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회사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지난 3년 사이 꾸준히 오름세만 보이던 곳들이다. 4월24일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하한가를 찍더니, 4월27일까지 연달아 폭락을 거듭했다. 불과 4거래일 만에 시가총액 8조원이 사라졌다.

주가가 폭락한 회사는 코스피 상장사 삼천리·대성홀딩스·서울가스·세방·다올투자증권(5곳)과 코스닥 상장사 하림지주·다우데이타·선광(3곳). 서로 간에 접점이 없는 회사들이다. 소프트웨어, 항만물류, 도시가스, 금융지주사, 증권사 등 업종이 다양하고 주가도 1만원대에서 50만원대까지 제각각이다. 회사 내부 문제나 극복하기 어려운 대외 리스크 등 갑자기, 순식간에 주식 가격을 끌어내릴 만한 사정도 없었다.

유일한 공통점은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이라는 프랑스계 증권사였다. SG증권은 4월24일 하루에만 하림지주 191만2287주, 다올투자증권 61만6762주, 다우데이타 33만8115주, 세방 12만1925주, 삼천리 1만3691주, 대성홀딩스 1만1909주, 서울가스 7639주, 선광 4298주를 팔았다. 시장에 8개 회사 주식이 대량으로 쏟아지면서 주가가 수직 하락한 것이다.

SG증권의 대량 매도 배경에는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가 있었다. 8개 회사 주식 모두 SG증권을 통해 CFD 계약이 맺어져 있었다. CFD는 말 그대로 차액으로 수익을 내는 장외 파생상품이다. 투자자가 증권사에 정해진 증거금을 내면, 증권사는 투자자 대신 주식을 사주고 추후 차액만 정산한다. 예를 들어 A 회사 주식이 1주당 100만원이고 증거금은 40%라면, 투자자는 40만원만 가지고서도 주식 1주를 살 수 있다. 나머지 60만원은 증권사가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후 A 회사 주가가 올라 100만원에서 110만원이 된다면, 투자자는 10만원의 차액에 대한 정산을 받는다. 일종의 ‘빚투(빚 내서 투자)’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일반 투자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주가가 하락했을 때다. A 회사 주식이 100만원에서 90만원으로 떨어지면, 증거금 40만원 중 10만원을 증권사가 가져간다. 여기서 주가가 더 하락하면 투자자는 증거금을 전부 잃고 증권사에 빚이 생길 수 있다. 투자자가 정해진 증거금을 유지하지 못하면 증권사는 추가 증거금 납부를 요구한다. 내지 않으면 증권사는 반대매매를 통해 투자자 대신 샀던 주식을 일괄 청산한다. 주가 변동과 관계없이 돈을 빌리는 거래인 만큼, 정해진 시기에 상환 또는 만기 연장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 경우에도 반대매매가 이뤄진다.

종합하면 이번 주가폭락은 ①‘특정 투자자 집단’이 SG증권을 통해 CFD로 대량의 주식을 샀는데 ②추가 증거금을 내지 못했거나 상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의 ‘알 수 없는 이유’로 ③SG증권이 절차에 따라 반대매매를 통해 대량의 주식을 일괄 처분하면서 발생했다. SG증권이 시장에 대량의 물량을 쏟아내자 주가가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 같은 하락세가 또다시 SG증권의 반대매매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폭락 사태로 번진 것이다.

투자자 집단의 정체는?

SG증권으로부터 반대매매를 당한 ‘투자자 집단’의 배후로 미등록 투자자문업체 호안스탁(호안)의 라덕연 대표가 지목됐다. 3년 전부터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까지 라 대표가 시세조종을 통해 8개 회사 주가를 끌어올렸는데 중간에 사고가 터졌다는 것이다.

라덕연 호안스탁 대표. 주가조작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연합뉴스TV 제공
라덕연 호안스탁 대표. 주가조작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연합뉴스TV 제공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라 대표는 2019년 초부터 2020년 사이 투자금 30억원으로 지인들과 호안을 설립한 뒤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라 대표의 측근인 프로 골퍼 출신 안 아무개씨를 통해서도 투자 영업을 했다. 라 대표는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연예인, 중견기업 회장, 전문직 종사자 등과의 친분을 내세우거나 이들의 인맥을 활용해 신규 투자자를 계속해서 모았다. 이 과정에서 모인 돈이 주가조작에 사용됐다는 의심을 받는다.

라 대표 주도의 주가조작은 이미 잘 알려진 주가조작 방식과는 달랐다.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시세조종을 한다거나, 이를 감추기 위한 화려한 매매 기술도 없었다.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주가를 띄웠다. 라 대표는 3년간 8개 회사 주가를 하루에 약 0.5~1%씩 올렸다. 더 오래, 더 조금씩 주가를 올릴수록 조작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은 낮아진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들은 거래 흔적도 진하게 남겼다. 투자자들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모바일 계좌를 만들고, 호안의 직원들이 대신 거래했다. 예를 들어 호안 직원 한 명이 투자자①의 휴대전화로 특정 회사 주식을 시세보다 비싼 값에 매수 주문하고, 동시에 다른 호안 직원이 투자자②의 휴대전화로 이 가격에 팔아 주가를 올리는 것을 반복하는 식이다(통정매매). 한곳에서 동시에 대량거래를 여러 차례 하면 ‘이상 거래’로 금융 당국의 의심을 살 수 있는 만큼, 호안 직원들은 투자자들의 휴대전화를 들고 투자자 집·사무실 근처 등 전국을 다니며 거래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주가를 띄우려면 대규모의 돈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면서도 조용히 ‘굴려야’ 한다. 이를 위해 라 대표와 호안이 적극 활용한 것이 앞서의 CFD를 활용한 ‘빚투’다. CFD는 적은 돈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동시에 다른 ‘이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투자자 대신 증권사가 주식을 사는 것이라,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CFD를 했다면 표면적으로 투자자는 ‘외국인’으로 잡힌다. 실제 투자자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만큼 라 대표와 호안 직원들은 외국인(외국계 증권사) 뒤에 숨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다시 투자하라고 권했다. 수익을 낸 투자자들은 또다시 이들에게 돈과 개인정보를 맡겼다. 이런 방식으로 라 대표와 호안이 3년간 ‘굴린’ 투자금은 조원 단위까지 치솟았다.

라 대표와 호안은 투자자들로부터 투자수익의 절반가량을 수수료로 받았다. 수수료는 ‘세탁’되어 지급됐다. 라 대표 측은 차명으로 음식점과 고급 주점, 골프연습장 등을 직접 차려 운영했다. 투자자들은 골프 레슨비로 수천만 원을 결제하거나 음식값, 술값으로 수백만 원을 결제하는 방식으로 수수료를 냈다. 계좌이체로 주고받으면 잦은 자금 거래로 인해 혹시 모를 금융 당국과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갤러리, 해외 법인을 통해 자금을 빼돌리는 고전적 방식을 활용하기도 했다.

전직 프로 골퍼 안 아무개씨가 운영하던 골프 연습장. 라덕연 대표와 함께 투자자를 유치한 의혹을 받는다. ⓒ연합뉴스
전직 프로 골퍼 안 아무개씨가 운영하던 골프 연습장. 라덕연 대표와 함께 투자자를 유치한 의혹을 받는다. ⓒ연합뉴스

8개 회사가 주가조작 대상이 된 이유는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주식 수가 적어서다. 라 대표 측이 활용한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올리는 조작 방식’은, 주식 수가 100주인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게 1000주인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쉽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8개 회사의 평균 유동주식 비율은 40.55%로,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 상장사 평균 57.44%보다 낮았다.

8개 회사는 지배구조상 승계 이슈가 얽혀 있는 곳이었다. 통상 승계 이슈가 있는 회사들은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다. 주식도 쉽게 팔지 않는다.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해야 하고, 이후 부담할 상속세와 증여세 규모와도 직결돼서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가 적은 이유다. 대성홀딩스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72.74%, 서울가스는 최대주주와 자사주 지분이 75.86%다. 선광(61.69%), 삼천리(54.67%), 세방(50.56%), 다우데이타(66.91%), 하림지주(64.93%)도 최대주주 관련 지분율이 높다. 다올투자증권은 최대주주 관련 지분율이 28.38%다.

라덕연 대표는 5월11일 주가조작(자본시장법‧범죄수익은닉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4월 초 금융위원회에 주가조작 제보가 접수됐고, 이를 전달받은 금융감독원과 검찰이 합동 조사에 착수하면서 조작의 윤곽이 드러났다. 검찰은 최근 라 대표의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다며 구속기한 연장 없이 재판에 넘겼다.

라 대표는 혐의를 부인한다. 정상적 투자였다고 항변한다. 그는 구속 전 〈시사IN〉과 통화에서 “오르기만 하던 8개 종목이 돌연 하한가로 돌아선 데는 배후세력이 있다. 대주주 일부가 주식을 대규모로 팔아버리면서 계속 오르던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주가 하락으로 이익을 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일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4월24일 주가 폭락 직전 대규모 주식 매도가 있었고, 이것이 SG증권 반대매매의 방아쇠가 됐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피의자 오가는 투자자들

라 대표는 대주주 중 한 명을 직접 지목하기도 했다.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4월20일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 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팔았다. 605억원어치다. 김 전 회장에 앞서 대규모로 주식을 판 대주주들은 또 있었다.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은 4월17일 서울가스 주식 10만 주를 456억원에 매도했다. 그의 친동생 김영훈 대성홀딩스 회장도 3월2일 서울가스 주식 12만 주를 538억원에 팔았다. 대주주들이 사상 초유의 주가 폭락 사태는 피하면서도 3년간 오른 주가에 따라 수백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냈다. 라덕연 대표의 회사 호안에서도 내부 갈등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한 직원이 자신이 관리하던 주식 물량을 회사 몰래 대량 매도한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 주가 폭락 전 대규모 주식을 매도했다가 논란이 되자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연합뉴스TV 제공

증권가에서는 라덕연 대표가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부 대주주들이 특정 경로로 주가 폭락, 또는 금융 당국 조사 착수 등 미공개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각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라 대표 측에 돈을 맡긴 일부 투자자들은 주가 폭락 직전 주식을 매도한 대주주들을 조사해달라며 검찰과 금융위, 금감원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익래 전 회장 측은 “2021년 자녀들에게 다우데이타 주식 200만 주를 증여했는데, 관련 증여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분 일부를 매도했다”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 측은 최근 라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김영민·김영훈 회장 측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분류해둔 지분을 매매한 것이다. 주가 폭락 직전 고의로 매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앞서 있었던 대주주들의 거래 전후 상황도 조사할 방침이다.

라덕연 대표 측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피해자와 피의자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법조계에서는 라 대표 측이 다단계 방식으로 사람을 모은 만큼, 투자자들에 대한 수사기관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검찰은 투자자가 주가조작 사실을 알고도 투자한 사실이 입증되면 ‘미필적 고의’에 해당돼, 입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피해자와 공범이 누구인지, 정확한 피해 금액과 범죄수익은 얼마인지 등은 결국 검찰 수사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