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3월12일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일대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

2017년 김정현씨(가명)는 변희수 전 육군하사(하사)를 처음 만났다. 매달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그 둘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트랜스젠더들이 모인 테이블이었다. 당시 열여섯 살이던 그는 스무 살 변희수 하사가 신기했다. “군복을 입고 계셨거든요. 근데 굉장히 힘들어 보였어요. 위축돼 있고 말도 없고. 그때는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3년 뒤에야 변희수 하사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군인인 그가 커밍아웃 기자회견을 연 뒤였다. 군으로부터 ‘심신장애’를 이유로 강제 전역을 당한 뒤 변 하사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위한 검정고시 교실을 준비하는 자리에 들렀다. “수줍다고 하면 수줍은 건데 말도 많고 재밌고 정말 귀여운 분이었어요.” 회의가 끝나고 모두에게 맛있는 밥을 사기도 했다. 전역당하고 받은 퇴직금이었다.

변희수 하사의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괴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2020년 그해에 저는 대학에 입학했거든요. 변희수 하사님이 강제 전역을 당하고, 숙명여대 법대에 합격했던 분은 결국 입학을 포기했는데, 나만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으로 힘들었어요.” 물론 그도 순탄한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온갖 ‘험난한’ 과정 끝에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고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었다.

3월3일 변희수 하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씨는 엄청나게 큰 벽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변희수 하사님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건 그분이 피해자라거나 너무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분이었기 때문이에요. 함께 근무했던 상사와 동료들도 변 하사를 지지해주었잖아요. 그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을 드러냈고요.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도, 용기 있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드물어요. 변 하사님 이후로 용기 내는 트랜스젠더들이 줄어들까 봐 걱정돼요.” 혐오와 차별을 ‘기갑의 돌파력으로’ 물리치겠다며 밝게 웃던 변희수 하사마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안겼다.

단 하루 차려졌던 변희수 하사의 빈소에 가면서 김씨는 학교 수업에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비대면 화상수업이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음을 쏟아낸 그는 강의를 들었다. 언젠가 변희수 하사가 대학에 간 사람을 부러워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변희수 하사님을 위해서라도요. 트랜스젠더들은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요. 사람들이 일상으로 생각하는 일, 대학에 가거나 출근하는 일조차도요.”

김정현씨는 트랜스젠더를 향한 직접적인 욕설이나 폭력뿐 아니라, 일상 공간에서 배제되는 경험이 무척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혐오’라는 감정이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어떻게 황폐하게 만드는지 설명했다. “청소년들이 많이 호소하는 게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자기가 왜 겉모습 때문에 화장실도 못 가고 학교 같은 평범한 공간도 마음 놓고 다니지 못하는지 답답한 거죠. 공부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해야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 텐데, 그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니까요. 결국 혼자 말라가는 거예요. 인간성을 말살당하는 거죠.”

지난 2월9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기관에서 실시한 최초의 트랜스젠더 관련 실태조사로, 당사자 5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바탕이 되었다.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이 생애 전반에 걸쳐 차별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상담사들’ 온라인 연대 메시지 갈무리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심리상담사들이 온라인 공간에 남긴 연대 메시지.

화장실 이용을 포기하는 사람들

우선 태어난 뒤 지정 성별(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에 따라 주민등록번호가 정해지면, 신분을 확인해야 하는 모든 절차에 제동이 걸린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가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21.5%), 담배를 사거나 술집에 갈 때(16.4%), 보험 상담을 받거나 가입할 때(15%), 은행을 이용할 때(14.3%), 투표소에 갈 때(10.5%), 전화·인터넷을 가입하거나 변경할 때(9.2%), 관공서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을 때(8.5%), 주택 계약을 맺을 때(8.1%), 여권을 발급받을 때(6.9%)마다 “본인이 맞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설명해야 해서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 아예 공공장소를 가지 않기도 한다. 전체 응답자의 36%는 남녀 성별이 분리된 공중화장실밖에 없을 때 아예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애초에 화장실에 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음료를 마시지 않거나 음식을 먹지 않은 경우도 39.2%였다.

‘정치하는 트랜스젠더’ 임푸른씨(정의당 전국위원)는 혐오를 ‘작은 돌멩이’에 비유했다. “아침에 눈떠서 학교에 가고, 은행에 가고,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고 느껴져요. ‘진짜 본인이 맞느냐’고, 혹은 ‘여자/남자인 줄 알았다’고. 상대방은 무심코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진 것이지만, 하루에 작은 돌멩이 수십 개를 맞으면 어떻게 될까요. 모두 이 이야기를 알잖아요, 작은 돌멩이가 결국 개구리를 죽인다는 걸.”

심지어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마저 트랜스젠더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6.6%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지만 모르는 체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44%는 자신이 원하는 성별 표현을 가족들이 못하게 막는다고 말했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가족으로부터 언어폭력을 경험하거나(39.4%)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9.9%). 경제적 지원이 끊기거나(9.9%), 집에서 내쫓기기도 했다(9.4%). 현재 대학원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사회복지 관련 연구를 준비 중인 임푸른씨는 집에서 쫓겨난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갈 수 있는 쉼터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쉼터 역시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집을 벗어난 트랜스젠더는 안정적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 구직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정치에 뛰어들기 전,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로 일한 적 있는 임푸른씨는 한 직장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트랜스젠더라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동료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일을 못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항상 남자 정장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잘랐지만 괴롭힘은 멈추지 않더라고요.”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곳에 들어가자는 생각에, 이후에는 마음에 드는 증명사진을 이력서에 붙여서 냈다. 번번이 면접에서 탈락했다. 오랫동안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그는 한때 생활비 대출까지 받았다.

임푸른씨는 또 다른 ‘퀴어 정치인’ 김기홍씨와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난해 총선 이후에 기홍씨가 생계 때문에 보험회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좀 힘들다고, 직장에서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 그래도 자기는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해서 같이 책을 쓰자고 했거든요. 결국 못했네요(〈시사IN〉 제704호 “‘왜 떠났는지’보다 ‘무엇을 원했는지’를’’ 기사 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5년간 구직활동을 한 트랜스젠더 469명 중 57.1%가 성정체성 때문에 입사 지원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별 고정관념과 다른 외양(48.2%), 주민등록번호와 외모의 불일치(37.0%), 출신 학교를 써야 하는 지원 서류(27.0%) 때문이었다. 성전환수술을 받고 법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는 성별 정정 절차까지 마쳐도, 지원서에 ‘여고’ 혹은 ‘여대’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과거 자신의 지정 성별이 드러난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여대’라는 단어를 쓸 수 없어 최종 학력을 ‘고졸’로 기재한 트랜스젠더도 있다.

현재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남녀 구분된 회사 내 공간이나 남녀 구분된 복장 요구, 출장이나 워크숍 때 남녀 분리된 숙소 등이 주된 이유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직장을 다니는 트랜스젠더 정수현씨(가명)는 면접 때도, 회사에 근무할 때도, 끊임없이 외모로 평가당하는 일에 지친다고 호소했다. “혐오라는 건 별다른 게 아니에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나?’라며 상대방의 외모나 목소리를 약점 삼아 깔아뭉개는 거예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거죠.” 대학에서 서비스직을 공부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던 정씨는 결국 사람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직종으로 진로를 바꿔 취직했다.

“어깨에 많은 분들이 앉아 있는 느낌”

박도담 한국트라우마 연구교육원 선임상담원은 ‘혐오가 꼭 증오하는 감정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부정하는 것도 혐오다.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주장뿐만 아니라 ‘너무 여자 같아서 트랜스젠더인 줄 몰랐다’는 식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체성을 침해할 수 있는 은근한 혐오도 문제다. 피해자는 ‘이게 혐오냐 아니냐’를 고민하고 용기 내서 말하기까지, 혹은 말하지 못하고 담아두기까지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다.”

2월8일 이은용 작가, 2월24일 김기홍 활동가, 3월3일 변희수 하사의 죽음이 이어졌다.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는 박도담 선임상담원의 뜻에 공감한 심리상담사 600여 명도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3월10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는 성명을 냈다. 심리상담사들이 집단 성명을 발표한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이다. 해당 성명에서 상담사들은 “자기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상담의 중요한 목표다. 인간은 자연스러운 자기로 살아갈 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활기와 어려움을 극복하는 회복력을 가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이은 트랜스젠더의 죽음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별 반응이 없다. 실태조사를 이끌었던 홍성수 연구책임자(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사람이 연달아 죽는 사건이 터지면 정치권에서나 정부 차원에서 반응이 나와야 한다. 만약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계속 죽음으로 내몰렸다면 이렇게까지 잠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주류 정치가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문제를 정책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실태조사를 통해 트랜스젠더들이 생애 전반에 걸쳐 심각한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해결 방안 역시 특정 부분만이 아니라 포괄적인 대전환의 방향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함에 쓰인 대로 ‘정치하는 트랜스젠더’라는 문구로 자신을 소개하는 임푸른씨는 게이나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등 다양한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들이 먼저 선거에 나선 이유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만큼 절박하다. “지금에야 이들의 죽음이 겨우 언급되고 있지만 이미 제가 아는 사람의 죽음만 해도 여럿이거든요. 제 어깨에 많은 분들이 앉아 있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나섰어요. 성소수자 운동도 이제 2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한 번도 관련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면, 이제는 실제로 현실을 바꿔봐야죠.”

생활고에 시달릴 때 양계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임푸른씨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이더라도 열심히 치다 보면 바위가 쪼개질 수도 있다’며 웃었다. “트랜스젠더도 당신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사람, 화장실을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있는 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특이한 사건이나 문제가 아니에요.”

※우울감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성소수자는 아래 기관에 상담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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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자살예방프로젝트 '마음연결'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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