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시도를 접는다. ‘오뜨밀’이라는 데일리 시사 라디오 겸 유튜브다. 이전에 한번 이 지면에서 말한 적 있듯(〈시사IN〉 제822호 ‘뉴미디어 PD가 라디오를 하는 이유’ 기사 참조), 처음으로 다른 직군의 동료와 호흡을 맞췄다. 우리가 방송을 하면서 어렴풋이 떠올린 독자는 ‘평범한’ 청년이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연령대의 사람들은 뉴스 회피층이기 전에 뉴스 소외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뉴스를 쉬운 말로 챙겨주고 뉴스 근육을 함께 다져보고 싶었다.
조금 전 구독자들에게 개편 일주일을 남기고 이별을 고했다.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구독자들이 나타나 댓글을 달았다. “제가 챙겨 보는 뉴스 이거 하난데” “매일 밤 오뜨밀 듣는 게 제 루틴인데” “맨날 친구들한테 주절주절 이런 일이 있었대! 하면 친구들이 오뜨밀에서 봤어? 하고 물어보는 패턴이 생겼는데” “매일 먹는 영양제처럼 챙겨 보는데” 등등.
챙김, 루틴, 패턴, 영양제. 우리의 기획안에만 있나 싶었던, 죽은 줄 알았던 표현을 끄트머리에 와 마주하니 뭉클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이들이 MZ를 분석해왔다. ‘공정에 민감하고, 권리를 챙기고, 비혼주의 성향이 강하고···.’ 분석은 주로 기업이나 정치권에서 소비자 혹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관점에서 자꾸만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얼굴로 완성되곤 했다.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라는 문구를 써서 논란이 되었던 2023년 더불어민주당 현수막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왜 결혼이 하기 싫고 애를 낳기 싫지? 왜 워라밸을 찾으면서 쉬지 않고 부업을 하지? 왜 공정에 집착하지? 이렇게 본질적인 ‘왜’를 묻다 보면, 청년 세대의 문제는 이전 세대의 사회경제적 약자가 가진 문제점과 다르지 않았다. 끝날 줄 모르는 전세사기, 또 미뤄지는 연금개혁, 걷잡을 수 없는 기후위기, 이젠 해소할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교육격차 등등. 청년의 문제는 불평등의 문제였다.
조회수에 종속된 저널리즘 생태계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MZ 미디어’라 불리던 미디어들의 콘텐츠는 기업·정치권에서 분석하는 ‘그 MZ 세대’와는 필연적으로 미스매치일 수밖에 없다. 나날이 조회수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저널리즘 생태계에서 제작자들은 현실적 한계에 부딪친다. 주류가 아닌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많은 미디어가 그렇게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절망적이지 않다. 지난 1년 동안 매일같이 우리를 찾아준 구독자들에게서 신뢰의 언어를 꾸준히 접한 덕분이다. 사람의 힘이 신기하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옹기종기 모여서 오늘 하루 있었던 뉴스를 나누고 나면 이상하게 온기가 돌았다. 구독자들에게 뉴스 근육을 만들어주겠다던 제작진이 오히려 구독자들의 챙김을 받고 근육을 얻은 것이다. 한 구독자는 종방 소식을 듣고 말했다. “지난 1년 덕분에 제가 많이 밝아졌어요. 사회에 냉소적이었는데 따뜻한 시선도 갖게 되었고요.” 나는 이 말에 답하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쓴다.
“지난 1년 덕분에 저희가 많이 밝아졌어요. 더 이상 뭔가를 시도하는 데 회의가 들었는데, 누군가가 분명히 보고 듣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됐습니다. 더 나아져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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