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독립 과학자문단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티나 파겔 UCL 임상연구교수. ⓒ시사IN 신선영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영국에는 정치의 ‘빈틈’을 메운 풀뿌리 단체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2020년 5월 창립된 과학자 그룹인 ‘독립 과학자문단(Independent SAGE)’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당 정부 시절 수석 과학 고문을 지낸 데이비드 킹 경을 중심으로 공중보건학자 12명이 모였다. 영국 정부의 방역 정책에 관여하는 과학자문단(SAGE)과는 다르다. 코로나19 초기 SAGE에 참여하는 전문가와 이들의 과학적 근거가 공개되지 않자,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독립 과학자문단은 매주 코로나19 온라인 브리핑을 열고 있다. 코로나19 후유증부터,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 독감과의 차이 등 코로나19에 대한 궁금증을 설명하고 허위 정보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2년 넘게 독립 과학자문단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티나 파겔 UCL 임상연구교수를 9월27일 만났다. 2022년 3월부터 SAGE는 더 이상 회의를 열지 않았지만, 독립 과학자문단은 여전히 활동 중이다.

매주 자체 코로나19 브리핑을 여는 이유가 무엇인가?

백신접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방역 조치는 중단되었다. SAGE는 해산했고, 관련 정부 부처도 더 이상 회의를 열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은 지난 3월에도 큰 파도가 있었고 인구의 6%가 감염되었다. 지난 7월에는 인구의 4~5%가 감염됐다. 특히 코로나19 후유증에 관한 연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중요했다.

영국 정부가 과학자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고 보나?

영국 정부는 1차 유행에서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았지만 2차, 3차 유행에서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너무 늦게 대처했다. 영국 정부는 봉쇄 조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더 우려했다. 과학자들의 의견을 취사선택했다.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결정(봉쇄 조치)을 내리기 꺼려했다. 하지만 상태가 나빠질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영국이 코로나19 대응 중 잘한 점이 있다면?

정부의 ‘고용유지 계획’은 중요한 개입이었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으면 노동자 월급의 80%까지 정부가 부담하는 정책이다. 봉쇄 조치로 손해를 본 업체를 지원하는 ‘자영업자 지원계획’도 있었다. 연소득 5만 파운드(약 7500만원) 이하 자영업자들에게 3개월분 소득의 80%를 지급하는 안이다.

한국과 달리 영국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 분위기다.

꽤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스 이후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마스크 착용에 익숙해졌다.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 마스크는 ‘문화 전쟁’의 소재가 되었다. 만약 내가 마스크를 쓰고 상점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일부 사람들은 나를 향해 소리칠 것이다. 이제 코로나19를 잊고 싶어 한다. 마스크를 쓰는 게 우스꽝스럽다는 분위기도 있다. 다른 국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영국식 예외주의’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대중과 소통하며 얻게 된 교훈이 있나?

전문가 집단의 더 다양한 대표성이 필요하다. 처음 독립 과학자문단에 합류했을 때, 언론에 나오는 공중보건학자 대부분이 백인 남성이었다. 코로나19 방역을 담당하는 여성 과학자들이 미디어에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를 비판하자 자격이 없다는 비난 메일을 많이 받았다. 백인 남성 교수들에겐 유사한 비판이 없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내 딸이 당신 인터뷰를 보고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한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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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런던·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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