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14일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모여 ‘기후정의 파업’ 집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2023년 4월14일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모여 ‘기후정의 파업’ 집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북극의 찬바람을 가두던 제트기류가 지구온난화로 불안정해지면서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다. 1월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은 각계에서 온 사람들로 꽉 찼다. 시민사회 활동가, 에너지 협동조합 실무자, 기후위기 대응 싱크탱크 관계자, 국회의원, 정치학자 등이 각별한 표정으로 어떤 조사 결과 발표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날 발표된 것은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기후위기 인식 여론조사 결과였다. 전국 17개 시도별로 1000명씩 총 1만7000명에게 기후위기 관련 인식을 물었다. 질문 문항이 172개에 달하는 심층 조사였다. 기후 이슈에 대해 1만명 이상 대규모 조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를 기획한 곳은 로컬에너지랩, 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등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기후 이슈를 중요한 정치 의제로 끌어올리겠다는 ‘바람’을 안고 지난해 5월부터 여론조사를 준비했다. 제22대 총선뿐 아니라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앞으로 매년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조사 목적은 이렇다. 주요 선진국과 달리 왜 한국에서는 기후 이슈가 핵심 정치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는가, 기후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권자는 어떤 이들인가, 기후 유권자는 어느 지역에 많이 살고 있는가 등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명쾌하게 드러난 것도 있고, 논의의 실마리를 잡은 것도 있다.

결과를 보자. 우선 기후위기 이슈에 대한 ‘인지도’부터 파악했다. 관련 용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매우 잘 알고 있다+어느 정도 알고 있다). 가장 많이 안다고 답한 것은 온실가스였다. 응답자의 79.5%가 안다고 답했다. 이어 탄소중립(66.8%), 탄소발자국(50.4%), 기후정의(46.4%) 순이었다(〈그림 1〉 참조).

경제 이슈와 맞물리는 용어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환경 등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리키는 ESG에 대해서는 39.9%, 유럽연합이 수입품에 탄소 관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해서는 30.8%가 안다고 답했다.

특히 ‘RE100(기업이 사용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은 32.1%만 안다고 답했다. RE100은 2022년 대선 토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제대로 답하지 못해 화제가 됐던 용어다. 이번 조사 분석에 참여한 이관후 교수(건국대 상허교양대학)는 이 결과에 대해 “RE100 논란이 일었을 때 우리 시민 10명 중 7명은 윤석열 후보처럼 난처했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월22일 ‘기후정치바람’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관후 건국대 교수가 기후위기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월22일 ‘기후정치바람’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관후 건국대 교수가 기후위기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그다음, 시민들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과제 중 무엇을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지 물었다(1~3순위 응답). 1순위 응답을 보면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위기(58.3%)를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차이가 좀 나지만 폭우·가뭄 등 기후위기(20.0%)가 2위였다. 이어서 전기료 상승 등 에너지 위기(7.0%), 팬데믹 등 보건위기(3.2%) 순이었다. 북핵 문제 등 안보위기(2.6%)나 식량위기(1.2%)를 꼽은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1, 2, 3순위 응답을 합친 결과를 보면 기후위기가 인구위기에 버금가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그림 2〉).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화석연료 자동차 대신 전기차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바뀌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가 거주지역의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물었다. 단기적으로는 나쁘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이가 48.8%로 가장 많았다. 단기적·장기적으로 모두 도움 될 것이라고 답한 이도 22.8%였다. 모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자는 17.8%였다(〈그림 3〉).

전력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탄소중립 정책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2011년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 반대 여론이 급증했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찬반 양론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조사 결과가 나오곤 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달랐다. 전력 생산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물은 결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59.1%로, 원자력발전 확대(23.7%)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그림 4〉). 원자력발전 확대에 찬성하는 여론은 60세 이상 남성(40.4%)과 18~29세 남성(34.6%)층에서 높게 나타났다.

대규모 조사에서 ‘탈원전’ 여론 확인

이 결과는 2021년 12월 〈시사IN〉 조사와 비교하면 흥미롭다(〈시사IN〉 제747호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기사 참조). 두 조사 모두 같은 표집틀(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을 활용해 온라인 조사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사IN〉 조사에서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원자력발전을 계속 가동해야 한다’라는 진술에 64.8%가 동의했는데 이어서 ‘원자력발전보다 재생에너지 확충을 우선해야 한다’라는 진술에도 68.5%가 동의했다(〈그림 5〉).

앞의 ‘원전 계속 가동’에 동의한 응답자 중 상당수가 ‘원전보다 재생에너지’라고 선택한 것이다. 이는 당장은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원전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앞으로 재생에너지 논의가 확대되면 ‘탈원전’ 여론이 반등할 수 있음을 나타냈다. 이번 ‘기후정치바람’의 조사 결과에서는 그런 탈원전 흐름이 명확하게 포착됐다. 1만7000명 대규모 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앞으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기준 국내 차량 등록 대수는 2587만 대다. 두 명 중 한 명이 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자동차 수를 줄이고, 휘발유차·경유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자동차 적정 대수를 정하고 등록을 제한하자는 주장에 대한 여론도 살펴봤다. 찬성이 56.6%로, 반대(33.9%)보다 높았다. 매우 찬성은 13.6%, 어느 정도 찬성이 43.0%였다.(〈그림 6〉)

휘발유차와 경유차의 신규 판매 중단에 대해서는 찬성(63.8%)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대는 26.0%에 불과했다(〈그림 7〉). 이런 여론은 세계적 흐름과도 맞물린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35년부터 휘발유차·경유차 등 모든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고, 미국도 캘리포니아·뉴욕주 등 주요 지역에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고 있다. 서울시 역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등록을 금지하기로 했다.

식량문제는 보통 시민들이 기후위기를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이슈다. 앞서 심각한 사회적 도전 과제 순위에서는 많이 처졌지만, 최근 과일·채솟값 폭등에서 보듯 이상기후로 인한 농산물 생산량 감소는 시민들의 일상을 직격한다.

식량 생산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물었다(1+2순위 합계). 국내 농산물 보호정책 추진(58.5%), 저탄소 농업 전환 정책 추진(57.2%), 소득작물 개발과 보급 추진(47.4%) 순이었다(〈그림 8〉). 농산물 생산 주체인 농민을 보호할 수 있는 ‘재해에 따른 피해보상 확대(23.7%)’에 대한 응답은 적었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업 피해는 매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 이번 조사의 본 주제다. 다가올 총선에서 가장 관심이 큰 분야를 물었다(1+2+3 순위 합계). 경제 활성화가 87.6%로 가장 많았고, 복지 강화(62.4%) 정치개혁(57.1%) 외교·안보(40.3%) 순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은 38.6%로 나타났다(〈그림 9〉).

이는 앞선 질문(심각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과제, 〈그림 2〉)에 대한 응답과 다른 양상이다.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로는 기후위기를 많이 꼽았지만, 당장 눈앞의 총선에서는 그 순위가 뒤로 밀린다는 이야기다. 기후위기가 왜 여의도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되기 어려운지 설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기후위기 대응’을 선택한 이들이 38.6%라는 점도 간과할 순 없다. 이들을 끌어들일 만한 정당과 공약이 나온다면 총선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할 것인지 물었다.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달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응답이 62.5%였다. 평소 지지하던 정당에 투표하겠다는 이들은 24.6%였다. ‘기후 투표’ 의향을 가진 집단이 두 배 이상 많다(〈그림 10〉).

이것 또한 2021년 12월 〈시사IN〉 조사와 비교하면 흥미롭다. 당시 ‘대선에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겠다’라는 응답이 38.8%였고, ‘이번 대선에서 다른 어떤 공약보다 기후위기 공약이 중요하다’라는 응답이 36.8%였다(〈그림 11〉).

진술 내용이 ‘고민하겠다’와 ‘지지하겠다’로 다르지만 정치적 견해(성향)가 달라도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는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꽤 늘어났음을 확인한 셈이다. 특히 40대 여성(67.8%), 30대 여성(64.9%), 호남(68.9%), 농축어업(67.9%) 집단에서 이런 응답이 많았다.

이제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기후정치바람은 한국의 ‘기후 유권자’ 집단을 포착해냈다. 기후 유권자는 기후위기 관련 정보를 잘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위기 대응 정치인에게 투표하려는 이들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기후 유권자는 전체의 33.5%다.

‘매우 진보·보수’는 기후투표 의향 낮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그림 12〉). 성별로는 남성층에서 35.7%,여성층에서 31.4%를 차지했다. 기존 기후위기 관련 조사들에서 보이는, 여성층이 기후위기 이슈에 남성보다 민감하다는 내용과 사뭇 다른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는 민감도뿐 아니라 기후 정보 인지도, 투표 성향 등을 함께 고려했기 때문이다.

연령대로 살펴봐도 기존 인식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기후 유권자는 60세 이상(35.2%)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33.8%), 30대(33.5%), 50대(32.6%) 순이었다. 큰 격차는 아니지만 연령이 높을수록 기후위기에 무관심할 것이라는 예단을 깨는 결과다. 홍수·폭염·가뭄 등 과거에 없던 기후 재난을 직접 겪은 ‘경험’이 있는 고연령층에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올해 총선이 최초의 ‘그레이(Gray) 선거(60세 이상 유권자의 수가 30대 이하보다 많아지는 것)’가 되리라는 점에서 이 또한 눈여겨볼 결과다.

이념 성향별로는 어떨까. 기후 유권자가 많은 층은 진보층(41.7%)이었다. 중도층은 30.6%, 보수층 28.8%였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진보층이 기후 의제에 반응하는 집단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사 분석을 수행한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정치학자)는 “응답자를 매우 진보, 중도 진보, 중도, 중도 보수, 매우 보수로 나누었을 때 기후 투표 의향이 가장 낮은 층은 ‘매우 진보’나 ‘매우 보수’층이었다. 반면 높은 층은 중도층이었다”라고 말했다. 이관후 교수 역시 “중도층이 선거의 당락을 가른다는 점에서, 기후 유권자의 중요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9년 9월 ‘기후위기 비상행동’ 참가자들이 서울 시내에서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19년 9월 ‘기후위기 비상행동’ 참가자들이 서울 시내에서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이번 조사의 최대 의의는 대규모 설문을 통해 한국에서 ‘기후 정치’의 가능성을 탐지했다는 점이다. 서복경 대표는 “기후 정치가 이제 첫발을 뗀 것 같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무상급식을 이슈화시켰을 때 양대 거대정당은 이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동네 골목 곳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주민소환운동을 펼치고, 행정심판을 청구한 시민운동의 결과 무상급식이 전국 의제로 떠올랐다. 기후위기는 무상급식처럼 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다.”

기후정치바람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후 유권자들이 많이 분포한 ‘기후 선거구’를 선정해 대응 전략을 짤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각 지역의 유권자를 접촉하면서 이들을 ‘기후 정치세력’으로 결집시킨다는 목표다. 이번 총선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을까. 다음 호 기사에서 한국의 기후 선거구가 어디인지 다룰 예정이다.

 

이렇게 조사했다

대상: 전국 18세 이상 남녀
목표 표본: 1만7000명(특별/광역 시도별 1000명)
표본오차: ±0.8%포인트(95% 신뢰수준)
표집 방법: 17개 광역시·도 1000명 유의할당 후 각 광역 내 성별·연령대별·권역별 인구 구성비에 따르는 할당추출(Proportionate Quota Sampling)
가중 방법: 2023년 11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라 성별·연령대별·광역단체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조사 방법: 온라인 패널(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에 이메일/문자로 웹 설문 링크를 발송하는 방식의
웹 조사 조사 기간: 2023년 12월 1일〜27일(27일간)
조사기관: 메타보이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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