽)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 계좌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닷새 뒤 윤석열 캠프는 관련 내역을 공개했다.ⓒ공동취재

‘3일 매수’ 주장의 경우,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김 여사 명의 거래 내역 대부분이 ‘통정·가장 매매’였다는 점을 보면 단순히 ‘주식을 샀다(매수)’고만 볼 수 없다. 판결문에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보면, 김 여사 명의 계좌는 선수들이 판 주식을 곧바로 사들이거나, 수 초 간격으로 여러 번 주식을 매수했다. 유죄로 판단된 김 여사 계좌 거래 중에는 2011년 1월 거래도 있다.

‘무죄가 선고된 전주 A씨’의 경우,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주로 현실 거래로 분류되는 ‘고가 매수’를 했다. 앞서 검찰은 A씨가 거래한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대해 400여 건을 주가조작 의심 거래로 보고 재판에 넘겼지만, ‘통정·가장 매매’로 유죄가 선고된 거래는 한 건도 없다. 주가조작이 이뤄진 당시 A씨는 주식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A씨의 기존 주식 투자 성향 등을 확인했고 판결문에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가졌다”며 주가조작과는 관계 없었다고 밝혔다.

판결문에서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들의 수익 실현 여부도 주목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실패한 주가조작’이라고 평가했다. 시세차익 추구의 관점에서 보면 주포와 선수, 전주들이 큰 손실을 보거나 이익을 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권 전 회장 등이 시세조종으로 부당이익 107억1674만원을 취했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본시장법은 법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형을 가중하도록 하고 있다. 조직적인 주가조작 행위가 유죄로 인정됐음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형이 선고된 이유다. 그러나 검찰 공소장,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 캠프 측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공개된 김건희 여사 계좌 내역을 종합하면, 김건희 여사는 1차, 2차 작전 시기 약 10억원 수익을 냈다.

권오수 전 회장이 2011년 12월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발행한 250억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판결문에 나온다(〈시사IN〉 제724호 ‘김건희의 수상한 주식 거래 향한 검찰의 정조준’ https://www.sisain.co.kr/45160 기사 참조). 권 전 회장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5단계 주가조작 가운데 4단계가 이뤄진 시기에 발행했다. 재판부는 4단계 주가조작 범행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하면서, 당시 권 전 회장의 상황에 대해 “A/S와 파이낸스 사업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으나 자금 유치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고 투자자를 찾다가 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단계 주가조작의 범행 동기가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한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에 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 회사의 장기적인 가치나 성장 가능성, 평판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투자를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가 부양 동기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2월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 및 10·29 참사 책임자 파면 촉구’ 국회 농성 토론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신주인수권 거래로 수익률 83%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도이치모터스 공시)을 보면, 권 전 회장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뒤 곧바로 신주인수권(269만7841주)을 주당 278원에 샀다. 이후 1년 뒤인 2012년 11월 장외에서 투자자 5명에게 나눠 팔았다. 이 중 한 명이 김건희 여사였다. 권 전 회장은 김 여사에게 51만464주를 주당 195.9원에 팔았는데, 자신이 산 가격(278원)보다 30% 낮았다. 김 여사는 2013년 6월 이 신주인수권을 한 사모펀드에 주당 358원에 되팔았다. 수익률은 83%였다.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권 전 회장의 주가조작 이익이 김 여사에게도 돌아간 셈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선고 이후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논란이 더욱 증폭되면서, 법조계와 정치권 시선은 검찰로 향한다. 법원 판결이 났는데도 해소되지 않는 의문과 판결문에서 김 여사와 관련해 비어 있는 사실관계를 채울 수 있는 것은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을 미루고 있는 검찰뿐이라는 것이다.

당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했던 검찰이 사건 관계자 가운데 유일하게 김건희 여사만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2021년 권오수 전 회장과 선수들을 수사하던 시점에 서면조사를 했던 사실이 최근 뒤늦게 드러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월15일 국회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검찰이 김 여사를) 소환조사한 바는 없지만 서면조사는 했다고 보고받았다. 출석 통보나 요구를 한 적은 없고, 소환을 위해 변호사와 협의는 있었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에서 서면조사가 있었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수사이기 때문에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는 않겠다”라고 답했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선 판결문에서 도이치모터스의 기존 투자자, 주가조작 전주 등에 대해 검찰이 전방위 조사한 흔적들이 드러난 만큼 김 여사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선고 이후 “제기된 의혹 전반에 대해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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