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되자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간호사는 의료인이다.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와 더불어 의료법에 정해져 있다. 간호는 의료행위의 하나이며 이 업무에 “누구든지 간섭하지 못한다”. 의료법 제27조는 한발 더 나아가 간호행위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간호사가 의사 일을 할 수 없듯 의사도 간호사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간호사 일’이란 무엇인가? 간호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나? 또는, ‘할 수 있어야’ 하는가? 의료계와 정치권 갈등을 촉발한 간호법의 핵심 논제다.

간호사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감염·중증 등 필수 의료 분야는 업무 강도가 특히 높다. 대형병원 간호사들은 대개 3교대로 근무하며 휴식 시간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PA(Physician Assistant)’라 불리는 일부 간호사들은 처방 대행, 수술 보조, 진단서 작성 등 전공의가 해야 할 일까지 떠맡기도 한다. 대부분 당사자들의 뜻이 아니다. 의사가 태부족이기에 어쩔 수 없이 불법의 영역에 드나드는 것이다. 간호법은 의료 현장의 부조리를 겨냥해 간호사 업무를 명확히 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법으로 알려졌다. 이 기치는 간호사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의료의 질 확보라는 공익에도 이롭다.

그런데 4월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을 ‘처우개선안’으로만 보면 의아한 점이 있다. 간호사 근무 환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지 법안에 드러나지 않는다. 간호사가 “적정 노동시간의 확보, 일·가정 양립지원 및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만 적혀 있다. ‘4주 평균 주 80시간’ ‘연속 수련 후 최소 10시간 휴식’ 등 업무 조건을 명시한 전공의법과 대비된다.

의문을 자아내는 대목은 또 있다. 간호법 표결 이틀 전인 4월25일, 보건복지부는 간호법보다 구체적인 처우개선안을 내놓았다.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안’에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를 목표로 간호 인력 충원 △지방 병원의 간호사 고용 재정지원 △PA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를 발표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이 정책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간호법 제정을 가로막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의미를 퇴색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부 처우개선안이 채우지 못하는 간호법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간호법 제1조에 들어간 ‘지역사회’라는 구절이 뇌관이다.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을 도모하여 국민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안 통틀어 단 두 차례 등장하고 얼핏 선언적인 듯 보이는 ‘지역사회’라는 표현이 간협에게는 반드시 관철해야 할 핵심 가치이고, 의협(대한의사협회)에게는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독소조항'이다. 정부·여당은 4월11일 보건의료 단체들에 '지역사회' 표현이 빠진 중재안을 제시했다. 간협은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다.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은 “간호법이 제정되어도 간호사들이 개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은 “간호법이 제정되어도 간호사들이 개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간호법에 반대하는 이들은 간협이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이 아니라 '젯밥'에 더 눈독 들인다고 생각한다. 의협만이 아니다. 13개 보건의료단체가 간호법 제정에 반대해 보건복지의료연대를 구성했다. 이 법이 자신들의 직역을 침탈한다는 이유다. 박시은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부회장(동강대 응급구조과 교수)은 이렇게 말했다. “간호사 면허로 할 수 있는 일이 지난 20년간 계속 늘었다. 간호사는 입양기관에도, 수영장에도 있고, 청소년 보호 치료센터에도 간호사가 필수 인력이다. 간협은 간호사가 응급구조사 역할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간호사 3분의 1은 병원 밖에서 일한다. ‘지역사회’ 조항은 이를 더 가속화할 것이다. 지금도 병원 간호 인력은 모자란다. 왜 간호사를 병원 밖으로 더 나가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해야 하나?”

‘지역사회’ 구절이 뇌관 된 까닭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은 간호법 입안과 협상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인물이다. 간호법에 ‘지역사회’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지역사회에 간호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료법은 의료기관 안 활동을 규정한 법률이다. 지역사회, 즉 병원 밖에서 간호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는 불명확하다. ‘의사의 지도’에 따라 일하는 병원 간호사와 달리 노인요양시설, 장애인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병원 밖에 있는 간호사들은 활동이 위축된다. 이들의 적극적 활동을 장려하자는 게 간호법 취지라고 김 위원은 말했다. 그런데 '지역사회'를 명문화하면 간호사 전문성을 뛰어넘는 의료행위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예컨대 의사 없이 개원해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까? 김원일 위원은 이런 우려가 “착각이나 왜곡, 아니면 둘 다”라고 주장했다.

의료법상 간호사는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다. 진료행위도 금지되어 있다. 의료법상 간호사 업무는 △환자의 간호 요구에 대한 간호 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상담 및 건강 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간호조무사 업무보조 지도에 그친다. 이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는 간호법의 결과가 아니라 단순히 의료법 위반이다. 간호법이 생기더라도 의료법을 고치지 않는 이상 ‘간호사 병원’이 타 의료기관과 경쟁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간호법 시행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5월11일 ‘간호법·면허박탈법 폐기 전국 2차 연가투쟁’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간호법 시행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5월11일 ‘간호법·면허박탈법 폐기 전국 2차 연가투쟁’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간협이 일단 간호법을 제정한 뒤 시행령을 만들거나 법을 고쳐 단독 개원을 꾀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의심은 간호사 집단에 대한 불신만이 아니라, ‘법안 자체만 놓고 보면 별다른 실익이 없어 보인다’는 관점에서 비롯한다. 김원일 자문위원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반대 근거로 삼는 것은 유령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간호법은 향후 벌어질 ‘시행령 투쟁’의 포석이 아니며 법안 자체의 실효도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간협이 보기에, 간호법은 고령화 대책이다. 고령화에 따라 만성질환자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이들 다수는 긴급한 치료가 아니라 ‘관리’가 필요하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이 펴낸 ‘2022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전체 사망 중 79.6%다. 의료법상 간호사의 업무인 ‘간호 판단’ ‘간호 요구자에 대한 상담’ ‘요양을 위한 간호’를 병원 밖에서 하도록 유도하자고 간협은 주장한다. ‘돌봄’의 질 향상이다. 김원일 자문위원은 ‘간호사의 돌봄’을 이렇게 말했다.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다면 운동을 어떤 걸 할지, 일상생활에서 어떤 음식을 조심할지 이야기할 수 있다. 요양보호사 등 비의료인은 모르는 영역이다.”

돌봄 영역으로 진출해 의료기관에서 이탈하면? 김원일 위원은 간호법의 처우 개선 관련 조항이 유효할 것이라고 본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을 통한 간호사 등의 장기근속 유도 및 숙련 인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한다(제21조).' 선언적 조항처럼 보이지만 실효가 있다. 법이 국가에 의무를 지게 한다면 정부는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예산이 배정되고 업무 환경이 개선될 것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의협은 ‘병원 밖 간호행위’를 확대하는 데 반발한다. 추후 생겨날지 모를 ‘간호사 병원’만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의협은 간호법이 70년 이상 지속해온 의료시스템을 뒤흔든다고 주장한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간호사가 지역사회에 진출해서 하려는 ‘돌봄’이 무엇인지, 그게 의료인지 아닌지 묻는다. 어느 쪽이든 돌봄이 간호사만의 직분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논리다. ‘의료에 속하는 돌봄’이 있다면 의료법상 의료기관 안에서만 수행해야 한다. 의료가 아닌 돌봄은? 간호사가 그 일을 하도록 유도할 이유가 없다. 김 대변인의 말이다. “간호를 비롯한 의료행위를 의료기관 안에서 행하도록 정해놓은 게 의료법이다. 돌봄이라는 불명확한 행위를 의사 지도·감독 없는 곳에서 하겠다는 게 간호법 취지다. 간호법은 의료인으로서 간호사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돌봄은 간호사의 영역일까

만성질환자나 벽오지 환자 관리는 간호법 제정이 아니라도 대응할 수 있다고 김이연 대변인은 말했다. 가정간호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간호사가 현장에 방문해 간호·투약·주사·상담하는 것이다. 다만 방문간호는 의사가 지시하고 간호사의 보고를 받는다. 수액이나 백신처럼 일반인이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의료행위조차 간호사 독단으로 수행해선 안 된다고 본다. 모순되게도, 이러한 의료서비스를 가장 원하는 이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장기가 노화되거나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는 합병증이 많다. 성분이 몸에 맞지 않거나, 급박하게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간호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곧바로 간호사가 설립한 ‘건강증진센터’나 ‘요양원’ ‘돌봄센터’가 성업할 가능성은 낮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간호사가 설립한 기관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간호인력을 통해 저비용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하게 한다’는 정책 목표를 이루려면 결국 국가 재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간협 김원일 정책자문위원은 “세계적으로 보건의료서비스 체계는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관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국가가 지역사회 보건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모든 걸 의료기관의 치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간호사의 지역사회 활동을 국가가 지원하는 게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5월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 모인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간호법 공포 요구를 담아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시사IN 신선영
5월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 모인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간호법 공포 요구를 담아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시사IN 신선영

간호사가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재정을 지원하고, 어디서부터는 금지해야 할까? 지역사회로 나가려는 간호사들은 의사가 ‘지도’해왔던 간호라는 의료행위를 다시 정의하자고 요구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간호 업무를 좀 더 상세하게 규정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의료행위라는 게 원래 딱 부러지게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혈압을 재는 것과, 혈압을 잰 뒤 ‘약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건 같은 행위인가? 다르다면 법에 ‘간호사는 혈압 수치만 알려줄 수 있다’고 정해야 할까?” 김 교수는 정책 결정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사를, 전문직을 믿어라’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갈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민주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5월1일 공식 SNS에 ‘정부가 간호법안 통과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를 올렸다. “간호법안이 오히려 돌봄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된다”라는 등 부정적 입장이 적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고심 중이라고 알려졌다. 5월16일 국무회의에서 이 건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으면 연대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파업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든 갈등이 쉬이 봉합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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