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에서 A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7월20일 교내에 마련된 임시 추모 공간에는 밤까지 발길이 이어졌다. ⓒ시사IN 신선영
7월18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에서 A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7월20일 교내에 마련된 임시 추모 공간에는 밤까지 발길이 이어졌다. ⓒ시사IN 신선영

큰길 건너편에는 외벽이 간판으로 가득 찬 상가가 있었다. 각종 학원과 병원, 운동시설과 재테크 업체 간판이었다. 그 뒤로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서울 서초구의 S초등학교를 둘러싼 풍경이다. 7월18일 2년 차 교사 A씨가 이 학교 교실에서 숨졌다. 2000년생. 23세였다.

7월20일 강남 한복판 S초등학교 앞에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셀 수 없이 많은 근조 화환이 가로·세로 100m인 학교 블록 전체를 에워쌌다. ‘동료 교사 일동’ 명의가 많았다. 인도 양옆에 들어선 화환 사이로는 검은 옷을 입은 추모객들이 줄을 지었다. 몸은 정문으로 향했으나 학교는 진입을 막았다. 최고기온 33℃ 불볕더위 속에서 추모객들은 “문 열어” “열어줘”라고 구호를 외치며 3시간여를 학교 측과 대치했다.

오후 6시경 학교는 문을 열었다. 교내 스피커로 “유가족이 원치 않아 교내 추모 공간을 마련하지 않으려 했으나 추모객 뜻에 따라 임시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라고 했다. 헌화하는 행렬은 이후 2시간 가까이 멎지 않았다. 추모객 대부분은 젊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들어가 말없이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이가 대다수였다.

A 교사는 왜 숨졌을까. 사건 직후부터 SNS상에는 학내 폭력 사건을 처리하던 그가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저연차인데도 불구하고 기피 업무인 1학년을 2년 연속 맡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문제를 일으킨 학부모가 정치인 가족이라는 주장이 돌고, 지목된 정치인들이 해명하는 일도 벌어졌다. 7월20일 S초는 학교장 명의로 입장문을 냈다. 고인의 담임 학년은 본인 희망대로 배정된 것이며,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니라 나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권한 관리업무였다고 주장했다. 해당 학급에서 학교폭력 신고 사안은 없었으며 교사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치인 가족도 해당 학급에 없다고 밝혔다. 이 입장문은 같은 날 한 차례 수정됐다. “해당 학급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진 사안은 학교의 지원하에 다음 날 마무리됐다”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충격에 대해 적극 지원하겠다”라는 내용이 빠졌다.

7월20일 〈뉴데일리〉는 A씨의 일기장을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업무 스트레스 외에도 개인사로 인한 우울감과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경찰은 ‘타살을 의심할 만한 흔적이 없고, A씨가 7월 중순 학생 간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접촉했으나 별다른 갈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S초 교사 전원과 몇몇 학부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7월21일 교육부는 서울특별시교육청·강남서초교육지원청과 합동조사단을 꾸려 “해당 교사의 업무 분장, 학교폭력 사안 처리 등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집중 조사하겠다”라고 밝혔다.

7월 20일 서울 서초구 S 초등학교에서 숨진 A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온 동료 교사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교사들은 A씨의 사망이 업무 외 개인적 사유 탓이라는 추정에 반발한다. 7월21일 서울교사노동조합(서울교사노조)은 S초 전현직 교사들에게 받은 제보를 공개했다. “S초는 민원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학교다” “학급에 공격적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 고인이 매우 힘들어했다” “학교 차원에서 (교사에게) ‘함구하라’고 했다” 등의 증언이 나왔다. 제보 교사들에 따르면, 올해 A 교사 학급에서는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긋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관련 학생의 학부모는 A 교사가 알린 적 없는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수십 통 걸어왔다. A 교사는 동료에게 ‘방학 후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교무실에 찾아온 적도 있다. 그는 고인에게 ‘애들 케어(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 A 교사는 동료에게 ‘작년보다 10배 더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교사노조는 유가족 동의를 받아 고인의 사망 보름 전 일기를 공개했다. “금~주말을 지나면서 무기력·처짐은 있었지만 그래도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월요일 출근 후 업무 폭탄+○○(학생 이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 서울교사노조는 “고인께서 생전 업무와 학생 문제 등 학교생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분명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고인이 되었을 거라는 추정성 보도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혔다.

추모 현장에서 만난 전현직 교사 다수가 “A 교사가 교실에서 목숨을 끊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고인이 겪었던 ‘학교생활로 인한 어려움’은 교육부나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는 숨겨진 진실이 아니다. 교사 대다수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7월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는 전현직 교사와 교대생 등 5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추모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2년 차 교사라고 밝힌 이는 연단에 올라 “이번 사건이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2년 차 교사는 “자기 아이에게 잘못을 한 다른 아이를 사회적으로 매장해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퇴근 시간 지나서까지 듣는다. 원래 이런 직업이라고 여기다가 정신과 상담을 예약하는 나를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일부 학교의 몇몇 학부모만 교권을 침해하는 게 아니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일은 대한민국 교실 어디서나 계속됐다”라는 발언도 나왔다.

숨진 A 교사를 추모하는 인파의 모습. 진입을 통제하는 경찰을 향해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시사IN 신선영
숨진 A 교사를 추모하는 인파의 모습. 진입을 통제하는 경찰을 향해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시사IN 신선영

추모 행사가 없던 7월23일에도 따로 S초등학교에 간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고 눈이 충혈된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학교 인근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32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재작년 퇴직한 임경희씨(60)는 정문에서 추모객들에게 조화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현직에 있는 젊은 교사들은 일도 많고 눈치도 보여 나서기 힘들다. 퇴직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임씨에게 조화를 받으러 온 한 교사는 옆 학교에서 일한다고 했다. “내 후배들은 이미 많이 죽었다”라는 게 그의 첫마디였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사를 괴롭히는 사람이 많다고 그는 말했다. “1대 1 메신저 채팅이나 보는 사람 없는 곳에서 폭언을 한다. 이렇게 하면 모욕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학교, 모든 학급에서 매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는 학교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과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인이 있다고 했다. A 교사는 학교에서 사망해 특히 파장이 컸는데, 유사한 비극 다수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왜 이런 문제가 불거졌을까. 현장에서 들은 교사들의 생각은 좀 복잡했다. S초에 모여든 추모객 대부분의 목적은 분명 A 교사에 대한 애도만이 아니었다. 현재 침해되고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투쟁 성격도 짙었다. 말 거는 교사마다 각자 경험한 기상천외한 일들을 ‘교권 침해’ 사례로 들려줬다. 그런데 학생 인권과 ‘교권’이 상충하는지 물으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울분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교사들은 학생을 투쟁 상대로 삼는 구도를 경계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는 이는 드물었고,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교사는 만날 수 없었다. 감정이 격앙된 가운데에도 모두 ‘학생 인권과 교권은 공존할 수 있다’는 전제에 동의했다. 그러면 무엇이 교권을 침해한다고 느낄까? 일견 모순되게도, 교사들은 ‘학생 인권만 우선시하는 제도와 현장’을 지목했다.

“교권과 학생 인권, 늘 상충하진 않지만…”

교사들이 지지하는 ‘학생 인권과 교권의 공존’이란, 두 권리가 ‘파이 나누기’가 아니라는 의미에 가깝다. 학생은 학대당하지 않고 더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사는 부당한 간섭과 방해 없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둘 중 어느 한쪽을 약화한다고 다른 쪽이 자동으로 강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체벌 부활로 학생 인권을 낮춘다고 해서 교권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이 맥락에서 교사들은 “학생 인권과 교권 둘 다 평등하게 추구해야 한다” “싸우자거나 학생 인권을 내려서 교권을 얻자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7월24일 S초등학교를 방문한 추모객. 근조 화환과 추모 메모가 학교를 둘러쌌다.ⓒ시사IN 신선영
7월24일 S초등학교를 방문한 추모객. 근조 화환과 추모 메모가 학교를 둘러쌌다.ⓒ시사IN 신선영

그러나 이들이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드는 경험 중에는, 학생 인권과 교권 양쪽에 걸쳐 있고 어느 한쪽을 희생하는 결말이 기다리는 사안도 있다. ‘어린 시절 낙인의 상처를 겪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학생 인권 신장에 이롭다. 그런데 한 학부모가 이런 이유로 교장을 찾아가, 자신이 쓴 학기 말 통지표 내용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하는 교사가 있었다. ‘위협적 언사나 물리력으로 아동을 제압해선 안 된다’는 전제는 온당하다. 하지만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를 교실 밖에 세워두거나 힘으로 제지하면 자신이 곤경에 처하지 않을지 교사들은 고민한다. 교장이나 교육청의 조력에 대해 묻자 말을 마치기도 전에 냉소가 돌아왔다. “그분들은 보통 우리 편이 아니다.”

S초 사건 이전까지 교사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던 까닭을 두고 서울의 23년 차 교사는 “체력과 에너지가 없다. 그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화나는 일이 생겨도 각자 업무에 쫓겨 연대할 힘이 없었다. 보통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거의 못 간다. 아이들 다칠까 봐 염려해서다. 자신에게 부당한 민원이 들어와도 웬만하면 참는다.” 10여 년 전 그는 자신에게 문자 메시지로 욕설을 보내고 1년 내내 수업을 방해하던 학생을 징계해달라고 학교에 요구한 적이 있다. 사과라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을 겨우 쪼개 학교장에게 자료를 제출하자, 교장은 “그냥 반을 바꿔줄게”라고 일축했다.

교사들은 보호와 존중을 요구했다. 수단으로 법 개정을 논하는 이도, 민원 창구 변화를 말하는 이도 있다. S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인근 학교 교사는 “학생이나 학부모들만 변하길 기다릴 수 없다. 당장 다음 학기부터 다시 지옥불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몇 분간 분통을 터트리던 그는 인터뷰 끝에 “그래도 학부모님 100명 중 한두 분 말고는 다들 괜찮다”라고 덧붙였다. S초 담장에 붙은 무수히 많은 메모지 중 하나에는 “교실을 구해라. 교사를 구해라. 더 많이 죽기 전에”라고 쓰여 있었다. 비 오는 날이었다. 검은 옷 입은 사람 몇 명이 메모지가 붙은 곳마다 투명한 천막을 덮어두었다.

서울 서초구 S 초등학교에서 숨진 A 교사가 일했던 교실 밖 햇볕 하나 들지 않는 외진 교실 앞에 한 추모객이 추모를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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