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야채 경매가 열리고 있다.ⓒ시사IN 이명익
3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야채 경매가 열리고 있다.ⓒ시사IN 이명익

퀴즈부터 하나 풀어보자.

농산물의 가격 파동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가격이 오르면 수요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② 가격이 떨어져도 수요량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③ 생육기간이 길어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④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아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경제교육 시스템 ‘경제배움e’에 나오는 문제다. 정답은 ①번이다.

흔히 농산물을 두고 가격탄력성이 낮은 재화라고 말한다. 농산물 값이 오르든 내리든 수요가 일정하다는 뜻이다. 흉년으로 배춧값이 아무리 올라도 사람들은 김치를 담그고, 과일값이 금값이 돼도 집 안에 제철 과일 몇 알쯤은 쟁여놓기 마련이다. 가격이 올랐는데도 수요가 줄지 않으니 값은 더욱 오른다. 반대로 농산물 생산이 늘어 가격이 내렸다고 해서 채소와 과일을 집에 무더기로 쌓아두지도 않는다. 당연히 농산물 값은 더욱 폭락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양상이 달라졌다. 가격이 너무 올라서다. 지난해 김장철을 앞두고 배춧값이 치솟으면서 김장을 포기하겠다는 집이 속출했다. 배춧값은 정부의 비축 물량 등이 풀리면서 다소 진정됐지만 사과는 심각했다. 올해 들어 마트에서 어른 주먹만 한 사과 2~3알에 1만원이 넘으면서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 됐다.

겨울철에 부담 없이 쌓아두고 먹던 감귤 값도 폭등했다. 최근 한두 달 사이 30~40% 폭등했고, 지난해와 비교하면 배 이상 비싸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감귤 생산량은 지난해와 비슷하다”라고 강조하면서 “사과, 배 등 주요 과일의 생산 감소 등 영향으로 감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격이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비싸진 사과와 배의 대체재로 감귤을 택했고, 그 결과 감귤 값도 올랐다는 이야기다. 농산물 전체의 가격탄력성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이렇듯 개별 품목의 수요는 가격에 따라 출렁인다. 이쯤 되면 과연 농산물을 일컬어 가격탄력성이 낮은 재화라고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침내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상승이 주도하는 물가상승)’이 현실화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통계청이 3월6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올랐는데, 물가를 올린 건 과일과 채소였다. 전년 동월 대비 사과는 71.0%, 귤은 78.1%, 배는 61.1% 올랐다. 과일 물가가 1년 전과 비교해 41.2% 급등했는데, 이는 32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파(50.1%) 등 채소 가격도 12.3% 뛰었다.

〈그림1〉을 보자.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출하기에 주요 채소류의 가격이 얼마나 변동했는지 나타낸 자료다. 전년 대비 평균 등락률이 20.4%(콩)~86.4%(가을무)나 된다. 가을배추의 경우 전년 대비 상승률이 최대 241.1%까지 오르기도 했다. 반면 최대 하락률은 -70.1%에 달한다. 가을무는 더하다. 가격이 오를 때는 255.0%까지 치솟았다가 떨어질 때는 -73.1%를 기록했다. 양파와 고추의 변동률도 큰 편이다. 그나마 안정세를 보인 품목은 마늘과 콩 정도다.

이 자료가 말하는 바는 뚜렷하다. 농산물은 가격변동 폭이 커도 너무 크다. 이것은 소비자에게만 문제가 아니다. 농산물 값이 폭등했다는 건 결국 그해 농사를 망친 농부가 많다는 뜻이다. 재해를 비껴간 소수 농민이 반짝 재미를 봤을지는 몰라도 다수 농민은 결국 농산물 값 폭등의 수혜를 보지 못한다.

생산량 감소와 물가상승 사이 간극

농사는 장기 투자다. 재배작물을 선택하고, 씨를 뿌리고, 키우고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이 최소 몇 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사과 같은 경우는 묘목을 심고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4년이 지나야 한다. 이런 고질적인 가격 불안정은 곧 농업인들로 하여금 농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농산물 가격은 왜 이렇게 널을 뛸까. 우선 기후위기 탓이 크다. 성장기 가뭄, 수확시기 장마, 이상고온으로 인한 병충해 등이 농촌을 직격하면서 매해 농산물 수확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됐다. 사과의 경우 봄철 이상고온으로 꽃이 일찍 핀 뒤 한파가 몰아치는 바람에 꽃이 죽어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 탓이 컸다(〈시사IN〉 제852호 ‘기후위기의 무서운 풍경, 2070년 사과 소멸 시나리오’ 기사 참조).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가을배추·무·콩·사과·배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사과 생산량은 총 39만4428t으로 지난해(56만6041t)보다 30.3% 줄었다. 배 생산량도 26.8% 줄었고, 가을배추 역시 8.1% 감소했다. 기후위기와 함께 농가 고령화 등으로 인한 재배면적 감소도 원인이었다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과나 배의 생산량이 26~30% 줄었다는데 우리가 체감하는 물가 상승률은 그보다 훨씬 크다. 앞서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 조사에서도 사과와 귤은 전년보다 70% 이상 비싸졌다. 생산량 감소의 폭과 물가상승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울 가락시장의 연간 거래액은 약 5조5000억원에 달한다.ⓒ시사IN 이명익
서울 가락시장의 연간 거래액은 약 5조5000억원에 달한다.ⓒ시사IN 이명익

‘유통비용률’이라는 개념이 있다. 소비자 구입비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소비자가 채소를 1000원에 구매했을 때 농가에 간 돈이 700원이고 유통과정에서 300원이 들었다면 유통비용률은 30%다. 유통비용은 직접비(포장비·하역비·운송비·상장수수료 등), 간접비(임대료·제세공과금 등), 이윤으로 나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유통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유통비용률은 49.7%다. 봄철을 앞두고 한창 출하가 진행되는 딸기의 2022년 유통비용률은 46.3%다. 소비자가 1만원에 딸기를 사면 농민이 5370원을 갖고 나머지 4630원이 유통비용으로 잡힌다. 딸기는 양반이다. 사과의 유통비용률은 62.6%, 감귤은 61.9%다. 월동배추는 56.3%, 월동무는 75.7%에 달한다. 무겁고 이파리가 상하기 쉬운 배추나 무는 유통비용이 더 많이 든다.

최근 농산물 가격 급등 이후 다시금 농산물 유통 문제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산지에서 밥상까지, 유통 과정에서 적잖은 비용이 들어 농산물 값이 오른다는 지적은 이미 익숙하다. 그런데 복잡다단한 유통 과정에서 과연 어느 ‘단계’가 문제인지는 모호하다. 지난 몇 해 동안 꾸준히 지적돼온 문제가 있다. 농산물 경매제도다. 경매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물가상승의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을까. 현장으로 가보자.

3월6일 저녁 서울 가락시장.

오이·상추·호박·냉이·시금치를 가득 채운 박스가 곳곳에 부려지고 있었다. 가락시장의 6개 도매시장 법인 중 하나인 동화청과 공판장에서는 경기도 양주·이천 등 근교에서 온 채소류 경매가 열리고 있었다. 연단에 선 경매사 근처로 중도매인과 매매참가인이 모여들었다. 전광판에는 ‘오○○’ ‘적근대’ ‘2㎏’ ‘26’ ‘2600’이라는 글자와 숫자가 나타났다. 오○○씨가 생산한 적근대 2㎏짜리 한 박스에 2600원이고, 26박스가 매물로 나왔다는 뜻이다.

경매 순서는 대기-진행-종료로 이루어졌다. 이날 적근대·로메인상추·시금치 따위가 거래됐는데 대기부터 종료까지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 중도매인들이 박스를 열어 상품을 확인하곤 했지만 대체 뭘 보고 입찰가를 부르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이날 현장 취재에 동행한 백혜숙 지속가능밥상포럼 대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좋은 물건을 가르는 기준이 뭔지 아세요? 그날 들어온 농산물 가운데 경매 낙찰가 상위 1∼5%는 특품이 되고, 6∼35%는 상품, 그 이하는 중품이 됩니다.” 물건의 질이 아니라 경매가 자체가 특품과 중품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날 만난 한 중도매인은 “좋은 물건을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만의 노하우가 있다.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가락시장은 국내 최대 농수산물 거래시장이다. 연간 거래 물량이 약 230만t, 거래금액이 약 5조5000억원에 달한다.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직거래 시장이 커졌다고 하지만, 농산물 온라인 B2C(기업과 소비자 사이) 거래 중 가락시장 같은 도매시장을 거쳐 판매되는 금액이 1조원이 넘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락시장의 기능은 농산물 가격의 ‘기준’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바로 ‘경매’를 통해서다. 가락시장의 ‘경락가(경매 낙찰가)’가 다른 도매시장은 물론 여러 온라인 유통업체에서도 참고하는 기준이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가격 발견 기능’이라고 한다. 당연히 물건이 귀하면 값이 오르고 넘쳐나면 값이 싸진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나중에 문제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

계속 이익을 보는 이는 누구인가

1985년 가락시장이 생기면서 도입된 경매제는 본래 농민을 위한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농가로부터 농산물을 구매하는 상인들 사이에 ‘가격 후려치기’나 ‘칼질’이 만연했다. 수확 전에 입도선매(밭떼기)를 통해 값싸게 물건을 확보하거나 매매계약을 한 뒤 물건에 하자가 있다며 값을 깎는 일이 빈번했다. 대금 결제를 미루는 일도 잦았다. 경매제는 농산물 출하자(농민)가 직접 시장에 물건을 내놓으면 경매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농산물 값을 정하자는 취지였다.

경매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행정 당국은 도매시장 법인에 전권을 부여했다. 농산물을 경매하려는 출하자는 오직 ‘도매시장 법인’을 통해서만 거래에 나서도록 법으로 정했다. 앞서 말한 동화청과가 이런 도매시장 법인이다. 도매시장 법인은 출하자로부터 일정한 수수료(최대 7%)를 받고 수익을 남긴다. 경매를 통해 1만원을 번 농민은 최대 700원을 수수료로 낸다.

가락시장은 이런 도매시장 법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다. 우선 경매를 주관하는 경매사가 이들 법인 소속이다. 경매사 앞에서 입찰가를 제시하는 중도매인은 농산물을 낙찰받아 다시 동네 마트나 가공업체 등에 판매한다. 중도매인과 달리 시장 내 점포는 없지만 일정한 자격을 얻어 경매에 참여하는 매매참가인도 있다.

경매 및 유통단계는 이렇다. 예컨대 농민이 트럭에 농산물을 싣고 시장에 도착하면 물건을 하차하고 경매를 기다려야 한다. 그날그날 물류 및 경매 상황에 따라 몇 시간 만에 끝나기도 하고 10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명절을 앞두고는 하루 이상 대기해야 하는 일도 있다. 경매가 끝나고 중도매인을 거쳐 동네 마트 등으로 이동하기까지 또다시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적잖은 유통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경매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가격 급등락을 막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날그날 시장에 출하된 농산물의 물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다 보니 폭등과 폭락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이런 구조다. 배추 농사가 전국적으로 흉년인 가운데 다행히 잘된 곳이 있다고 치자. 물건이 귀하니 자연스럽게 경락가는 높아진다. 그럼 일정한 규모의 보관 창고를 갖춘 출하자나 산지유통인(산지에서 농산물을 수집해 도매시장에 보내는 사람)으로서는 가급적 늦게 시장에 물건을 내놓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유통 물량이 줄어드니 가격은 더욱 오른다. 다수 농가와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가운데 이익은 소수에게 돌아간다. 유통 물량이 줄었다 해도 경락가가 급등한 만큼 수수료를 받는 도매시장 법인으로서도 손해 볼 일이 없다. 반대로 가격이 폭락하면 어떻게 될까. 포장비며 운송비 등을 고려하면 시장에 물건을 내놓을수록 손해를 보는 이들이 생겨난다. 이런 농민들은 차라리 밭을 갈아엎어버리고 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같은 날 같은 출하자의 농산물도 서로 크게 다른 경락가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그림2〉을 보자. 오이·상추·봄동배추 등을 여러 도매시장 법인에 출하한 이들이 어떤 경락가를 받았는지 나타내는 자료다. 출하자 이○○씨가 오이 18㎏을 A 청과에 내놨을 때는 7만원을 받았는데, 같은 날 B 청과에서는 2만6000원을 받았다.

열무 8㎏을 내놓은 양○○씨는 A 청과에서 1만1750원을 받았는데, B 청과에서는 1500원밖에 받지 못했다. 청양고추를 내놓은 최○○씨의 경우 금액 차이가 12배나 났다. 같은 출하자의 농산물이라 해도 서로 품질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농민단체 등에서는 “경매제는 도입 취지와 달리 농산물 가격을 후려치는 제도로 변질됐다”라고 주장한다.

농협을 제외한 가락시장 5개 민간 도매시장 법인의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은 매우 안정적이다. 2017년에 17.7%였고, 2021년에는 22.1%를 기록했다. 수수료로 10억원을 받으면 약 1억7000만~2억2000만원이 이익이었다는 이야기다.

수익이 안정적이다 보니 현재 이들 도매시장 법인의 주인은 엉뚱한 이들이다(〈그림3〉 참조). 대아청과는 호반프라퍼티와 호반건설이 대주주이고, 동화청과는 신라교역, 서울청과는 고려제강이 대주주다. 한국청과는 더코리아홀딩스가 대주주로 있다. 중앙청과의 대주주는 부동산개발 회사인 태평양개발이다. 모두 농업과 관계없는 곳들이 도매시장 법인을 사들였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퇴직자와 도매시장 법인의 관계도 논란이 된 바 있다. 2020년 12월 KBS 〈시사기획 창〉은 ‘농산물 가격의 비밀’ 편을 통해 농식품부 퇴직 관료가 도매시장 법인협회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매제와 이를 독점 운용하는 도매시장 법인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대안이 등장했다. ‘시장도매인’이라는 제도다. 산지에서 농산물을 수집해 경매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동네 마트 등 소매상에 판매하는 이를 시장도매인이라고 부른다. 중도매인 단계가 사라졌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경매제의 유통단계가 4단계인 데 비해 시장도매인제는 3단계로 줄어든다.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다. 이미 2004년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 강서 농수산물도매시장(강서시장)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아서다. 2021년 강서시장에서 시장도매인의 거래량은 약 37만t이었다. 가락시장의 약 16% 규모이지만, 매년 거래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제도의 강점은 가격 안정성이다. 그날그날 경매에 쏟아지는 물건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도매인이 직접 산지 작황 등을 살피며 생산자와 수의계약을 맺는 만큼 전반적인 가격 예측이 가능하다. 경매 대기시간이 사라지고 유통단계가 주는 만큼 비용도 절감된다. 최종 소비자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021년 서울농수산식품공사 자료(‘도매시장 거래제도 다양화에 따른 사회적 편익 분석’)에 따르면, 시장도매인제 도입으로 인한 비용 절감액이 242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감액에는 각종 물류비용, 중도매인 이윤 등이 포함된다.

시장도매인연합회 임성찬 대표는 “농산물이 과잉생산됐을 때 당장 헐값에 사들이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농가에 적정한 가격을 지급하려 한다는 것이 시장도매인제의 특징이다. 그런 신뢰 관계가 쌓여야 우리도 안정적인 거래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장도매인 제도를 둘러싼 공방

시장도매인 제도가 확대될 경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도매시장 법인은 적극 반대한다. 이들은 우선 시장도매인 제도가 시장가격을 교란한다고 지적한다(〈그림〉 참조). 시장가격을 ‘발견’하는 경매제와 달리 구조상 ‘갑’의 위치에 있는 시장도매인에 의해 과거 경매제 이전 만연했던 가격 후려치기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과거와 달리 농민이 생산자 단체를 결성해 농산물을 납품하는 등 협상력이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쉽사리 시장도매인에게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시장도매인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대금 미지급 상황도 우려한다. 경매 즉시 대금을 지급하는 경매제와 달리 시장도매인제는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먹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강서시장에서 부도로 출하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측은 2016년 정산조합을 설립했다. 시장도매인들이 출자한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출하대금을 지급하는 조합이다.

2022년 2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공영도매시장 공공성 강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마트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 경매제 아래에서는 가격 등락폭이 심해 상품의 안정적 판매가 저해되며, 물량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가격이 예측 가능하고 거래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제를 선호한다. 경매제와 시장도매인 제도를 병행 도입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시장도매인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파리 룽지스 시장, 로스앤젤레스 농산물시장, 베이징 신파디 농산물시장 등이 직거래 형태의 시장도매인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이 경매제를 도입할 당시에 참고했던 도쿄의 오타 도매시장도 경매제 비중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1985년 75%에 달했던 오타 도매시장의 경매비율은 2018년 9.4%로 줄었다. 기존 경매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시장 주체들이 스스로 변화를 꾀한 결과다.

이미 20년 전에 국내에 도입된 시장도매인 제도가 왜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고 있을까. 제도 도입의 키를 쥔 농식품부의 미온적 태도 탓이 크다. 농식품부는 최근 농산물 가격 폭등 이후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 강서시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장도매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서울 강서시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장도매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정부의 대안은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운영 중인 온라인 도매시장은 상품거래가 이루어지면 산지에서 구매처로 상품이 직접 배송된다. 2024년 목표 거래액은 5000억원으로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농가 수취가격 상승 및 유통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한다고 농식품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 도매시장은 결국 누차 지적돼온 기존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역할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백혜숙 지속가능밥상포럼 대표는 “기후위기 시대 농산물 가격 등락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가격 폭등의 해법으로 손쉽게 수입 농산물을 늘릴수록 농가 경영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에 걸맞은 새로운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책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최근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대형마트의 과일 직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현재 과일 수입은 수입업자와 식품제조·가공업자 등만 가능한데, 이를 풀어준 것이다. 정부는 대형마트가 과일을 직접 수입하게 되면 중간 유통비용이 절감돼 소비자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농산물 가격 문제를 취재하던 도중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경북 상주에서는 40대 농민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8년 전부터 복숭아 농사를 지어온 고인은 잇따른 농업재해로 쌓이는 농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농어민당은 3월4일 “기후변동에 따른 농업재해는 생산비 증가와 수확량 감소에 따른 경영 악화를 불러왔다”라는 논평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도 “농업재해 대책은 미루고 농산물 수입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정부 정책이 가져올 결과는 식량주권의 상실이다”라고 밝혔다.

도매시장 개혁 문제를 연구해온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가 가락시장에서 경매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도매시장 개혁 문제를 연구해온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가 가락시장에서 경매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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