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았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우리가 겪은 현실을 바꾸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내 일이 되기 전에는 무관심했다,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서로를 보듬었다.
피해자들이 서로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만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기에 이들은 서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사고를 당하더라도 참사가 되지 않기를, 자신들과 같은 2차·3차 피해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들로 하여금 계속 진상규명을 외치게 한다.

‘피해 최소화’는 국가의 책무인데 두 번의 참사에서 대통령과 정부는 피해를 확대해 왔다. 피해자들은 반정부 세력으로 취급당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사찰로 처벌받은 기무사 관계자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4월28일 기무사는 세월호 참사 직후 ‘세월호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당시 기무사는 광주·전남 지역, 경기 안산 지역 기무부대 등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유가족 등 민간인을 사찰했다. 당시 기무부대원들이 ‘부대장님 지시 사항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전달받은 내용을 보면,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 사항·정부 측 대책반과 실종자 가족 대표 간 토의 내용, 가족들 반향·특이 언동’ ‘반정부 선동자·유언비어 유포자 등 색출’ 등을 담고 있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지시 행위는 국군기무사령부령이 정한 기무사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문에는 사찰 활동 방식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핸드폰 소지하되 패턴 지정 및 카카오톡 잠금장치 후 활용, 통화·문자 보고 시 충성 구호 등 군 관련 용어 사용 금지, 문자 발송 시는 현장을 이탈하여 송수신 후 즉시 삭제 조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외 일체의 신분증 소지 금지, 우발 상황 대비 실종자 가족으로 신분 위장 및 답변.”
독립적인 이태원 참사 조사 기구가 필요한 이유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재난 피해자들의 유가족으로 위장해 그들의 출신, 경력, 정치적 성향 등 재난 피해와 무관한 정보 수집을 한 것이다. 이렇게 취합된 정보들은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주요 직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되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이미지 관리나 여론 관리를 하는 데도 이용되었다.
이렇게 국가가 피해자들을 반정부 세력으로 취급하니, 포털 뉴스 댓글에 ‘빨갱이’ ‘시체 팔이’라는 극언이 난무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이런 퇴행이 끝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고스란히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이태원 참사 피해자 450명은 범죄 수사 목적으로 본인들의 계좌 거래 내역, 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이 수사기관에 의해 조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은 이태원역장의 지하철 무정차 통과 관련 조치의 적절성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수사와 계좌 거래 내역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었을까. 윤석열 정부는 피해자들이 애타게 궁금해하는 사항들은 전혀 답하지 않으면서 또다시 피해자들을 반정부 세력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퇴행을 멈추고 이태원 참사 독립 조사 기구를 만들어 조속히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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