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 없는 압수‧수색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을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고 언제든지 별건 수사로 이어져 피의자에게 부당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성이 크다.” 지난 5월1일 전국 영장전담법관이 참석한 간담회 자리에서 ‘전자정보 압수수색영장 실무 개선 관련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주제 발표자로 나선 정재우 판사의 말이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영장전담판사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기 전,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아는 사람을 불러 심문할 수 있고, 전자정보 압수수색영장에 검색어·대상 기간 등을 기재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검찰과 대한변호사협회는 수사의 밀행성을 해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냈다.
휴대전화, 컴퓨터, 서버 등에 저장된 전자정보 압수수색이 일반화되면서 압수수색의 범위 제한 등 개선 방안은 오래전부터 꼭 필요했다. 현재 영장전담판사는 검사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만 보고 판단한다. 압수수색영장 기각보다 발부가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해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이 91%로, 법원이 ‘영장 자판기’라는 오명도 받았다.
판사로 재직할 때나 변호사로서 형사기록을 볼 때 불편해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한 예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었는데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특정 시기 이메일을 전부 압수수색했다. 그 이메일에는 공직선거법 위반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 많았다. 내연녀와 안부를 주고받은 이메일, 회사 동료들과 다투는 내용 등 당사자로서는 국가에 전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수두룩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사건과 무관한 자료를 보면서 피고인에 대한 심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받는 것이 맞는지 지극히 의문이었다. 변호사로서는 그런 증거들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지난해 압수수색영장 발부율 91%
검찰과 경찰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자료들을 제한 없이 압수해서 보유하고 있는 건 더 문제다. 법 집행기관이 헌법에서 위임받은 범위를 넘어서 개인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은밀한 사생활 정보는 조사실에서 수사받는 피의자에게는 압박이 된다. 검사의 회유까지 덧붙여지면 피의자 방어권은 검찰청 안에서 무너진다. 휴대전화 등 전자장치가 압수수색당하면 얼마나 개인정보가 광범위하게 수사기관에 넘어가는지 누구보다 검사들이 잘 안다. 라임 술 접대 사건, 고발 사주 의혹 사건 등 수사 대상이 된 검사들은 하나같이 휴대전화를 교체하거나 잃어버렸다. 아이폰을 쓰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방어권 차원이라며 수사기관에 20자리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전자정보의 광범위성이 문제 되는 일부 사안에서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에, 영장전담판사가 수사기관의 일방적 의견이 담긴 서류만 보고 판단하던 절차를 개선해 수사 당사자의 직접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사전심문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경찰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의심이 든다며 MBC 뉴스룸을 압수수색하려고 했다. ‘바이든-날리면’을 보도한 MBC 기자의 주거지와 휴대전화 등을 모두 압수수색하고도, 방송사 보도국까지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한동훈 장관의 개인정보가 중요한 사생활이라면 기자의 사생활은, 언론 취재 및 보도의 영역은 중요하지 않은 가치인가. 나의 휴대전화 비밀번호가 중요하면, 다른 이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도 중요하다. 나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너의 사생활은 보호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은 지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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