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사퇴한 ‘정순신 사태’에 대한 비판 대자보가 서울대에 붙었다. ⓒ김흥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사퇴한 ‘정순신 사태’에 대한 비판 대자보가 서울대에 붙었다. ⓒ김흥구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을 ‘돼지’ ‘빨갱이’ 등으로 불렀다. 괴롭힘은 1년 가까이 지속됐다. 피해 학생은 정신과에 입원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또 다른 피해 학생도 있었다. 가해 학생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에서 퇴학 다음으로 높은 ‘전학’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검사로 재직하는 아버지가 법정대리인이 되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이어갔다. 대법원까지 끌고 간 소송에서 가해 학생은 결국 패소했지만 그사이 계속 전학을 가지 않고 학교에 머물렀다. 뒤늦게 서울 강남의 1순위 지망 학교로 전학을 갔고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힌 학교폭력 사실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었다. 가해 학생은 정시를 통해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동안 피해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아버지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지명되면서 밝혀진, 이른바 ‘정순신 사태’의 전개 과정이다.

정순신 사태 이후 학교폭력 대응에 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2월27일 이렇게 말했다. “산업 현장의 법치를 세우는 것처럼 교육 현장에도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 간의 질서와 준법정신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3월6일에는 “한번 잘못하면 인생이 끝난다는 취지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언급했다. 학교폭력 대응에 ‘법치’가 부족해서 정순신 사태가 벌어졌을까? ‘한번 잘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학폭 규정이 신설되면, 정말 학폭 가해자가 사라지고 교육 현장에 정의가 바로 설까? 지난 20년간 학교폭력을 둘러싸고 제·개정된 법의 역사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았다.

한국 사회가 학교폭력을 본격적으로 법률에 근거해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전까지 학교폭력은 경찰이나 검찰이 검거하고 처벌하는 소년범죄 혹은 개별 학교가 알아서 징계하는 일탈행위 정도로 다뤄져왔다. 일진회 등에 의한 학생 사망·자살 등 대형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학교폭력 범부처 종합대책’ 같은 걸 발표했지만 그 내용은 대개 학교 내 폭력추방위원회 설치, 불량서클 집중단속, 폭력피해신고센터 설립 같은 ‘변죽 울리기’에 머물렀다. 해마다 수십 명씩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자 학교폭력 피해자 유가족 등이 나서서 학교폭력예방재단을 만들고 10여 년간 특별법 제정 촉구 운동을 벌였다. 시민사회의 노력에 힘입어 탄생한,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 분쟁조정을 통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폭법이 올해로 20년째를 맞았다.

‘생기부 관리’ 위해 학폭 처분에 끝장소송

학폭법 시행 초기 학교폭력의 정의는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학교 내외에서 학생 간에 발생한 폭행·협박·따돌림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가 전부였다. 현행 학폭법상 학교폭력의 정의는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넓어졌다.

초기 학폭법에는 전담기구의 구성 요건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피해 학생의 치료비를 가해 학생 보호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2008년), 가해 학생 보호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2008년), 피해 학생 측이 학폭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2009년), 학폭 신고를 받은 학교장은 지체 없이 자치위원회(학폭위)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2009년), 일정 요건을 갖출 시 의무적으로 학폭위를 소집해야 한다는 조항(2011년), 회의록을 작성·보존해야 하고 피해 학생·가해 학생이 원할 시 열람할 수 있다는 조항(2011년) 등이 뒤늦게 차례차례 생겼다.

학폭법이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때는 2012년이었다. 전해인 2011년부터 대구·대전·광주 등에서 학폭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잇따랐다. 2011년 7월(A양)과 2011년 12월(B군) 사건은 모두 대구 수성구의 한 중학교였다. A양은 친구가 집단따돌림 당하는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알리고 바로잡아 달라 요청했으나, 교사가 되레 신고자를 혼내며 반 학생 전체 기합을 주자 하굣길 13층 아파트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군은 같은 반 학생 다수에게 지속적으로 심부름, 게임·숙제, 폭행, 협박, 갈취 등을 당하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2011년 12월(C양)과 2012년 1월(D양)에는 대전 서구 한 여고에서 학생 둘이 각각 연달아 세상을 등졌다. C양은 집단따돌림을 당해 학교 측에 피해를 호소했으나 오히려 가해 학생들의 보복 따돌림을 받아왔다. D양은 그런 C양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괴로워하던 같은 반 친구였다. 2011년 12월에는 광주 북구 한 중학교에서 또래 학생들에게 상습적 폭행과 협박·갈취를 당하던 E군이 생을 마감했다.

잇따르는 학폭 피해 학생의 사망사건에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고 대책들 가운데 상당수가 학폭법에 반영되었다. 따돌림의 심각성을 인식하도록 따돌림의 정의를 별도 조항으로 명시하고, ‘강제적인 심부름’과 ‘사이버 따돌림’도 학폭의 범위 안에 추가했다. 관련 위원회에 심리학자를 포함하고 가해 학생 보호자가 부담해야 할 피해 학생의 치료비에 심리상담비도 추가하는 등 학폭 대응과 치료에 ‘심리’ 부분을 강화했다. 피해 학생이 오히려 억울하게 전학을 가게끔 만드는 ‘피해자 조치 유형 중 전학 권고’ 규정을 없애고, 학폭을 축소·은폐하는 학교장 및 교원을 징계하고 적극 대응한 교원에게는 포상이나 가산점을 주는 제도도 이때부터 시작했다.

2001년에 열린 ‘청소년 폭력 예방을 위한 특별법 제정 캠페인’ 모습.ⓒ연합뉴스
2001년에 열린 ‘청소년 폭력 예방을 위한 특별법 제정 캠페인’ 모습.ⓒ연합뉴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가해자의 학교폭력 관련 사항이 기재되기 시작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교육부 훈령) 등의 개정을 통해 생기부(Ⅱ)의 ‘특기사항’과 ‘출결상황(현재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도 추가)’에 학폭위에서 받은 조치사항을 입력하도록 만든 것이다. 2012년 당시에는 1호(서면 사과)에서부터 8호(전학)까지 모두 생기부 기재 대상이었다. 생기부(Ⅱ)의 법정 보존기간은 당시 초·중학교 5년, 고등학교 10년(2012년 6월 생기부 작성관리지침 개정을 통해 5년으로 단축)이었다. 생기부는 상급학교 입시 과정에서 활용되는 중요한 심사 자료다. ‘학폭 저지르면 입시 악영향’이라는 규칙이 이때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학폭 저지르면 입시 악영향’을 정확히 말하면 ‘학폭이 생기부에 기재되면 입시 악영향’이다. 이건 ‘관리’의 영역이다. 자녀가 학폭을 저지르는 걸 막지 못한 보호자도 그 사실이 생기부에 기재되는 일은 돈과 지식과 정보력을 통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법률시장이 바빠진 이유다. 학폭 가해자가 로펌의 주요 클라이언트(고객)로 부상했다. 이전에는 학폭이 법원으로 가더라도 피해·가해 학생(보호자) 간 민형사상 다툼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때부터는 소송 청구 대상이 학교나 교육청 즉 ‘생기부 기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쪽이 되었다. 다수 가해 학생 보호자들이 자녀의 생기부에 학폭 내용을 지우거나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처분으로 바꾸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끝장소송’을 이어나갔다.

145쪽에 달하는 ‘학교폭력 가이드북’

2014년 국민권익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학교폭력대책 지역위원회의 재심 결정에 불복해 권익위(당시 권익위가 학폭위 재재심 기능을 맡고 있었다)에 재재심을 제기한 행정심판 청구 건수가 2011년 단 한 건에서 생기부 기재가 시작된 2012년에는 21건, 그 이듬해에는 89건으로 증가했다. 가해 학생의 학폭 생기부 기재 규정은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2016년 4월 합헌 결정을 받기도 했다. 헌재는 가해 학생의 개인정보결정권 등의 일부 침해에도 불구하고 생기부 기재 규정이 “가해 학생을 선도하고 교육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되고 학생들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라고 판단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학폭 대책의 대부분은 생기부 기재를 둘러싼 내용의 개정으로 이루어졌다. 학폭 가해 학생의 조치 사항을 생기부에 어떻게 어디까지 기재하고 언제까지 보존할지 등을 두고 여러 차례 사회적 논의가 있었고 관계 법령이 바뀌었다. 2014년에는 1호(서면 사과)·2호(접촉, 협박, 보복행위 금지)·3호(봉사)·7호(학급 교체) 처분은 졸업 시 생기부에서 삭제되고 나머지 처분도 졸업 후 2년 후 삭제되거나 심의를 통해 졸업 시 삭제될 수 있도록 규정이 크게 완화되었다. 2020년에는 1~3호 처분에 대해 1회에 한해 생기부 기재 유예가 가능해진 완화책과 동시에 4·5·6·8호 조기 삭제의 조건을 제한한 강화책이 동시에 도입되었다. 지난해에는 7호(학급 교체) 처분을 졸업 시 무조건 삭제되던 조치 항목에서 제외하고, 8호(전학) 조치는 무조건 졸업 후 2년까지 생기부에 기재되도록 규정을 다시 조였다.

 
3월9일 국회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순신 사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3월9일 국회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순신 사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생기부 기재 규정이 해마다 갱신되고 나날이 더 복잡해지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교육 현장의 다툼과 소송도 더 잦아졌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학폭위 심의 결과에 제기된 행정심판은 모두 2009건이었다. 집행정지 신청 건수도 1405건에 달했다. 각 학교와 교장, 교원들에게 이런 학폭 소송 대응 업무까지 가중되자 2019년 학폭위가 개별 학교 단위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상향 이관되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동의하는 전제하에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경미한 학폭은 학교장이 자체 해결하고 처리하는 걸로 바뀌기도 했다.

제정 20년째를 맞은 지금까지 학폭법은 27차례 개정되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지침,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 사립학교 교원 징계규칙 등 학폭 처분을 둘러싼 세부 규정도 수십 차례 내용이 바뀌었다. 법령 개정에 따라 매년 갱신되는 교육부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의 전체 분량이 145쪽에 달한다. 이걸 다 검토하고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돈과 여유와 지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학폭 대응 격차’가 생겨났다. ‘법치’와 ‘원스트라이크 아웃’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유리한 쪽 역시 이 격차의 상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정순신 사태, 그리고 그와 비슷한 사례들을 학교폭력 전담 로펌의 홍보자료 속 ‘성공사례’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대치동 뜨거운 물’ 가해자도 전학 처분 ‘집행정지’ 기사 참조 www.sisain.co.kr/49877). 한국의 일그러진 폭력 문화에 입시 경쟁이 겹치고 거기에 사법 만능주의까지 얽혀든, 지독한 ‘학폭의 세계’가 지금 대한민국에 펼쳐져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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