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 고 권승민 군의 어머니 임지영씨(왼쪽)가 10년째 그대로인 아들 방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여주고 있다(오른쪽). ⓒ김흥구

대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승민이 엄마’ 임지영씨는 따뜻한 생강차를 시켰다. 10년째 차가운 음료를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아들 승민이 세상을 떠나고부터다. 교사인 임씨는 2011년 12월20일 여느 때처럼 학교로 출근했다. 아들 승민이 등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 앞 화단으로 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숨진 아들을 봤다. 중2였다. 넋이 나간 엄마에게 경찰관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것 같다고 했다. 베란다 문이 열려 있었다. 유서가 발견되었다.

“제가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매일 라면이 없어지고, 먹을 게 없어지고, 갖가지가 없어진 이유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서○○하고 우○○이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중략)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때리고 나중에는 ○○○이라는 애하고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죄송해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저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몇몇 애들이 알고 있어서 제가 없을 때도 문 열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죄송해요, 엄마. 사랑해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말 죄송해요.”

아들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가해자들은 돈과 먹을 것을 빼앗고, 때리고, 숙제를 시키는 등 각종 폭력을 저질렀다. 시신을 장례식장에 안치하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면서 그 볼에 손을 가져다댔다. 냉동고에 있다 나온 몸이라 너무나 차가웠다. 아들의 죽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후 임씨는 차가운 것을 만질 때마다,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아들의 몸을 쓰다듬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차가운 것을 마실 수가 없었다.

2011년 당시 승민 군의 죽음은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 스쿨 폴리스 배치 등이 실시되었다. 가해자 서 군은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6개월, 가해자 우 군은 징역 장기 2년6개월 단기 2년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임씨는 “아직도 가해자와 담임선생님에게 사과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장난이었다는 말에 숨지 말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해주길 바라지만, 오히려 일부는 임씨를 손가락질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으려는 거 아니냐.’ ‘돈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 피해자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지난 2월 배구선수 이재영·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폭로되었다. 다른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가해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대구 중학생 자살’로 명명된 아들 사건도 다시금 조명되었다. 그는 연이은 학교폭력 폭로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폭로자들이 학교에 다닐 당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곪은 상처가 터진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학교폭력은 성폭력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임씨는 말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고, 수치심을 느껴야 하며,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한두 사람이 용기를 내 과거에 당했던 학교폭력을 고백하자, 다른 사람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학교폭력 또한 자신의 언어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믿고 싶다.

성폭력과 비슷한 면이 있는 학교폭력

2018년 학교폭력 피해로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은 중학생 딸의 아버지 김민수씨(가명, 왼쪽)는 딸의 학생증(오른쪽)을 늘 목에 걸고 다닌다.ⓒ시사IN 신선영

2018년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김민수씨(가명)도 지난 3년 동안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시달렸다. 중3이던 딸아이가 집에서 뛰어내렸다. 왼쪽 머리가 다 부서졌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고 장례를 치르던 부모에게 딸의 친구들이 “현정이(가명)가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여러 친구들에게 망신을 당했다”라고 귀띔했다. 충격을 받은 ‘현정이 아빠’ 김씨는 경찰과 학교에 문제를 제기했다.

경찰조사 끝에 가해자 세 명이 재판에 부쳐졌다. 가해자 A는 ‘B에게 성추행당했다’라는 현정 양의 고민을 듣고 이를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성관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가해자 B는 강제추행 혐의, 가해자 C는 현정 양을 비방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린 혐의였다. 이들은 지난 5월20일 항소심에서 A는 징역 장기 5년 단기 3년6개월, B는 징역 3년, C는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도 조사와 심의를 요청했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더 모멸감을 느꼈다. “학교에서 관련 일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 ‘민원인’이라며 하대를 하더라. 심지어 학폭위에서는 우리 부부가 맞벌이로 바빠서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김씨는 가해자에 대한 최종 대법원 선고가 나면, 학교와 교육 당국에 소송을 걸 생각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왜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가슴에는 ‘현정이의 사진’이 흔들거렸다. 딸이 세상을 떠난 뒤, 늘 목에 걸고 다니는 학생증이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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