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EXIT)의 이윤경·황인성 활동가와 제로 청소년(위부터). ⓒ시사IN 이명익

누군가 버스 문을 두드렸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EXIT)’ 황인성 활동가의 입에서 “누구지?”라는 궁금함보다 “어떡하지”라는 안타까움이 먼저 튀어나왔다. 버스 문이 열리자 한 손에는 헬멧을, 다른 손에는 휴대전화를 쥔 청소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늘 문 열었어요?” “어, 도윤(가명)! 우리 인터뷰 때문에 잠깐 나온 건데 어떡하지, 밥은 먹었어요?” “네, 뭐 그냥…. 몇 시까지 있어요?” “한 8시?” “그럼 배달 끝나고 다시 올게요.” “그래요, 이따 꼭 와요.” 버스 문이 닫히자 어깨너머로 이들 대화를 듣던 이윤경 활동가가 말했다. “아이고, 오늘 금요일이 아닌데 버스가 있으니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들렀나 보다.”

‘금요일’은 약속이었다. 2011년 7월26일 경기 부천 북부역 앞에 처음 등장한 엑시트 버스는 매주 금요일마다 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만났다. 탈학교·탈가정 청소년들이 버스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때로는 상담을 받기도 하고 생필품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들에게 엑시트 버스는 식당이자 쉼터였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움직이는 거대한 녹색 비상구이기도 했다. 설이나 추석, 크리스마스같이 연휴와 겹치는 금요일에도 문을 여느냐는 질문에 황인성 활동가가 대답했다. “그런 날은 그냥 더 즐거운 금요일인 거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오든 폭설이 오든 엑시트 버스에서는 밥 냄새가 풍겼다. 처음 부천과 안산에서 열었던 엑시트는 이후 안산과 신림, 신림과 수원에서 활동했고, 2020년 4월부터는 신림에만 집중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근처 봉림교 위를 지켰다. 여름에는 평균 70여 명이, 겨울에는 40여 명이 버스를 찾았다.

버스를 이용하는 청소년의 발길이 뜸해질 때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덮쳤을 때였다. 청소년에게도 엑시트에도 여러모로 힘겨운 시기였다. “이태원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 모든 비난의 화살이 성소수자에게 돌아가는 걸 보고 ‘만약 가출 청소년이 코로나에 걸렸다’ 하면 이 사회가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걱정됐어요.” 이윤경 활동가가 말했다. 이태원 집단감염 직후 엑시트는 처음으로 잠시 버스 운행을 멈췄다. 청소년과의 만남은 비대면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한 달 만에 다시 거리로 나갔다. 버스에 시동을 걸고 천막을 칠 때마다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구청에서 ‘철거해라’ 하면 저희들은 ‘그럼 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 되냐’ 항의했어요. 청소년 기관에 연계하래요. 청소년 관련 시설은 이미 문을 닫았는데도 말이죠. 한번은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청소년이 저희에게 전화한 적도 있어요.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집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저희가 구청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니 왜 청소년이 집이 없냐고 해요. 세상에는 집이 없고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청소년들도 있다고 말씀드렸죠.” 황인성 활동가가 말했다.

올해 엑시트로 들어온 상담 신청 건수는 2690건으로, 2019년 1376건에 비해 약 두 배나 증가했다. 청소년들은 그나마 어렵게 잡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가장 먼저 쫓겨났다. 청소년 관련 시설은 가장 먼저 문을 걸어 잠갔다. 경제적 어려움은 신체적 어려움으로 직결됐다. 자해와 같은 응급상황도 훨씬 자주 발생했다. 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낸다는 말을 청소년들과 활동가들은 온몸으로 느꼈다. 그럴수록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거리를 지켰다. 2020년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청소년 지원 버스 13대는 모두 멈춰 섰지만,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엑시트는 유일하게 달리고 또 달렸다.

2018년 엑시트 버스 안에서 활동가와 청소년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제공

청소년을 잘 만나는 방법

엑시트는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지원기관)의 예산으로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운영기관)의 위탁을 받아 운영됐다. 2013년에는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대안적인 공동체 주거공간 ‘청소년 자립팸 이상한 나라(이하 자립팸)’가 세워졌다. 엑시트를 찾은 여성 청소년 중 원할 경우 최대 2년2개월까지, 최대 5명이 함께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누군가 정해준 규칙 대신 스스로 정한 약속으로 굴러가는 공간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엑시트와 자립팸의 활동을 기록한 책 〈비상구에서 지은 누구나의 집〉(이하 〈누구나의 집〉)에서 청소년 곰곰(활동명)은 자립팸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회상했다. “저희 때는 귀가 시각이 새벽 2시였어요. 통금이 아니라 우리가 가족이니까 서로 걱정해야 되지 않겠냐는 뜻으로 정한 거예요. 너를 새벽 2시까지 걱정하겠다.” 2018년부터는 자립팸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에게 매달 현금 30만원을 직접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도 시행했다. 30만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증빙도 요구하지 않았다.

엑시트와 자립팸은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 없이 오로지 시민사회의 후원으로 10년을 버텼다. 하지만 갈수록 재정이 어려워졌다. 2020년 4월부터 더 이상 지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국비 지원을 받아보라는 주위의 조언도 있었지만 엑시트와 자립팸은 고심 끝에 문을 닫기로 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확실히 제약이 많이 생기거든요. 효율을 따지고 실적을 챙기는 방식으로 바꿔가면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완전히 다른 방식의 활동을 고려하는 게 맞지, 엑시트라는 이름으로 유지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이윤경 활동가가 말했다. 문을 닫기로 결정했지만 청소년들에게 “영영 안녕”이라고 말하기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동안을 묶어 ‘시즌 1’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차라리 문을 닫으면서까지 자신만의 운영방식과 개성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 엑시트의 ‘고집’은 거리 위 청소년들의 모습과도 어느덧 닮아 있었다. 11월26일 열린, 〈누구나의 집〉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에서 활동가 한낱은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 있는 청소년들은 누구보다 자유·자기결정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누구보다 통제나 폭력에 민감해요. 그렇기에 탈가정, 탈시설 하고 ‘거리’로 나오는 선택을 감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엑시트가 지키고자 했던 자유는 ‘비효율’이었다. 이윤경 활동가는 〈누구나의 집〉에서 엑시트의 ‘비효율적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황인성 활동가는) 청소년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안부를 정말 궁금해해. 안부를 열심히 물어. 이를테면 이 청소년이 핸드폰을 샀다고 해. ‘오, 좋은 거 바꿨다’라고 말하고 끝낼 수도 있잖아. 인성은 ‘어디서 바꿨어?’ 이렇게 묻기 시작하는 거야. ‘어디에서 바꿨어? 얼마 줬는데? 함 볼까? 할부금 볼 수 있는 데 알아?’ 그렇게 계속 들어가다가 이게 사기였다는 걸 확인하지. 그렇다고 불쑥 ‘이거 사기 같은데 맞아?’라고 묻지 않아.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너무 무섭고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고 이럴 거잖아. (중략) 이상하다고 느낀 청소년이 사기범을 찾으러 가겠다고 해. 인성이 경찰에 바로 신고하는 방법도 있잖아. 변호사에게 전화로 조언을 구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냥 그 청소년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 엄청 돌아가는 거야. 그런데 봐봐. 이 청소년이 나중에 또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잖아. 그럴 때 내가 뭘 확인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라도 남길 수 있지 않겠어? 그게 청소년을 잘 만나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해. 이 사람이 고비를 넘어서는 경험을 우리랑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비교적 안전한 상황에서 그걸 같이 시도하는 걸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여기서 활동할 수 있어.” 그의 말을 기록한 박희정씨는 엑시트의 지향점에 대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탈학교·탈가정,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닌데

거리 위에서 청소년을 만나는 날은 금요일 하루이지만, 활동가들은 청소년이 부르는 곳이라면 요일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달려갔다. 활동가 각자 휴대전화에 페이스북 메시지앱을 깔아두고, 공용 폰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새벽 3시에 누군가로부터 ‘나 경찰서야’ 하고 전화가 오면 출동하는 거죠. 재판에도 같이 가고 병원에도 같이 가고 백신도 같이 맞으러 가고 참여하고 싶다는 집회도 같이 가고. 떼인 알바비도 받으러 가고. 저희도 뭘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같이 노동법 공부하는 거예요.” 황인성 활동가의 말에 이윤경 활동가가 덧붙였다. “연애도 진짜 같이 걱정해주고요. ‘이렇게 해보면 돼’라고 말하지 않고 ‘이거 같이 해볼래’라고 이야기해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만약 안 되더라도 또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거죠.”

물론 청소년들이 마음을 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10년 전 부천역 앞에서 우연히 엑시트 버스를 보고 ‘탑승’한 청소년 제로(활동명) 역시 활동가들과 신뢰를 쌓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꼰대 같은 어른들하고 진짜 많이 싸웠거든요. 처음에는 엑시트도 쉼터나 시설하고 똑같을 거라고 엄청 경계했어요. 근데 매번 ‘제로 안녕?’ ‘뭐 먹을래요?’ ‘뭐 할래요?’ ‘이거 해볼래요?’ 이렇게 물어보니까 마음을, 안 열기가 어렵더라고요.” 제로는 자립팸을 거쳐 현재 활동가들이 알려준 덕분에 입주한 LH 임대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후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일이 없어도 꾸준히 엑시트를 찾아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눴다.

제로는 아직도 거리에는 과거의 자기처럼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 많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탈학교 청소년이라고, 탈가정 청소년이라고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하면 어느새 정말 그 모든 게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어리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근데 그게 아닌데, 내가 탈학교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내가 탈가정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닌데.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면 꼭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이제 엑시트가 사라지지만, 아니 시즌 1이 끝나지만요.”

10년 동안 먹은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었냐고 묻자 제로는 웃음을 터뜨렸다. “(활동가들한테) 진짜 미안한데, 시켜 먹는 게 제일 맛있었어. 우리 시즌 2에서는 음식은 하지 않는 걸로 해요.” 배달 음식이 제일 맛있었던 이상한 밥집, 그럼에도 3만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던 쉼터,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유일하게 달렸던 움직이는 비상구 엑시트는 11월12일 금요일 마지막 운행을 마쳤다. 엑시트 시즌 2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없는 약속으로 남아 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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