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좌담회에 참석한 이탄희 의원, 천경호 교사, 김은지 기자(왼쪽부터). 화면은 서미 본부장, 차용복 부장, 이동원 팀장(왼쪽부터). ⓒ시사IN 이명익

학교폭력은 다루기 쉽지 않은 이슈다. 다양한 관계자가 얽혀 있어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면 일차적으로 주변 친구들, 교사와 학부모가 이를 접한다. 그런 다음 학교 당국이 ‘사건’을 접수하고,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 회부된다. 때로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같은 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관계자들에게 생긴 상처는 짙고 깊게 남는다. 모두가 하나의 같은 사건을 겪지만,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학교폭력 연속 기획의 첫 번째 기사로 ‘서울 초중고 학폭 조치결정서 654건’(〈시사IN〉 제719호 커버스토리 참조)을 통해 실태를 짚고, 두 번째 기사로 좌담을 준비한 이유다.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를 비롯해 학교폭력 피해 학생 전담기관 교사, 학교폭력 관련 법률 입안자, 학교폭력 관련 연구자 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온·오프라인 만남을 병행했다. 서울에서 천경호 성남서초등학교 교사(실천교육교사모임 부회장)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사IN〉 취재진이 한자리에 모여 줌으로 대전과 부산에 있는 좌담 참여자와 만났다. 대전에 위치한 학교폭력 피해자 치유 전담기관 해맑음센터의 차용복 부장·이동원 팀장과 부산에 있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서미 본부장이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목표는 하나다. ‘안전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좋은 관계를 맺으며 성장할 수 있게 하기.’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단은 각자 서 있는 자리에 따라 결이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각각 다른 학교폭력의 사례를 입체적으로 인식하되, 가해 학생에게 잘못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피해 학생의 치유에 힘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폭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은 어때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좌담을 한 6월23일은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각 분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법)’의 시행령이 시작된 날이었다.

학교폭력의 종류가 다양하고 범위도 넓다. 각자 생각하는 학교폭력이란 무엇인가?

서미:학교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장난인지 폭력인지 헷갈린다는 말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가해자들이 ‘재미 삼아 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방의 의도가) 장난이라도 피해 학생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학교폭력이다. 원치 않는 행위를 누군가 하고 그것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차용복:성폭력이나 성추행처럼 학교폭력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상대방은 장난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트라우마를 가져올 만한 중대한 일이라면 그건 피해라고 봐야 한다.

천경호:연령대별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학교폭력이 벌어지면 학교폭력법에 따라 일괄처리한다. 학교폭력법은 아이들의 발달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고등학생처럼 학교폭력법을 적용하는 것이 교육적인지는 의문이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말과 행동을 의도하지 않고 하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보다 나은 방식으로 말과 행동을 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현재 학교폭력법으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이탄희:학교폭력은 입체적으로 봐야 하는 사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의 수위와 유형이 초중고 학교급별로 많이 다르다. 화해가 가능한 사안도 있고, ‘지인 능욕’ 등 디지털 성범죄처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폭력도 있다. 실제로 선악 구도가 흐릿하거나, 교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학교 측이) 기계적 중립을 취하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받는 상처를 더 심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선가 끊어야 한다. ‘학교폭력 발생 시, 가해·피해 학생 즉시 분리’ 법안도 그러한 고민에서 발의했다. 핵심은 ‘분리’보다는 ‘즉시’다. 교사의 개입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법 시행 당일인 오늘(6월23일)까지도 시행규칙이나 매뉴얼이 잘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걱정이다.

차용복:부족한 제도나 정책이 있을 수 있다. 더 안타까운 건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여부다. 점검하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다. 학교폭력법에 따라, 한 학기에 한 번씩 학급 단위로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큰 강의실에 한 학년 혹은 전체 학년을 모아놓거나 TV를 통해 각 교실로 전파한다.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학부모들이 생업 때문에 잘 참여하지 못한다. 학부모 대상 1시간짜리 교육을 요청받았는데, 정작 가보니 15분 안에 마쳐달라고 하더라.

2018년 1월1일 전남 완도경찰서에 근무하는 김완도 순경이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쪽은 학교가 방관한다고 지적한다.

이동원:해맑음센터로 오는 학생과 학부모 대부분은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이나 학폭위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벽에 부딪힌 것 같았다’ ‘학교에 도움을 청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경찰에 신고하는 게 더 나을 뻔했다’ ‘학교폭력 이후 누가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전담지원기관에 대한 안내도 없고, 직접 찾아봤다’. 학교의 사안조사 과정에서나 학폭위에서는 처벌이 아닌 교육적 선도가 목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교육적 선도라는 이름으로 가해자 입장을 반영한 조치 결과를 많이 접하게 된다. 또한 학교에서 충분히 중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런데도 실제 학폭위에 올라가는 사안 중에는 피해 학부모조차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피해 학생과 학부모 대부분은 학교나 교사를 신뢰하기 힘들어지는 상황까지 간다.

천경호:‘부정적(negative) 편향’이라는 게 있다. 내 생존과 안전에 위협이 되는, 부정적인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중재하려고 적극 임하다 고소당한 교사 사례가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각각에게 상대방을 편든다고 원성을 듣고 심지어 송사에까지 휘말렸다는 이야기가 교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중재하다 고소당하느니 학폭위로 넘기는 게 교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학교폭력 업무는 가산점이 있다. 실적이 있어야 가산점이 쌓인다. 학교폭력 업무는 현재 교사들 사이에 기피 업무다. 1~2년 정도 되면 담당자가 바뀌고, 그러다 보니 절차상 실수도 생긴다. 교사의 공적 개입을 어렵게 하는 환경이 있다. 학교폭력법 자체가 교사의 중재에 대한 불신을 기조로 만들어진 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학교폭력법의 조치는 교칙과 민법·형법으로 충분히 다룰 수 있다.

이탄희:‘학급당 학생 수 20명’으로 하는 교육기본법을 발의한 동기 중 하나도 학교폭력이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경우의 이점에 대해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4위가 학교폭력 사안이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5위는 학생 개별 생활지도의 내실화였다. 교육공동체가 ‘학교폭력을 최대한 몰아내자’라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동시에 교사들이 그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서미:또래 아이들의 방관도 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최근 ‘학교폭력-지켜보기에서 도움 주기로’라는 연구를 했다. 방관자인 친구들이 방어자만 될 수 있다면 학교 내에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방어자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돕는 이들을 말한다. 아이들은 ‘괜히 나섰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귀찮은 상황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등과 같은 이유로 방관자가 되기 쉽다. 그런데 방어자가 된 아이들도 자세히 알아보면 딱히 별일을 한 게 아니었다. 피해자에게 먼저 말을 걸고, 밥을 먹자고 했다. 그게 피해자 아이에게는 ‘내가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피해자가 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는 제도적·법적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동시에 또래 아이들이 학교폭력을 인지하고 같이 도와주고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방관자를 방어자로 만드는 교육이 중요하다.

교육부가 지정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전담 지원기관인 해맑음센터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해맑음센터 제공

한국 사회가 학교폭력이라는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이탄희:하나만 꼽자면 지금 이 시점에서는 역시나 피해자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가해자에게 사과받으며, 또한 위로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 세 가지를 제대로 경험한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피해 사실을 말 못하는 상황이었다. 얘기를 꺼냈을 때 다시 보복을 당하거나, 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마치 전부 가해자 편을 들어서 나를 ‘왕따’시킬 것 같은 심리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러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이에 격분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 지난 2월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폭력 폭로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산 이유라고 본다.

이동원:‘학교폭력 자체해결’ 관련 조문을 보면 ‘경미한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 존재하는 말이다. 실제 피해자에게 ‘경미한 학교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이 모두에게 같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당사자에게 큰 고통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폭력에 대한 민감성과 감수성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폭력은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피해자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교가 피해학생에 대해 고민할 때 학생들은 치유된다. 해맑음센터와 같은 대안 교육기관에 피해 학생을 보내면, 교육청에서는 담임교사나 상담교사에게 최소 1년에 한 번 위탁 기관 방문을 권한다. 하지만 실제 해맑음센터가 2013년 개소한 이후 지금까지 딱 두 곳에서 다녀갔다. 경상북도 영주시와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학교였다. 학생이 거주하는 공간을 살펴보고, 학생의 복교 시 반 편성과 또래집단 구성 등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피해 자 치유에 도움된다. 실제 두 지역에서 온 아이들은 학교폭력 피해를 회복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용기를 냈고, 복교해 잘 적응했다.

차용복:무관용·엄벌주의는 아니더라도 가해 학생이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반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또한 가해자를 처벌하고 징계를 줬으니 끝났다고 봐서도 안 된다. 그게 끝이 아니라 피해자가 회복되는 데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피해자에게 우리 사회가 어떤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피해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학교폭력 피해 학생과 가족들만을 위한 통합 지원기관이 있으면 좋겠다.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가 있다. 범죄 피해자는 법무부에서 지원하는 스마일센터를 이용한다.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하는 꿈드림센터의 문을 두드린다. 위기상황에 맞게 각자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만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떠올리는 통합 지원기관이 없는 것이 아쉽다.

서미:학교폭력의 완전한 근절은 어렵겠지만, 왜 제대로 근절이 안 됐느냐는 질문은 해볼 수 있다. 사회가 해결해가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고, ‘아이들끼리의 문제’로 본 건 아닌가 싶다. 또한 학교폭력 가해·피해자만이 아니라 또래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내 권리가 중요하듯이 다른 누군가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인식도 필요하다.

천경호:안전망을 만드는 데 제일 중요한 건 역시 관계라고 생각한다. 3월 개학을 하면 아이들과 1대 1 면담을 하며 관계를 쌓는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아이들에게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해도 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또 하나는 학생과 학생의 관계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나 자신은 그런 좋은 친구인지’와 같이 질문을 바꿔 물어보게 하고 관계 맺는 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학교폭력을 중간에 저지할 수 있는 친구도 생긴다.

가해 학생 부모의 태도도 중요하다. 보통 내 아이가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내가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아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부정한다. 그럴 때 부모는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더 나은 행동을 하게끔 이끌어야 한다. 부모와 교사가 협력하면,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훨씬 더 아름다운 우정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가해 학생을 보면 폭력에 노출된 학생이 많다. 특히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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