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요구권보다는 거부권이라는 표현이 더 직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4일 양곡관리법에 대해, 5월16일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 관련 자료를 찾아 읽었다. 대통령이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에 이견이 있을 경우에는, 15일 이내에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재의요구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에 대해선,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법률로 확정된다. 현재 의석 분포를 보면, 이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미국 연방헌법에서 유래한다. 영국 명예혁명 이후 무력해진 영국 국왕이 의회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에 대한 견제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단다. 조지 W. 부시, 오바마, 트럼프 때는 거부권 행사가 10~12건에 그쳤지만, 과거에는 수백 번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루스벨트 635회, 클리블랜드 584회, 트루먼 250회 등).
한국은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 역대 대통령이 총 66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1987년 직선제’ 대통령 이후로는 노태우 7건, 노무현 6건, 이명박 1건, 박근혜 2건이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정부 때는 거부권 행사가 없었다. 비교적 거부권 행사가 많았던 노태우·노무현 정부 때는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는 당·청 갈등이 ‘선별적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대대표가 야당과 협의해 ‘공무원연금법개정안’과 ‘국회법개정안’을 연계 처리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 행정입법(시행령) 통제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후 ‘여당 원내대표 축출’로 이어졌다. 여야가 쟁점법안을 연계해 주고받는 식으로 ‘합의의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타협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대통령 국정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거부권 행사로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서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과정을 ‘복기’했다. 간호법 논란은 ‘직역 간 갈등’을 넘어선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헌법적 권한이라지만 연이은 거부권 행사는 협치의 공간을 확 좁혀버린다. 6월에 상정될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도 거부권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여당은 내년 총선에서 국회 지형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것인가. 그러기엔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갈등을 풀어주길 바라는, 시민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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