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8월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 열린 ‘보건의료 현장 불법의료 실태고발긴급 기자간담회’에서 가면을 착용한 상급 종합병원 간호사가 증언하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파업 소식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8월7일 파업을 앞두고 대학병원들이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간다고 밝히자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일각에서 “환자를 사지에 몰아넣는 행위”라는 비판이 잇따르는가 하면 “의사들의 집단 휴진에 K방역에 구멍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8월7일, 쏟아지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파업은 큰 혼란 없이 하루 만에 마무리되었다. 우려하던 ‘의료 공백’도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전공의가 파업을 했는데도 병원이 잘 돌아갔다는 건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PA 간호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박주헌 간호사(가명·28)가 말했다.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휴진해도 그 여파가 닿지 않는 ‘무풍지대’가 있었던 것이다. 박 간호사의 일터가 그랬다.

박 간호사가 근무하는 과는 비인기인 외과계열이다. 전공의가 한 명도 없다. “파업한다고 해도 우리 과 교수님들은 신경도 안 써요. 오히려 PA 간호사들이 없으면 병원이 안 돌아갈걸요.” 그는 전공의들이 기피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차출된 5년 된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다.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흉부외과처럼 전공의 부족 현상이 심한 과가 “PA 간호사들이 갈리는(심하게 고생하는) 사각지대”라고 박 간호사는 말했다.

병원에는 전임 간호사, 전담 간호사 혹은 PA 간호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병동 간호사들과는 호칭도 유니폼도 다르다. 간호부가 아닌 의국에 소속된 이들은 수간호사나 간호팀장이 아닌 전문의의 지시를 따른다. 한국어로 옮기면 ‘진료 보조인력’인 PA들은 사실상 의사의 기능을 일부 수행한다. 간단하게는 처방 대행부터 수술 보조, 진단서 작성, 시술까지…. 일종의 편법이다. 각 병원들은 필요에 따라 간호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중에서 PA를 차출한다. 문제는 PA가 현행 의료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박 간호사의 경우 신입 시절 PA로 차출되었다. 간호학 수업에서 배우지 않았던 수술도구 세팅하는 법, 상처 꿰매는 법 등을 동영상이나 전문의 강의를 통해 새로 배웠다. “딱 전공의를 대신하는 역할”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논문 쓰는 것 빼고는 전공의가 하는 일은 다 했어요. 당직 근무도 서고 가끔 집에 씻으러 가고. 그런데 페이를 보면 간호사 월급인 거죠.”

의료법 제2조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한정된다. 그러다 보니 PA 간호사의 위치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수술 보조는 할 수 있지만 절개나 봉합, 처치를 하면 안 된다. 또 정맥 채혈은 간호사의 업무이지만, 동맥혈 검사(ABGA)는 자칫 잘못하면 동맥폐색증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 손이 부족할 때는 PA 간호사들에게 이 같은 의료행위들이 맡겨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의료인력이 부족한 공공병원의 경우, PA는 필수인력이다. 한 지방 의료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25년 차 이정윤 간호사(가명·46)는 “보조 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어려운 구조다. 혹시나 전문의가 자리를 비웠을 때 응급 상황이 발생할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라고 말했다.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이 닥치면 의사 업무를 대행할 때가 있다고 여러 PA 간호사들은 증언했다.

그러다 보니 PA 간호사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낼 때는 ‘사건’이 불거진 이후다. PA로 일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이 의료분쟁에 휘말리거나, 실제로 의료사고를 내는 경우다. PA 간호사 대부분이 전문의의 지시가 있더라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일한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7년 차 김상희 간호사(가명·33)는 “명백한 의료인인데 ‘범죄자’라는 눈초리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반 간호사로 근무하다 3년 전 전공의가 없는 외과계열 과에 PA로 불려온 김 간호사는 환자들에게 ‘의사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말하냐’라는 항의를 듣기도 한다.

ⓒ연합뉴스간호부가 아닌 의국에 소속된 PA 간호사는 전문의의 지시를 따른다.

의대 정원 확대는 ‘모두’의 일

PA는 전국에 1만명으로 추산된다. 보건의료노조가 2020년 8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PA 인력은 총 717명으로, 병원 한 곳당 평균 89.63명이 PA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공의 파업 하루 전인 8월6일 ‘보건의료 현장 불법의료 실태고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의사 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을 침해하고 PA들의 불법 의료를 유발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노조에 따르면 2017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시행된 이후 주당 최대 수련 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PA를 증원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204개 병원에서 근무 중인 PA 간호사는 3815명으로, 2010년(1009명)과 비교했을 때 4배가량 증가했다.

간호사 대부분이 의사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 공감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병원 분업 체계에서 ‘업무 부하’를 견디고 있는 이해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는 “병원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의사를 고용하는 대신 간호사를 PA로 쓰면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눈감아주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PA 간호사들의 현실은 ‘의대 정원 확대’라는 현실과 멀리 있지 않다. 이들은 전공의 파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학병원에서 1년 차 PA로 일하는 윤희진 간호사(가명·30대)는 전공의 파업에 대해 비판적이다. “전공의들도 담당해야 할 환자 수가 많아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레지던트의 일이 인턴에게, 인턴의 일이 간호사에게 전가되면서 악순환이 벌어진다. 의사들은 개원의든 전문의든 선택지가 있지만 간호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다.” 김상희 간호사가 전공의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좀 더 복잡하다. 의대 정원을 단순히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증원을 한다고 해도 제가 있는 외과계열이나 지방 의료원은 어차피 공백일 것이다.” 오히려 그는 PA의 의료행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는 ‘환자의 안전’을 이유로 PA 합법화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간호 인력 확충을 목표로 간호대학 입학 정원을 꾸준히 늘려왔다. 2019년 기준 입학정원은 2만5000명으로 2006년(1만1147명)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신규 간호사의 병원 간 이직률은 매년 증가해 2019년 기준 45.5%(병원간호사회 자료)에 이르고, 사직률도 42%(2018년, 보건의료노조)나 된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신입 간호사 2명 중 1명은 일터를 떠나고 있는 셈이다.

박주헌 간호사도 지난 5년간 PA로 경력을 함께 시작한 동기들의 이직과 사직을 지켜봤다. 전문성을 인정받기 힘든 데다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저도 사직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만둔다는 것은 사실 환자 버리고 도망가는 일이거든요.” 환자들이 완치 후 퇴원할 때 얻는 보람으로 한 해 한 해 버텨왔다. 그러나 병원에 남아 있는 노동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구조 속에서 박 간호사와 같은 PA들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진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일이 단순히 의사들만의 현실이 아닌 이유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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