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월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18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헌법은 대한민국 법체계 서열 1위, 최상위 법이다. 국가라는 공동체의 형태와 기본적인 가치 질서를 규정한다. 그래서 친절하지 않다. 정확히 국가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고, 자유와 인권, 기본권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대신 헌법 조항 곳곳에 ‘법률에 의하여’ ‘법률에 따라’라는 문구들이 들어가 있다. 법으로 정해서 구체화하라는 뜻이다.

법은 입법부인 국회가 만든다. 역시 친절하지 않다. 예를 들어 새롭게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하면, 국회는 법률안에 정확히 누가·언제·어디에 얼마를 내야 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적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두 담아 법으로 세부 내용을 정해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다. 자칫 국회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새 법률안에도 헌법과 비슷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대통령령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명령이다. 헌법은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 집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제75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법을 만들면서 모든 것을 정할 수 없으니 법을 실제로 집행하고 시행하는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이 필요한 사항을 대신 정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통령령을 시행령, 행정입법 등으로 부른다.

법률안의 세부 내용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국회가 만든 법이 법체계 서열 1위인 헌법을 넘어설 수 없고 위반하면 무효가 되듯, 대통령령도 법률이 ‘맡긴다’고 정해둔 범위 안에서만 새로 만들거나 바꿀 수 있다.

다만, 대통령에게 재량이 상당 부분 있고 같은 법을 놓고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각종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역대 정부에서는 법체계 서열상 상위법인 법률을 하위법인 대통령령이 흔들거나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일이 반복됐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 협조를 받기 어려운 경우, 또는 사회적 논란을 쉽고 빠르게 피하기 위해 대통령령 제‧개정에 과도하게 기대면서다. 이른바 ‘시행령 정치’다.

직제 개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어김없이 시행령 정치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법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는 비판과 여소야대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이 부딪친다. 〈시사IN〉은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가 추진‧공포한 대통령령을 전수조사했다.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이번 정부의 대통령령에는 국회를 우회하고 국정과제를 추진하려 한 흔적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대통령령은 네 가지 절차에 따라 추진‧공포된다. 입법예고→법제처 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 순이다. 국무회의까지 통과하면 공포된다. 〈시사IN〉이 법제처 정부입법지원센터를 통해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사이 추진(입법예고~차관회의)‧공포된 대통령령을 집계한 결과(2023년 5월10일 오후 7시 기준), 윤석열 정부는 총 1042건(2022년 5월10일~2023년 5월10일)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는 837건(2017년 5월10일~2018년 5월10일), 박근혜 정부는 851건(2012년 2월25일~2013년 2월25일), 이명박 정부는 660건(2008년 2월25일~2009년 2월25일)이었다.

다만 정부입법지원센터를 통하면 전임 정부 임기 말 추진돼 새 정부 들어 공포된 대통령령도 함께 집계된다. 오롯이 해당 정부가 추진한 대통령령만을 분류하기 위해 대통령 취임일 이후 입법예고된 대통령령을 기준으로 별도 집계한 결과, 윤석열 정부 809건, 문재인 정부 660건, 박근혜 정부 653건, 이명박 정부 609건으로 나타났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출범 1년 추진‧공포된 대통령령은 모두 600건대에 머물렀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150여 건 늘어났다(〈그림 1〉 〈그림 2〉 참조).

대통령령 추진‧공포 건수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과 사회 변화로 법률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개정되면, 이를 집행하는 대통령령도 당연히 바뀌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국가적 재난이나 불가피한 경제문제 등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길고 엄격한 국회 입법 절차를 건너뛰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1년간 추진‧공포한 대통령령에서 유독 튀는 지점이 있다. 직제 개편이다. 각 정부 부처와 기관에 속한 조직과 인력 등을 조정하는 직제 개편은, 통상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통령령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정권이 교체되면 행정 환경이 달라지고, 여기에 맞춰 조직 진단도 새롭게 이뤄진다. 새 정부 초기 큰 폭의 행정부 변화가 이 과정에서 생긴다. 정부 부처의 실·국 등 조직 개편과 인력 배치 및 조정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행안부)가 관계 기관들과 협의해 입법예고한다.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직제 개편안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는 직제 개편을 크게 세 차례 추진했다. 2022년 6월과 11~12월, 2023년 3월이다. 윤 정부 출범 한 달 뒤인 2022년 6월 단행된 첫 번째 직제 개편은 범정부 차원의 조직 개편보다는 전 정부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가까웠다. 일부 정부 부처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을 담당하던 부서들의 간판을 바꾸고 인력 구성을 재조정했다. 법무부(검찰 조직 개편), 국방부‧통일부(대북정책 담당 부서), 산업통상자원부(에너지 관련 부서)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조직 개편은 2022년 11월 이뤄졌다. 51개 정부 부처 직제가 일괄 개편됐다. 정부는 개편을 추진하면서 행정 효율화를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시행된 ‘통합활용정원’ 제도가 적용됐다. 전체 공무원 수 동결을 전제로 부처별 정원 1%를 추려낸 뒤, 그 인력(1%)을 행안부가 부처별 업무 등을 고려해 재배치하는 시스템이다. 세 번째 직제 개편은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2023년 3월 단행됐다. 정부는 ‘3+1(노동·교육·연금·정부) 개혁 과제와 민생경제 활성화 달성’을 위해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인력을 보강했다.

시행령 개정 통한 ‘검찰 복원’

역대 정부와 윤석열 정부 직제 개편 시기 및 내용을 비교하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 2년 차에 접어들 때까지 사실상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부조직개편안 확정과 정부의 핵심 정책 선정(3+1 개혁)이 늦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들은 출범과 더불어 핵심 정책을 내걸고 취임 전후로 대통령령을 통한 직제 개편을 마무리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명박 정부(녹색성장)는 취임 전 노무현 정부 협조를 받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한 뒤 직제를 개편했다. 박근혜 정부(창조경제, 정부3.0)는 출범과 동시에 추진해 한 달 사이 마무리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인수위 없이 출발한 문재인 정부(소득주도성장)는 대통령 취임 2개월 뒤에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하고 직제 개편까지 마쳤다.

윤석열 정부의 직제 개편과 역대 정부의 직제 개편의 차이점은 법무부와 검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정부가 ‘시행령 정치’ ‘법 위의 시행령’ 지적을 받게 된 계기도 법무부와 검찰의 직제 개편이었다. 2022년 6월 대통령령으로 신설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신호탄을 쏘았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면서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1차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맡겼다. 문제는 정부조직법상 법무부 사무에는 공직자의 인사 관련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국회를 통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했으나, 대통령령으로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를 추진하면서 첫 ‘시행령 정치’ 논란이 촉발됐다.

법무부 인사검증관리단 출범 두 달 뒤인 2022년 8월2일에는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이 신설됐다. 역시 직제 개편(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안)을 통해서였다. 경찰국은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지는 조직이지만, 검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찰국 신설 배경 최상단에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어서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 법안에 따라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축소되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되면서, 경찰 권한이 강력해지니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2022년 7월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 있다.ⓒ시사IN 조남진
2022년 7월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 있다.ⓒ시사IN 조남진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검찰 권한을 다시 키우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경찰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두고, 경찰을 검찰의 하부 기관으로 보는 편향된 인식으로 경찰국 신설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법 위의 시행령’ 논란이 불을 키웠다. 정부조직법이 규정하는 행정안전부의 사무에 ‘치안’이 빠져 있다. 법률에 ‘치안’ 관련 규정이 없는 행안부가 대통령령으로 경찰국을 만들어, 치안의 핵심인 경찰 사무를 관할하는 것은 위헌·위법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세 차례 직제 개편 과정에서 법무부와 검찰의 내부 변화는 다른 부처들과 비교해 가장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법 분야 공약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검찰 개악’이라고 강조하며 “파괴된 법치주의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대통령령 개정을 통한 검찰권 복원으로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법무부는 ‘검수완박’ 법률을 대통령령(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상당 부분 무력화했다. 검수완박 법안은 검찰 직접 수사 개시 범위를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안에는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범죄에 대해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 적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령은 이 문구 속 ‘중요 범죄’에 ‘사법질서 저해 범죄’를 넣었다. 직접 수사가 막힌 상당수 범죄를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 안에 포함하는 방식이었다. 검찰 수사 범위가 다시 넓어졌다.

검찰 직제 개편은 대통령령으로 넓힌 검찰 수사 범위에 맞춰 조직 권한과 규모를 키우는 작업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축소·폐지했던 검찰의 직접 수사 부서가 순차적으로 부활했다. 가장 최근인 5월4일에는 새로운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대통령령)이 입법예고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 축소 기조 속에 폐지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범정)이 되살아나고, 대검에 마약·조직범죄부가 신설되며 반부패부가 대폭 보강되는 내용이 담겼다.

대검 범정은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던 조직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검의 사찰 우려 등을 이유로 범정을 꾸준히 축소·격하시켰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손준성 서울고등검찰청 송무부장이 2020년 총선 당시 옛 범정의 축소된 조직인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이었다. 현재 대검에는 범죄정보담당관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령 개정안에 따른 새 범정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현재 범죄정보관리담당관은 범죄에 관한 수사 정보만 다룰 수 있지만 새 범정은 ‘범죄 정보’ 전반을 분석·관리할 수 있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는 반부패부와 마약·조직범죄부로 분리됐다. 하부조직도 신설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개혁’ 일환으로 축소·통합됐던 부서들을 이번에 다시 쪼개는 동시에 확대한 것이다. 반부패부 아래에는 반부패 1·2·3과를 두고 별도로 반부패기획관이 반부패부장(검사장)을 보좌하도록 했다. 과거 중앙수사부(중수부) 수준의 규모로 커진다. 대검 마약·조직범죄부 아래에는 마약과, 조직범죄과, 범죄수익환수과 등 3개 과와 마약·조직범죄기획관을 두도록 했다. 5월4일 입법예고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은 5월16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추진해온 대통령령을 통한 ‘검찰 복원’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대통령령을 통한 법무부와 검찰의 변화에는 다른 기관의 적극적 협조와 지원도 이뤄졌다. 2022년 11~12월 단행된 2차 직제 개편(51개 정부 부처와 기관 일괄 개편) 과정에서 배치된 정부 부처 신규 인력은 총 458명이다. 뜯어보면 법무부와 검찰에 각각 101명, 54명이 배정됐다. 전체 정부 부처 가운데 증원된 인력이 가장 많다. 다음으로 많은 곳이 교육부 36명과 보건복지부 23명이었다. 법무부는 전자감독·가석방 전담, 교도소 과밀 해소·의료, 여성·아동범죄 대응, 다크웹 전담 수사 등에 신규 인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최측근 장관 배치는 대통령령 때문?

법무부와 검찰 관련한 대통령령이 입법예고부터 국무회의 의결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도 이번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법무부 인사검증관리단은 2022년 5월24~25일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다음 날 법제처 심사, 그다음 날 차관회의 통과까지 하루 단위로 행정절차가 이뤄졌다. 국무회의 의결까지는 총 1주일이 걸렸다.

검찰 수사 범위를 넓히는 ‘검수원복’ 대통령령 역시 2022년 6월14일 입법예고됐고 6월2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특히 6월14일 입법예고를 하면서 함께 첨부한 개정령안에 “입법예고 결과, 특기할 사항 없음”이라고 적기도 했다. 입법예고를 한 당일에 ‘결과’까지 적어서 낸 것이다. 앞서의 5월4일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도 국무회의 통과까지 12일 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법제처는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넓히는 내용의 ‘검수원복’ 대통령령에 대해 “제때 정비해 사법체계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내고 입법예고 기간 단축 확인서를 법무부에 전달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와 함께 ‘긴급을 요하는 경우’라는 이유를 들어 기간 단축을 요청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행안부도 경찰국을 설치하는 대통령령에 대해 입법예고 기간을 40일에서 4일로 단축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 권리 또는 의무와 직접 관련 없는 행정 내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사항이며, 언론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공개된 사항’이라는 게 행안부의 단축 요청 사유였다. 법제처는 이를 받아들였다.

입법예고는 법령안의 내용을 사전에 국민에게 알려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행정절차법을 보면 입법예고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 이상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예외는 있다(행정절차법 제41조 3호). △입법 내용이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 또는 예측 곤란한 특별한 사정의 발생 등으로 입법이 긴급을 요하는 경우 △상위 법령 등의 단순한 집행을 위한 경우 △단순한 표현·자구를 변경하는 경우 등 입법 내용의 성질상 예고의 필요가 없거나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입법예고함이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다.

검수원복, 인사검증관리단, 경찰국 등 검찰과 관련한 대통령령은 예외 조항에 모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행안부는 직제 개편과 관련한 대통령령 개정안은 그동안 어느 정부든 입법예고 기간이 5일가량이었다는 입장이다. 실제 역대 정부 출범 1년간 직제 개편 절차를 확인한 결과, 입법예고 기간은 3~5일 사이였다. 그러나 지난 정부들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 정부는 대체로 출범 전후로 정부 조직 개편을 마쳤다. 윤석열 정부처럼 인사검증관리단, 경찰국 등과 같이 법률안과 충돌하는 조직 신설을 ‘대통령령’으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왼쪽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연합뉴스
왼쪽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검찰과 관련한 대통령령을 추진‧공포하는 데 핵심 기관은 행안부와 법무부, 법제처였다. 공교롭게도 이 기관 수장들은 모두 이번 정부 장관·처장 가운데 유일하게 윤석열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최측근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등학교(충암고), 대학교(서울대 법대) 후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 내 대표적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됐던 인사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최연소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사법연수원 23기 동기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그의 징계 관련 사건 변호를 맡았다. 윤 대통령 장모 등 가족 사건을 변호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공포된 대통령령의 또 다른 키워드는 규제완화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완화를 주요 국정과제이자 지난 1년 성과로 강조했다. 1호 대통령령이 부동산 규제완화였다. 2022년 5월10일 정부 출범 직후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1년간 배제했다.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도 고쳐 주택분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낮췄다. 일시적 2주택 등 주택 수 제외 특례도 신설했다. 부동산과 관련한 규제는 대부분 문재인 정부 시절 강화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통령령을 통해 다시 완화한 것이다. 일종의 ‘전 정부 지우기’이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5월10일 ‘규제혁신 1년, 현장의 변화’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5월10일 ‘규제혁신 1년, 현장의 변화’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업 지배구조 규제완화도 폭넓게 이뤄졌다. 대기업의 정경유착, 경영권 세습 등을 제한하겠다는 목적으로 국회가 법률로 강화한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대통령령 개정으로 완화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법상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의 금융 및 비금융사 동시 소유 금지 등 금산분리 규제완화도 검토 중이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5월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간 규제혁신을 위한 법령개정 등 조치를 1027건 완료했고 이 가운데 시행령 개정은 176건”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 지난해 대통령경호처(경호처)가 경호구역에서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군·경찰 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논란이 불거져 절차가 중단됐던 대통령령 개정안이 올해 들어 다시 추진된 것으로 확인됐다. 5월1일 법제처 심사가 완료됐고 5월4일 차관회의를 거쳐 5월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경호처는 2022년 11월9일 입법예고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라고 적었다. 대통령 경호업무에 투입된 군경을 대통령경호처가 직접 지휘 감독한다는 뜻이었다.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이라는 제한을 뒀으나, 경호처가 다른 기관을 지휘 감독할 수 있는 대통령령은 유신 시절인 1976년부터 4년간만 한시적으로 존재했다.

대통령경호법은 경호처장의 지휘·감독권의 대상을 ‘경호처 소속 공무원’으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상위법을 그대로 두고 대통령령만 고쳐서 경호처 권한을 강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방부와 경찰청도 대통령령 개정 입법예고에 따른 검토 의견에서 “경호처장은 국군조직법상 국군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 “헌법·정부조직법과 배치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실 제공

논란이 거세지자 경호처는 국회에 ‘경호처장의 군·경찰 지휘감독권 명시’는 “법제처가 만들어준 문구”라고 밝혔다. 지난해 입법예고 전 개정안 초안에선 “(경호)처장은 경호구역에서 (대통령경호)법 제15조에 따라 배치된 인력·장비 등에 대한 운용을 총괄한다. 단, 그 구체적인 사항은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법제처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총괄’과 ‘협의’가 ‘지휘·감독’으로 변경됐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문제가 된 개정안은 올해 다시 추진되면서 ‘지휘‧감독’ 문구가 삭제되고 '관계기관 장의 협의'가 들어갔다. 개정안에서 수정된 전체 문구는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법 제15조에 따라 경호구역에서의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인력·시설·장비 등에 관한 사항을 조정할 수 있다”이다.

닮은 듯 다른 윤석열·문재인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각 정부 부처에 공약 이행을 위한 입법 계획을 반드시 제출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률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제·개정 필요 여부를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특히 보고에는 ‘입법 없이 대통령 지시로 추진 가능한 사항은 명기’하도록 했다. 국정 운영 과정에서 대통령령을 적극 활용할 계획을 일찌감치 시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국무회의 등을 통해 “시행령을 활용할 방안을 강구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정운영을 하는 데 여소야대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동의 없이 법률 제·개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서다.

문재인 정부도 여소야대로 출발했다. 그리고 취임 초기 ‘업무지시’ 형태로 각 부처에 시행령 활용을 주문했다. 2017년 7월 국정기획자문회의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 등) 개정만으로 이행 가능한 국정과제를 적극 발굴해 연내 개정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 취임 당시 20대 국회에서 민주당(123석)은 다수당이긴 했으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112석)과 민생당(20석) 등을 합치면 야당 의석이 더 많았다.

다만 국회에 협조를 구하고 협의하는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시사IN〉이 법제처 정부입법지원센터를 통해 윤석열‧문재인 정부가 출범 1년 동안 국회에 법을 만들거나 고쳐달라며 제출한 법률안을 조사한 결과, 윤석열 정부는 144건, 문재인 정부는 301건으로 집계됐다. 공교롭게도 두 정부가 각각 국회에 낸 법률안의 건수 차이가 대통령령을 추진‧공포한 건수 차이와 비슷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은 협의를 위한 파트너로 보지 않고, 여당은 불신한다’는 정치권의 해석과도 맥이 닿는다.

‘시행령 정치’ 논란이 역대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도 불거지고 있지만 통제장치는 부족하다.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 차관·국무회의는 일종의 행정부 내부 통제장치이지만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 사법부를 통해 대통령령의 위법성을 따지는 방법은 까다롭다. ①대통령령 때문에 헌법이 정한 권리를 침해받은 피해자가 ②직접 국가기관을 상대로 권리구제에 나서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법이 확인되더라도 구제 대상은 피해 당사자에게만 한정된다.

2017년 7월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017년 7월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회 통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행 국회법은 대통령령 등이 법률 취지와 맞지 않으면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에 ‘개정의견’을 송부하도록 하고 있다. 강제력이 없어서 정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국회가 통제를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실제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대통령령에 대해 국회 상임위가 수정·변경을 요청할 경우 정부가 이를 처리해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비슷한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그 전 정부에서도 발의되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 박근혜 정부 때는 민주당에서 법률안을 마련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당시 야당과 합의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당일 때는 대통령령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여당이 되면 침묵하면서, 정부의 ‘시행령 정치’는 계속해서 강화되며 갈등이 빚어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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