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지하차도 참사 등 기후재난 위기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의 참사 대응 실패도 반복되고 있다. 그사이 헌법재판소(헌재)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법률 위반이 없다며 이런 취지로 설시했다.
‘이태원 참사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사회재난이었고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 여러 원인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참사’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례가 없는 재난, 여러 원인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참사에서 행정안전부(행안부) 장관 한 사람을 파면하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것이 핵심이다.

헌재 재판관들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재난 중에 같은 재난이, 단일 원인에 의해 발생한 재난이 있는지? 대부분의 재난이 예상할 수 없는 순간, 전례와 다르게 발생하고 복합적 원인에 의해 생긴다. 그래서 재난이다. 고도의 위험사회인 현대사회에서 재난이 살인사건처럼 단일한 원인으로 전례와 똑같은 양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재난안전법이 기본법임에도 그렇게 많은 실무 규정을 두고 있다. 여러 부처와 지자체가 동시다발로 개입해 관리하도록 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앙사고수습본부·긴급구조기관·긴급구조지원기관 등 복잡한 대응 수습 체계를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 장관은 그 복잡한 구조의 중심에 있다. 예방, 대비, 대응과 수습, 복구 과정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고 긴급구조기관과 긴급구조지원기관 등을 총괄 조정해야 하는 책무를 맡고 있는 자리다(재난안전법 제6조). 하지만 헌재 논리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가장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쥐고 있으면서도 정작 책임질 일은 없다. 헌재는 재난안전법 입법취지와 목적에 따라 ‘국민의 안전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최고 책임자가 법을 적극적으로 준수했는가’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헌재 재판관들은 파면이라는 무거운 불명예를 ‘이상민 개인’에게 안기는 것에 부담을 느끼며 헌법과 재난안전법을 단편적·문언적으로만 해석했다. 국민들의 생명권과 안전권이 기댈 곳은 없다.
대법원, 공무원 직무 관련 위법성 넓게 인정
헌재 재판관들은 행안부 장관이라는 자리가 왜 있는지, 국가는 왜 존재하는지, 재판관들 스스로 헌법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책임 여부를 판단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 사건에서 공무원의 직무 관련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넓게 판시해왔다.
“법령 위반이란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작위 의무가 규정되어 있는데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권 존중·권력남용 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하여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 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

말단 공무원들에게 적용되는 이러한 적극적 기준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총괄 조정 책임자인 행안부 장관에게는 적용되지 못했다. 헌재 재판관들의 소극적 태도가, 계속 반복되고야 마는 재난 대응의 실패가, 총체적 국가 부재의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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