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9일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협회와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각각 간호법 제정 촉구, 간호법 제정 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2월9일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협회와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각각 간호법 제정 촉구, 간호법 제정 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2월, 간호법은 여야 대치의 중심에 섰다. 2월9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간호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의힘은 다수당의 횡포라며 반발한다. 보건의료 단체 간 이견이 커 법사위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비판이다. 여당 내에서는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에 대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이유 없이 법안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반박한다. 법안 내용에 대해 여야 입장 차가 없었으며, 상임위원회에서 찬반 단체 간 입장을 충분히 조율했다는 주장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었던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간호법은 여야 3당에서 각기 발의했을 정도로 의견이 일치하는 법안이었다. 그런데 국민의힘에서 간호법에 반대하는 보건의료 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법안 심사를 지연시켰다”라고 말했다.

2022년 3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가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간호법은 어쩌다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간호법이 제기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간호법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먼저 의료법이 규정하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의료법에 따라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는 대표적으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가 있다. 그런데 이 ‘보조’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현재 불명확하다. 숱한 의료 분쟁 결과 탄생한 판례들이 최소한의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설계된 의료법은 지역사회 기반의 간호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역사회 기반 간호란 가정 방문과 같이 의료기관을 오가지 않는 간호를 포함한다.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이 주로 겪는 질환은 급성질환이 아닌 만성질환으로 변해간다. 만성질환 환자에게는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기에 매번 의료기관을 방문하기보다는 본인 거주지 등에서 간호를 받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은 간호 인력이 지역사회에서 수행하는 간호 행위를 포함하지 않는다.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간호법 제정의 배경이 되었다. 대한간호협회(간호협)는 간호사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환경과 높은 퇴직률이 되먹임 구조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말한다. 인력이 부족해 과로가 나타나고, 과로로 인해 퇴사율이 증가하며 인력이 더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간호 인력의 근무환경을 규정하기 위한 별도의 법률이 필요하다고 간호협은 주장한다.

정반대 의견을 가진 보건의료업계 단체들도 간호법이 제기된 배경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한다. 그러나 간호법이 가져올 여파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간호협은 “우수 간호 인력을 양성하고 간호 서비스의 질을 높여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단체들은 간호법이 다른 직역의 이익을 침해하고 보건의료체계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13개 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은 간호사들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개선도 개악도 없다

그러나 간호법 제정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 단체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해 제정되더라도 간호 영역에서 유의미한 개선도, 개악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간호법이 담고 있는 내용에 새로운 조항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총 31개 조문으로 이뤄진 제정안에서 새로 추가된 내용은 7개 조문 정도다. 나머지는 대부분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흩어져 있던 조항을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

간호법에 새로 추가된 조문들도 실효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운 조문 대다수는 간호사의 처우 개선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 간호사의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처우 개선의 기준이 무엇인지, 의무를 방기한 기관을 어떻게 제약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 한림대 간호학과 강경화 교수는 간호법을 전공의법과 비교하며 한계를 지적한다. 전공의들의 과로 문제에 대한 개선안으로 시행된 전공의법은 제정될 때부터 근무시간 상한선과 과태료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그 결과 전공의들의 연속 근무시간, 평균 근무시간이 줄어들었다. 강 교수는 “간호법은 간호 인력의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함에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항들이 부재하다. 따라서 간호법이 제정되더라도 간호 현장에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평가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법안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실효성은 더 떨어졌다. 직역 간 이견이 심한 조문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는 주로 해당 조문을 삭제하거나 의료법과 동일한 문구로 변경하는 방법을 택했다. 예컨대 간호사의 업무를 규정한 간호법 제10조는 간호협과 의협 간의 갈등이 가장 심했던 조항이다. 간호협은 기존 의료법에 규정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문구를 수정하려 했다. ‘보조’의 기준이 불명확한 데다가 의사와 간호사 사이 업무관계를 협력보다는 종속적으로 규정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의사협회는 해당 조항이 변경될 경우 간호사들이 의사의 지시를 떠나 독자적인 의료 행위를 일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도하에’라는 문구가 남아 있기에 “실제적 업무 영역 변경을 수반하지 않는다”라고 분석한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와 보건복지부의 반박에도 의심은 끊이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판단을 내리기보단 갈등을 피하는 길을 택했다. 해당 조항을 의료법과 동일하게 원상 복구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간호법 제정 이유 중 하나인 업무 범위 조정은 공염불이 되었다.

직회부된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어떻게 될까? 간호법 제정이 그동안의 갈등을 일단락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간호법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후 법 개정 또는 하위 법령 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호협은 간호법이 제정되더라도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훈화 간호협 정책전문위원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간호법은 우선 큰 뼈대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디테일한 부분은 추후 하위 법령을 통해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간호법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이를 ‘꼼수’로 인식한다. 대한치과협회 홍수연 부회장은 지난 1월19일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법은 한번 제정되면 이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얼마든지 독소 조항으로 지적된 내용들을 다시 채울 수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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