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을 받았다. ⓒ시사IN 신선영

세 번째 불허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4월 보궐선거로 당선되고 새로 임명한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 7기는 지난해 3월 임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을 세 번 내렸다. ‘코로나19 백신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 설치’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추모문화제 분향소 설치’ 그리고 ‘서울퀴어문화축제’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축제를 열어야 했던 2019~2020년을 빼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매해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그렇기에 이번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은 ‘광장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이번 결정은 기시감을 준다. 오세훈 시장과 광장의 악연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당시 오세훈 시장은 참여연대 등 각계 시민단체가 주최한 ‘6·10 범국민대회’를 불허했다. 당시 행사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문화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오 시장은 "정치적인 행사에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긴 적 없다"라며 행사의 주체와 내용 등을 종합하면 정치적 행사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시장의 ‘불허’ 결정은 서울광장 조례 개정 운동이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서울광장 운영 방침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서울광장 조례를 위한 주민 발의안에 서울시민 10만3300여 명이 서명했다. 2010년 조례 개정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신고제로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행사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사용 목적에 맞지 않거나 폭력 등이 우려되는 행사에 한해 시민위에서 신고를 반려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조례 공포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서울광장 조례 무효 확인소송’까지 냈다. “신고만으로 서울광장을 사용하는 것은 시장의 권한을 침해한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오 시장이 이른바 ‘서울 무상급식’ 투표로 사퇴하면서 소송은 취하됐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광장 운영 방침을 '신고제'로 바꿀 당시 "시장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라며 반대했다. ⓒ시사IN 신선영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서울’도 뺐으면”

서울시는 시민위를 통해서만 서울광장 사용을 제한할 수 있게 됐다. 2021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복귀한 오세훈 시장은 7기 시민위 12명을 임명했다. 12명 중에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 3명과 위촉직 위원 3명이 보수적 정치 성향으로 분류된다. 2명은 서울시 소속 공무원이다.

위촉직 위원 6명 중 시민위 위원장인 윤기찬 변호사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부대변인과 법률자문위원직을 거쳤으며 2015년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김영윤 시민위 부위원장은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등 이명박계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국민통합연대 소속 활동가다. 시민위 위원 중 한 명인 함인경 변호사는 윤석열 대선 캠프 상근 부대변인을 거쳤다.

건설 관련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두 30대 청년(위촉직 위원)은 ‘서울미래인재’라는 사이트를 통해 시민위의 제안을 받았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공무원은 “당시 서울시 산하 위원회에서 청년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정서가 있었다. 그래서 시민위의 남은 두 자리를 채울 인물들을 미래청년기획단에 의뢰했다. 아무래도 서울광장에 조형물 같은 것들을 설치하는 일이 많아서 건축 분야 경력을 가진 두 사람에게 제안이 간 걸로 추측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뽑힌 한 사람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관심 분야를 '서울미래인재' 사이트에 입력해뒀더니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이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보냈고, 위원회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시민위는 조형물 설치만을 고려하는 기구가 아니다.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이후 서울시는 광장 사용 여부와 관련해 결정하기 까다로운 안건을 시민위로 넘겨왔다. 대표적인 행사가 서울퀴어문화축제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매번 시민위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2019년 서울시 인권위원회에서는 광장에서 열리는 다른 행사와 달리 '유독 서울퀴어문화축제만 시민위에 그 결정권을 일임함으로써 집회 주최 측에 부당한 차별과 업무 지체를 겪게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을 받았다. ⓒ시사IN 이명익

이는 앞서 (박원순 시장 재임 때인) 2017~2018년 시민위 회의에서도 언급됐던 내용이다. 해당 연도의 회의 속기록에는 “기독교 집회만 해도 누군가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데, 그것은 저희가 심의하지 않는다” “주최 측에서 신고를 하면 서울시는 하자가 없으면 받아주는 것이 맞는데, 이것이 위원회로 넘어와서 어쩔 수 없이 논의를 했다. 논의의 결론은 ‘이것은 심의 사항이 아니다’였다” “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사용신고 수리 여부는 위원회의 의견을 청취할 부분이 아니고, 서울시가 기준을 가지고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등 시민위 위원들의 발언이 적혀 있다.

하지만 7기 시민위가 임명된 이후 지난해와 올해 모두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가 시민위 심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지난해 시민위는 데시벨 제한, 행사 일정 축소 등을 논의했다. 해당 축제를 축소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6월15일 열린 시민위 속기록을 살펴보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위원들의 반감도 드러난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들은 ‘인권이다, 평등이다’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하다. 광장이 깨끗했으면 좋겠고 맑았으면 좋겠는데” “(참여자들은) 소수자들인데 이들을 위해서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본다는 것 자체가 조금 그래서, 강한 제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축제를) 하니까 우리도 하겠다고 뛰쳐나온 건데 앞에 서울이라는 건 뺐으면 좋겠다. 그냥 그들만의 문화축제로 갔으면. 저게 왜 문화인지도 잘 모르겠다” 등의 발언이 오고 갔다.

그 결과 지난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광장 사용을 조건부로 승인받았다. 신체를 과다하게 노출하지 않아야 하고, 청소년보호법상 유해·음란물을 판매하거나 전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이듬해 서울광장 사용 신청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심의인가, 검열인가

그리고 올해 ‘불허’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5월3일 열린 제4차 시민위의 안건은 '서울퀴어문화축제 또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서울광장 사용 신고 수리결정'이었다. 동일한 날짜에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한 두 행사 중 어느 곳에 광장 사용을 승인할지를 정하는 자리였다. 시민위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주최 측이 지난해 조건으로 내걸었던 부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기독교단체 CTS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에 서울광장을 내줬다. 이들 행사가 공익성이 더 높다고 봤다.

2018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 맞은편에서 보수 단체들이 동성애 반대 예배와 공연을 했다. ⓒ시사IN 신선영
2018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 맞은편에서 보수 단체들이 동성애 반대 예배와 공연을 했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5월3일 시민위 심의 속기록을 살펴보면, 불허 결정이 의도된 차별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퀴어문화축제를 허용하면) 마치 대한민국 자체가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는 문화인 걸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게 청소년들의 바르게 커야 하는 성문화에 대한 인식,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논란이 있고 문제가 있는 축제들은 위원회에서 걸러내야 될 것 같다.” “본인들이 자유를 표현할 권리도 있지만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권리라든지 다른 시민들의 의견도 중요하다.” 한 위원은 “제가 이것(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신청 결정) 때문에 학부형들한테 전화를 엄청 받았다. 정말 힘들었다”라며 “어떤 것이 더 공공을 위한 이익인가를 체크해나가다 보면 결국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공공을 위한 이익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CTS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은 신규 행사다. 〈시사IN〉이 입수한 CTS문화재단의 '서울광장 사용신고서'에는 행사 내용이 단 한 줄 소개돼 있다. '청소년과 청년층에 잘 알려진 CCM 가수 및 청소년·청년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과 문화 교류'라는 것이다. 회의 중에 이 행사에 대한 구체적 질의는 단 한 차례도 오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불허된 다른 행사들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다. 대면 심의가 진행된 덕에 속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추모문화제 분향소 설치’를 위해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대책위는 지난 2월과 5월, 두 차례 모두 광장 사용 신청이 불승인됐다. 서면 심의로 진행된 탓에 불승인 사유는 '서울광장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지 않다. 주최 측 역시 이유를 알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불승인이라는 결과만 통보받았다. 왜 광장을 못 쓰게 하는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광장 사용 여부를 선택적으로, 자기들의 기준대로 정하는 것 같아 답답했다.” 유가족 이정민씨의 말이다.

다시, 서울광장은 누구의 것일까? 2기 시민위 위원(2012년 3월~2014년 3월)으로 활동했던 이원재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시민위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시민들이 광장을 사용할 권리를 제재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위는 행사 자체의 종교·정치적 내용에 대해서는 판단하거나 관여할 권한이 없다. ‘사람들이 불쾌해할 것이다’ ‘공익적이지 않을 것이다’ 같은 주관적 추정으로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심의가 아니라 검열이다. 지금 오세훈 시장의 시민위는 집회를 차별적인 기준으로 허락하는, 과거의 오세훈식 행정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결국 서울광장 사용이 거부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오는 7월1일, 서울 시내 다른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채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은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 불허 결정은 서울시가 시민위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시민들의 광장’이 정치권의 입맛대로 닫힐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준 사건이다. 민주적인 광장 운영은 무엇을 통해 지켜질 수 있는가? 다시 던져진 숙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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