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지난 2월 배구선수 이재영·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가해에 대한 폭로가 시발점이 되었다. 또 다른 유명 인사들의 학교폭력 가해에 대한 고발이 잇따랐다. 학교폭력은 한동안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6월 중순 현재 ‘학교폭력’은 뉴스의 중심에서 비켜 있지만, 여전히 벌어지는 이슈다.

〈시사IN〉이 학교폭력 관련 연속 보도를 기획한 이유다. 이번 호에서는 2020년 2학기(2020년 9월~2021년 2월) 서울시 11개 교육지원청(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강동송파·강서양천·강남서초·동작관악·성동광진·성북강북)에서 심의한 학교폭력 사건을 전수 확보해 분석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얻은 데이터로, 사건의 수는 모두 654건이다.

서울시내에는 현재 초등학교 602곳, 중학교 387곳, 고등학교 326곳이 있다. 초중고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654건의 학교폭력 조치결정통보서(조치결정서·아래 사진 참조)에는 그동안 통계수치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다양한 폭력의 실태가 담겨 있었다. 다음 호에서는 학교폭력 관련 정책 입안자, 학교 현장 교사 등과 ‘학교폭력은 왜 반복되고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2020년 2학기 서울 지역 초중고에서 벌어진 654건의 학교폭력 조치결정통보서. ⓒ시사IN 신선영

지금까지 학교폭력 관련 공식 조사는 매년 교육부가 시행해왔다. 2012년부터 1년에 두 번씩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조사해서 △피해 응답률 △피해 유형 △가해 응답률 △목격 응답률 등을 공개했다.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전체 피해 응답률은 0.9%, 전체 가해 응답률은 0.3%였다. 피해·가해 응답률 모두 2019년 1차 조사에 비해 각각 0.7%포인트, 0.3%포인트씩 줄었다. 다만 사이버폭력, 집단따돌림의 비중이 늘었다. 이처럼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전반적인 학교폭력의 발생 정도와 유형을 파악하는 데는 유용하다. 다만 숫자로 대표되는 학교폭력은 다양한 결로 나타나는 학교폭력을 뭉뚱그려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학교폭력은 개별 사례 속 피해 사실을 마주해야 해결 및 예방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종류의 사건이다. 〈시사IN〉이 조치결정서에 주목한 이유다.

2020년부터 학생들 사이 폭력이 발생하면 경미한 경우(△전치 2주 이상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은 경우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등)를 제외하고는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 회부된다. 그 전까지는 개별 학교 단위에서 학교폭력에 대응했다. 교육지원청에서 열리는 학폭위는 해당 지역 학부모·경찰관·교육관료·법조인 등으로 구성된다.

학폭위는 관련 자료와 피해·가해 쪽의 진술을 토대로 조치결정을 내린다. 가해 학생에 대해서는 피해 학생에 대한 사과부터 학교 사회봉사, 출석정지, 전학, 퇴학까지 가능하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반성·화해 등을 판단해 점수를 매긴다. 피해 학생에 대해서는 전문가 심리상담 및 조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조치 등이 내려진다. 비용은 가해 학생 쪽에서 부담하게 되어 있다. 개정 전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법)에서는 피해 학생에 대한 조처에 ‘전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당 조치가 악용되어 학교폭력 사건 발생 이후 오히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고 가해자는 남는다는 비판이 나오자 법이 바뀌었다. 당사자들이 학폭위 결정에 반발한다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조치결정서에는 ‘조치결정의 이유’와 ‘조치사항’이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치결정의 이유는 주로 육하원칙에 의거한 학교폭력의 실례를 서술한다. 조치사항은 학폭위가 해당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고 조치했는지를 담고 있다. 교육 당국이 개인정보를 가리고 국회에 제출한 이 문건은 654가지 학교폭력의 맨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인 셈이다. 각 사례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학교폭력을 더 이상 청소년기에 한 번쯤 겪고 지나가는 성장통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난 2월, 배구선수 이재영·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가해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각종 고발이 잇따랐다. ⓒ연합뉴스

온·오프라인에서 뒤섞여 발생하는 성폭력

이 사례들을 보면, 학교폭력이 일반적으로 하나의 유형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연속적이고 복합적이다. 조치결정서 중 한 사례를 보자(조치결정서 인용 시 ‘/’ 앞은 조치결정의 이유, 뒷부분은 조치사항임).

“고등학생 A는 식당에서 숟가락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때렸다. 준비운동을 할 때 같은 줄에 안 서면 ‘뒤진다’고 욕을 하고 선생님이 안 보이는 곳에서 때리고 협박했다. 단체 카카오톡 방에 계좌번호를 올리며 생일선물로 돈을 요구했다./ 피해자:전문가 심리상담 및 조언. A:서면 사과,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출석정지 30일, 특별교육 이수 20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5시간.”

지금껏 교육부는 언어폭력, 집단따돌림, 스토킹, 신체폭력, 사이버폭력, 금품 갈취, 성폭력, 강요 등으로 폭력의 유형을 나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A는 신체폭력, 언어폭력, 금품 갈취, 사이버폭력을 저질렀다. 대부분이 A처럼 여러 종류의 학교폭력을 함께 저지른다.

성(性)을 기반으로 하는 폭력도 양상이 복합적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건이 뒤섞여 발생하기도 했다. 또 다른 조치결정서다.

“고등학생 A는 피해자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졌다고 말하고 다녔고, 고등학생 B와 고등학생 C는 동의 없이 피해자의 영상을 촬영해 전파했다./ 피해자:전문가 심리상담 및 조언. A:서면 사과 B:서면 사과, 학교에서 봉사 3시간, 특별교육 이수 2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2시간 C:서면 사과, 학교에서 봉사 3시간, 특별교육 이수 2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2시간.”

사이버상에서 이뤄지는 성희롱과 사진합성 등은 사이버폭력인 동시에 성폭력이다. 다음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조치결정서다.

“중학생 A는 피해자의 SNS 사진을 캡처해서 성적 수치심 등을 유발하는 글과 함께 자기 계정에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올렸다. 피해자의 동영상을 몰래 촬영해 본인 계정에 올렸다./ 피해자:전문가 심리상담 및 조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A:전학, 출석정지 5일,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특별교육 18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5시간.”

학교폭력의 이 같은 복합성을 분석하기 위해 〈시사IN〉은 폭력의 주요 도구(신체·사이버·언어 등)를 기준으로 학교폭력을 유형별로 나눠보았다. 신체에 대한 폭력(폭행·성추행·성폭행 등), 사이버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소셜미디어 단체방 초대 후 폭언, 음란물 합성 및 유포 등), 대면 상태에서 언어로 이뤄지는 폭력(욕설·성희롱·명예훼손 등), 금품 갈취(돈·휴대전화 등) 등이다.

경중을 떠나 신체폭력이 254건으로 가장 많았다(〈그림 1〉 참조). 이 중 성폭행은 18건, 성추행은 16건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학교폭력은 사이버폭력이었다. 10대가 사용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톡, 애스크드(asked), 디스코드(discord)등 다양한 소셜미디어에서 사이버폭력이 벌어졌다. 조치결정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사IN 이정현

“중학생 A는 피해자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로 욕을 했다. 이후 피해자가 SNS에서 프로필 사진을 바꾸자 A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비난하거나 놀리는 댓글 수백 개를 달았다. 피해자가 프로필 사진을 비공개로 바꾸자, 과거 게시물로 가서 태그하며 피해자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피해자가 ‘친구 끊기’를 하자 욕을 했다./ 피해자:전문가 심리상담 및 조언. A 등 가해자 14명:서면 사과, 학교에서 봉사활동 2~6시간, 특별교육 이수 2~3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2~4시간.”

사이버폭력 212건 중 74건(34.9%)이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그림 1-1〉 참조). 디지털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어른들의 세계’가 10대의 세상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시사IN 이정현

“고등학생 A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피해 학생 8명의 SNS 등에서 사진을 캡처한 뒤, 나체사진과 합성한 사진 등을 수십 장 제작해 해외 음란물 사이트에 약 10일간 게시했다./ 피해자 8명:전문가 심리상담 및 조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A:퇴학.”

“고등학생 A가 피해자 사진을 SNS상에 무단으로 도용해, 텔레그램으로 제3자에게 피해자의 이름, 나이, 원하는 합성사진 부위, 성희롱 메시지를 제공해 지인 능욕을 의뢰했다./ 피해자:심리상담 및 조언. A:서면 사과, 피해 학생에 대한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사회봉사 10시간, 특별교육 이수 10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5시간.”

가해 학생들이 자신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는 정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5월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가해 청소년 10명 중 9명은 ‘(그 행위를)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디지털 성범죄로 학폭위에서 징계명령을 받거나 교사·학부모가 의뢰해 상담을 받은 학생 91명의 응답이다.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21%), 재미 혹은 장난(19%), 호기심(19%), 충동적으로(16%)….’

학교폭력은 여느 다른 폭력처럼 주로 약한 쪽을 향했다. 차용복 해맑음센터 부장은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피해자가 되기 쉽다. 가정의 지지가 부족한 아이들이 피해를 당할 확률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해맑음센터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치유를 위해 교육부가 지원하는 위탁 교육기관이다. 이는 조치통보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A는 피해자의 가정환경에 대한 비하와 할머니에 대한 조롱 등으로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피해자:심리상담 및 조언. A:서면 사과,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보복행위 금지, 특별교육 이수 1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1시간.”

부모의 이혼, 특수학교 학생에 대한 놀림 등도 학교폭력 조치결정을 받은 사건에 포함되었다.

이처럼 학교폭력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데 비해 피해자에 대한 치유 수단은 미흡해 보였다. 조치통보서에서 ‘피해자 조치’를 규정하지 않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중학생 A는 피해자에게 네 차례에 걸쳐 8만5000원을 빌리는 명목으로 갈취했고 갚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돈을 보내라고 강요하는 SNS 문자를 보내 피해자에게 심리적 압박과 두려움을 줬다./ 피해자:조치 없음. A:피해 학생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학교에서 봉사 10시간, 학생 특별교육 이수 4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4시간.”

“중학생 A는 피해자에게 수차례 금품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욕설 강요 및 협박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음주 상태에서 피해자의 얼굴을 때렸다./ 피해자:조치 없음. A: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출석정지 10일, 특별교육 이수 10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5시간.”

출석정지는 전학이나 퇴학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학교·사회봉사보다는 높은 가해자 징계다. 그럼에도 이 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조치는 따로 내려지지 않았다.

ⓒ시사IN 이정현

피해자 회복에 힘 쏟아야

관련 행위가 확산되면 바로잡기 힘들고 재발하기 쉬운 디지털 범죄에서조차 피해자 조치는 없는 경우가 있었다.

“중학생 A는 피해자의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400여 장 다운받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사진을 도용해 페이스북, 카카오톡, 배틀그라운드 등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며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 가명을 사용해 나이를 속이고 사진으로 술과 담배를 한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이성교제와 성적 대화를 했다./ 피해자:조치 없음. A:서면 사과, 특별교육 이수 20시간.”

학교폭력을 곁에서 지켜보는 교사와 학부모들은 피해자에 대한 조치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대 청소년 피해자들은 학교폭력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기도 해서다. 서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본부장은 “학교폭력 피해와 관련해서 10대 청소년 인터뷰를 해보면, 학교폭력 피해를 방관하던 주변 학생들이 피해자에게 그냥 ‘밥 먹었냐’ ‘오늘 이거 같이 할래?’라고 말을 걸며 친구가 되어주면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 촉진된다고 한다. 그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피해 학생이 ‘내가 이상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관련 연구 결과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학교폭력을 다루는 사회적 에너지가 가해자에게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선을 피해자 회복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다.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와 그에 대한 대응을 담은 책 〈아빠가 되어줄게〉의 저자 이해준씨는 학교폭력 피해 관계자 상담을 100여 건 진행했다. 그는 “상담을 해보면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건 ‘회복’이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자녀에 대한 상처 치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족이 어떻게 일상을 회복할지 등의 고민이 최우선이다”라고 말했다.

6월 말부터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 발생 시 가해자·피해자 즉각 분리 관련법이 시행된다.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연합뉴스

상담을 담당하는 안정선 경희중 교사도 같은 생각이다. 피해자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처를 제때 치유하지 못한 피해 학생은 나중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몸이 작아서 당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성장한다. 그때 자기 안에 응축됐던 것이 나올 수 있다. 그동안 자기도 억울했으니까, 누군가한테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 가해자에게 보복하면서 가해·피해가 섞이기도 하고, 다른 아이를 가해하기도 하고, 완전히 엉뚱하게 자기를 해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반드시 피해 학생의 상처를 보듬어줘야 한다.”

결국 학교폭력은 ‘아이들의 일’ ‘지나갈 일’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을 바꾸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이해준씨는 “학교폭력 자체를 교사의 관리 부실로 생각한다는 상급 관리자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다 보니 덮으려고 한다. 또한 학교폭력을 단순히 사회화 과정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깜짝 놀란다”라고 말했다. 차용복 해맑음센터 부장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런 (학교폭력) 경험 없는 애들이 누가 있냐’라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학교와 또래가 전부인 시기에, 아이가 접하는 최대이자 최고 사회인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바라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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