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검수완박’ 입법 과정의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검사 시절 “(검찰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2013년 10월 법사위 국정감사)”라고 밝힌 그였다. 검찰총장 시절엔 ‘검수완박’에 대해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 2021년 3월)”이라며 맹비난했다. ‘검수완박’ 논란을 둘러싼 정쟁이 깊어지고 검찰의 반발이 거세질수록, 검찰총장직에서 대통령 자리로 직행한 그의 입에 시선이 모였다.
윤 대통령은 ‘검수완박’ 논란과 거리를 두었다.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말을 아꼈다.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이 제안하고 여야가 서명한 중재안이 나오자, 당시 배현진 당선자 대변인을 통해 “국민들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라며 ‘점잖아 보이는’ 반대 메시지를 전한 게 전부였다. 윤 대통령이 구체적인 메시지를 낼 경우, 행정부 수장이 국회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검찰 권한이 대폭 축소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직접 메시지는 더 이상 없었다. 대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당시 후보자의 반발이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최근 윤 대통령은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대통령비서실과 사정기관, 주요 정부 부처 요직에 검찰 출신들을 배치했다. 법무부와 검찰 인선을 넘어 국정 운영 핵심에 잇따라 등장한 것이다. 정치권에는 “권력의 크기는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에 비례한다”라는 속설이 있다. 권한이 축소된 검찰은 윤 대통령의 ‘첫 인사’를 통해 권력을 쥐었다.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인사는 40여 명. 이 가운데 검찰 출신이 6명이다. ‘양’으로 보면 적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질’로 따지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총무·부속·인사·법무 등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 보좌하는 자리에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검찰 출신 인사들이 포진했다.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수행비서를 맡았던 검찰 수사관과 실무관도 대통령비서실 부속실에 합류했다. 서울 서초동 검찰총장실이 용산 대통령비서실로 옮겨온 셈이다.
총무비서관은 통상 대통령실 ‘곳간지기’로 불린다. 대통령실 재정 및 내부 인사를 총괄하면서, 대통령과 참모들의 활동비와 관저 예산 및 영수증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를 관리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함께 근무한 윤재순 전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이 임명됐다. 대검 운영지원과는 대검의 인사와 예산 등 살림살이를 맡는 부서다.
대통령 부속실장은 각종 보고와 정보가 모이는 마지막 관문이다. 앞선 정부에서는 각 부처 장관들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기 위해 제1·2부속비서관을 먼저 만나야 했다. 대통령 일정과 독대·면담 시간 등을 관장하는 등 사실상 대통령실 문을 쥐고 있어서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렸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제1·2부속실을 통합했다. 검사 시절 윤 대통령을 보좌한 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이 대통령비서실 부속실장에 임명됐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은 검찰수사관 출신 복두규 전 대검 사무국장이 맡았다. 인사기획관은 정부 전 부처와 공기업 인사를 담당한다. 대검 사무국장은 검찰 일반직 인사와 행정 등 사무를 총괄한다. 복두규 인사기획관이 대검에서 하던 업무가 대통령실로 이어지게 됐다. 인사기획관을 보좌하는 인사비서관에는 이원모 전 대전지검 검사가 임명됐다. 이 비서관은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대검 연구관을 지냈다. 대전지검 근무 시절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대통령의 인사는 그 자체로 메시지
대통령비서실 인사와 맞물려 새로운 인사 시스템도 도입됐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내놓은 민정수석실 폐지 공약에 따른 조치다. 기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은 인사 검증과 정보수집 권한을 동시에 쥐었다. 인사 검증 명분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사정기관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줬다. 국정 운영 과정에서 인사와 정보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대통령의 인사는 그 자체로 메시지이고, 국정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주요 정부 부처에 배치될 고위 공직자의 세평, 개인 신상, 채무관계 등 내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건 그 자체로 권력이다. 이 때문에 민정수석실은 어느 정권에서나 실세 중 실세로 통하면서 부작용도 컸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폐지한 명분이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은 폐지 대신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인사 검증을 하는 방식처럼, 법무부에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업무 일부를 맡기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은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 추천→법무부 1차 검증→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2차 검증→대통령 임명’ 구조로 새롭게 구성했다.
‘1차 인사 검증 역할’을 맡은 법무부는 6월7일 관보를 통해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맡을 ‘인사정보관리단’ 출범을 공식화했다. 관보에 따르면, 신설된 인사정보관리단은 ‘지청급’ 규모의 법무부 장관 직속 조직이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개인정보 수집·관리 권한의 위탁 대상에 법무부 장관이 추가됐다. 쉽게 말해 법무부 장관은 모든 정부 부처 공무원을 검증하고, 정보수집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가졌다는 뜻이다. 법무부 장관은 외청으로 둔 검찰의 사무감독과 법무행정 등 기존 업무와 함께, 인사 검증 및 정보수집 권한을 한손에 쥐게 됐다. 사실상 민정수석이 하던 일을 그대로 넘겨받은 새로운 권력이 만들어졌다.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한동훈 전 검사장이다. 검찰에 권력이 집중됐다는 지적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고위공직자 추천 업무는 앞서의 대통령비서실 인사기획관실이, 1차 검증은 한동훈 장관 직속의 인사정보관리단이 맡는다. 2차 검증은 대통령비서실 공직비서관실이 담당하는데, 공직기강비서관도 검찰 출신(이시원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이다. 추천, 정보수집, 인사 검증, 임명 모두 검찰 출신이 맡는다. 인사와 정보수집 면에서 역대 어느 정권에도 없던 ‘대통령-대통령비서실-법무부 장관’으로 연결된 ‘대통령 직할 체제’가 구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인사정보관리단은 운영 과정에서 현직 검사 파견도 명문화했다. 검사가 공직자뿐만 아니라 각 기관 정보까지 검증을 이유로 수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과거 민정수석실은 경찰 정보 기능을 통해 인사 검증을 하고, 검찰과는 내용 공유를 차단하는 ‘안전장치’를 두었다. 이제는 이 차단막이 사라졌다. 법무부는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 검증 범위와 대상을 공식화하지 않았으나,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인사 검증도 포함되리라 전망된다. 법관도 인사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재판 당사자인 검찰이 참여한 조직에서 검증이 이뤄진다면 재판 독립성과 행정부 견제를 핵심으로 하는 3권 분립 원칙을 해친다.
법무부는 대통령실에 집중됐던 인사 추천·검증·판단을 인사혁신처와 법무부 등이 나누는 방식으로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한 조치로 인사정보관리단 사무실을 법무부 과천청사가 아닌 서울 삼청동 감사원 별관에 마련했다. 인사 정보가 사정 업무에 이용되지 않도록 부서 간 정보 교류를 제한하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중간보고도 하지 않기로 했다. 초대 인사정보관리단장에는 검찰 출신이 아닌 박행열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리더십개발부장을 임명했다.
그러나 우려는 가라앉지 않는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인력 배치, 시스템상 검찰에 권력이 쏠리고 있는 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실제 ‘선의’로 시작한 일이고 임명된 인사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검찰 권력 확대와 이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라고 짚었다.
다른 정부 부처 요직에도 검찰 출신 임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사정기관에 집중돼 있다. 주요 사정기관에 대통령과 가까운 검찰 출신 인사들이 포진된 만큼 관가는 물론 민간에도 직간접으로 장악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임명된 인사들이 ‘검수완박’ 법안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검찰의 활동반경을 우회적으로 넓히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먼저 시선이 쏠리는 건 법제처장직이다. 법제처는 행정부 내 법률 유권해석을 맡는다. 정부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의 제정도 지원한다. ‘검수완박’ 법안의 하위 법령 정비는 물론이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윤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시행령 정치’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행령은 국회 동의가 없어도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정할 수 있다. 법제처장에는 이완규 변호사가 임명됐다.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동기로 검사 출신이다. 2020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받았던 ‘정직 2개월’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변호를 맡았다.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장직에도 검찰 출신 인사인 이복현 전 부장검사가 임명됐다. 검찰 출신 금감원장은 금감원 설립 이후 처음이다. 이 전 부장검사는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2006년 대검 중수 1과장을 맡아 현대차 비자금과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수사할 당시 함께 일했다. 2013년에는 국정원 댓글 수사팀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했고, 2016년에는 박영수 특검팀에서 국정농단 수사를 했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에 공개적으로 반발해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이보다 앞서 6월3일엔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조상준 전 대검 형사부장이, 차관급인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박성근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변호사)이 임명됐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국정원 인사와 예산 조직을 총괄한다. 그동안 대통령 또는 실세 권력자와 가까운 인사가 배치됐다. 조상준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으로 고발되자 변호를 맡았다.
“실제 못지않게 보여지는 모습도 중요한데”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한덕수 총리를 보좌한다. 한덕수 총리가 국무조정실장으로 추천한 경제관료 출신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윤핵관’의 공개 반발 등 진통을 겪은 끝에 결국 인선이 무산되었다. 이에 비해 총리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검찰 출신 비서실장이 곧바로 임명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장관급)도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곳곳에 검찰 쏠림 현상이 선명해지면서 검찰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권력이 확대되는 모양새가 될수록 검찰 조직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지적이다. 한 재경지검(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서울 소재 지방검찰청) 간부급 검사는 “인사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임명된 직후에도 있었다. 외부에 잘 알려져 있듯이 측근 배치가 극단적으로 이뤄지면서 내부 반발이 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조직이 마치 한 몸처럼 보이지만, 검찰총장 시절 때도 그렇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총장 시절(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을 당시) 전국 검사들이 목소리를 냈던 건 윤 총장 개인 편을 든다기보다는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과도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취지였다. 실제로 그 이전에 일어난 ‘수사지휘권 발동’ 때만 해도 검사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동안의 검찰 안팎의 분쟁, 최근의 ‘검수완박’ 법안 등을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한 몸처럼 여겨질수록 이후 조직이 떠안게 된 부담이 더 컸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재경지검 검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떠나며 남긴 사직 인사에서 ‘검사의 일은 what it is(실제) 못지않게 what it looks(보여지는 모습)도 중요한 영역’이라고 했다. 이 문구가 검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검찰 인사 편중 지적에 대해 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라는 입장만 밝혔다. 6월7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의 관련 지적에 대해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6월8일 출근길에선 대통령의 인재풀이 너무 좁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전 정부를 겨냥해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하며 “선진국에서도, 특히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법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지금의 인선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6월8일 오후 후보군에서 제외됐다. 서울지검, 대전지검 등에서 검사로 일했던 강 교수는 1997~1999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하며 ‘카풀’ 등을 통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출신 인사가 공정위원장직에 내정되었다면 이 또한 역대 최초라 관심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선 ‘검찰 편중 인사라는 지적으로 강수진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군에서 제외됐나’라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할 입장에도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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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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