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월1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대파 등 채소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월1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대파 등 채소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상승이 주도하는 물가상승)’이 정국을 지배하고 있다. 언론은 연일 ‘금사과’ ‘금배추’ ‘금파’로 인해 식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며 관련 보도를 쏟아내는 중이다. 도매시장 개혁 등 농산물 유통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이런 것들이다.

① 납품단가 지원: 유통업체의 농산물 판매 가격을 낮추기 위해 납품단가를 지원하는 제도. 사과, 감귤, 토마토, 청양고추 등 13개 품목에서 배, 포도, 상추, 양배추 등 8개 품목을 늘려 21개 품목으로 확대.

② 할인 지원: 전국 대형·중소형 마트, 하나로마트, 친환경 매장,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가격을 낮추기 위해 단기적으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 할인율을 20%에서 30%로 상향해 지원. 전통시장에서도 구매 금액에 따라 온누리 상품권으로 일부 환급.

③ 과일 직수입: 3월 중 바나나 1140t, 오렌지 622t을 직수입해 마트에 20% 정도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계획. 직수입 품목도 확대하되 3~4월 중에는 사과 대체 가능성이 높은 바나나와 오렌지를 중심으로 집중 공급할 계획.

정부는 이런 조치로 농산물 판매가격이 낮아져 소비자의 물가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1500억원을 집행하고 필요할 경우 기한 연장과 함께 지원 규모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어느 정도 효과는 있으리라 보인다.

그런데 시민사회와 농민단체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과일 직수입’ 문제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3월19일 성명을 통해 “과일 수입 확대 기조는 단기적으로 농산물 가격 급등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보이나, 수입업자의 이익만 챙겨줄 뿐 중·장기적으로 농산물 가격 급등을 초래하는 악수가 될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3월18일 “윤석열 정권은 사시사철 수입 과일 관세할당(TRQ)을 실시하여 가격을 폭락시켜 농민들의 소득을 파탄냈다. 명절 등 굵직한 대목을 앞두고는 할인행사를 지원하여 농산물 가격을 폭락시키고 대형마트 등 유통자본의 배만 불렸다”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수입 확대가 손쉬운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언론은 사과 값을 잡기 위해 현재 수입 금지 품목인 사과도 수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농산물 수입은 단기적인 가격 안정 효과만 내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을 크게 흔드는 결정이다.

〈그림〉을 보자. 농산물 생산과 수입이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지 나타낸 자료다. 2007년 양파 생산량이 늘어 가격이 49% 하락했다. 그럼에도 7842t이 수입되면서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 당연히 농민들이 양파 농사를 포기함으로써 생산량이 줄자 이듬해 가격은 두 배로 폭등했다. 그러자 양파 값을 잡겠다고 수입을 5만4847t으로 대폭 늘렸다. 2014~2015년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사과를 수입하면 어떻게 될까?

간단한 이치다. 가격을 잡겠다고 농산물을 수입하면, 농민들은 이듬해 재배 면적을 줄인다. 그 결과 농산물 값은 오르고 다시 이를 잡기 위해 수입량이 대폭 늘어난다. 악순환이다. 2020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 제출된 ‘농산물 가격 및 농가경영 안정 정책 방향과 대안’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국내 생산량 감소로 수입량이 증가하면 이를 계기로 수입과 국내 유통 및 가공 채널이 구축되고 소비자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어 수입품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져 국내 생산 감소를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

사과는 어떨까. 사과는 국내에서 재배면적이 가장 넓은 과수다. 전체 사과 중 65%가 경북에서 생산된다. 사과 수입은 곧 국내 과수의 생명줄을 끊어버리는 일이다.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사과 등을 ‘초민감 품목’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이유다. 지성태 서울대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교수는 “초민감 품목 가운데 대표성을 가진 사과 수입이 허용되면 먼저 사과를 포함한 국내 과수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고 더 나아가 그 파장이 국내 농업 분야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농민신문〉 1월28일자).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30% 감소했다는 말은, 곧 그만큼의 손해가 농민에게 돌아갔다는 뜻이다. 재해를 비껴간 일부 농가가 지난해 고수익을 올렸을지 몰라도, 상당수 농가는 고스란히 피해를 맞닥뜨려야 했다. 경북 영주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김성호씨는 “지난해 수확량이 평년에 비해 40%밖에 안 됐다. 박스당 가격은 올랐어도 전체 소득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개별 농가에 대한 지원책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된 ‘납품단가 지원’도 그렇다. 언뜻 들어보면 ‘납품자’인 농민을 위한 제도 같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지원은 결국 농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지역 농협이 농민으로부터 농산물을 사들여 이를 다시 가락시장 등 도매시장에 출하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협에 납품단가를 지원함으로써 앞으로 농협이 개별 농민으로부터 사들이는 수매가가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미 지난해 가을 무렵 수매를 마무리한 사과 농가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있을 리 없다.

농산물 값이 급등해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와 농민이다. 유통상인, 도매시장, 중도매인, 대형마트 등 소매상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대형마트 등에서는 오히려 사과 매출액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판매량은 줄었지만 그만큼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는 “최근 면세유 등 농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경영난에 부딪힌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농협이나 유통업체가 아니라 농민에게 공적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게 옳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18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대파를 들고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인 것 같다”라고 말해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비판을 샀다. 헌법 제123조는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라고 돼 있다. 대파 875원이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은 이런 헌법 구절을 기억하고 있을까. 2022년 농민 1인당 연간 농업소득은 949만원이었다.

경북 의성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어느 농민은 이렇게 말했다. “엊그제(3월16일) 한낮 기온이 20℃가 넘으면서 엄청 따뜻했잖아요.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작년처럼 꽃이 일찍 피었다가 그 뒤에 한파가 오면 어쩌나. 그럼 올해 농사를 망치는 거예요. 이러면 앞으로 정말로 사과를 수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우리는 미래가 없어요. 서울 사는 소비자들은 매일 사과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겠지만, 우리는 삶 전체가 무너지는 거예요.”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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