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마멋 교수가 9월30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시사IN〉 취재에 응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2000년 기사 작위를 받은 마이클 마멋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는 세계적인 건강 불평등 학자다. 세계의사협회장을 지냈다. 1945년생인 그는 평생을 사회적 여건이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왜 기껏 환자를 치료하고서는 그가 병을 얻었던 환경으로 돌려보내는가?’ 2015년 저서 〈건강 격차〉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건강해지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의사가 되었지만, 의사의 처방과 치료는 일시적 해법일 뿐이었다. 병이 아니라 병을 일으킨 여건을 고치고 싶어서 공중보건 연구로 방향을 돌렸다.

코로나19 대응은 역학인 동시에 사회학이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관리하는 것만큼, 감염병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역학자로서 마멋 교수의 연구 주제는 주로 후자를 향해 있다. 2005년부터 3년간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 간, 국가 내 건강 격차를 처음 조사했다. 건강 불평등을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로 끌어올린 연구였다. 그 후 영국 맨체스터, 코번트리 등 지방 도시들은 ‘마멋 시티’를 선언했다. 이 도시들은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지방정부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팬데믹 기간에 영국의 건강 불평등을 다룬 마멋 교수의 보고서 ‘빌드 백 페어러(Build Back Fairer)’는 40여 년간 골몰해온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더 공정하게 재건하자는 의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후보 시절 슬로건 ‘빌드 백 베터(Build Back Better)’를 차용했다. 마멋 교수는 “팬데믹은 사회의 근본적인 불평등을 폭로하고 증폭시켰다. 우리는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자문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9월30일 런던 블룸즈버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에게 영국 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며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물었다. 딱 일주일 전,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부자감세’를 골자로 한 감세 정책을 내놓으며 세계 금융시장이 들썩이고 있었다. 마멋 교수는 “새 정부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란 많은 증거가 있었지만, 그들의 첫 번째 행보는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건강 불평등을 다방면으로 조사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공중보건학자로서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백신접종을 늘리는 방법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주로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과학적 조언은 필요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매우 빠르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12월 우리 팀이 ‘빌드 백 페어러’ 보고서에서 보여준 것은 팬데믹의 또 다른 현실이다. 코로나19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빈곤한 지역에서, 대면 업무를 하는 필수 업종에서, 아프리카계·아시아계·그 외 소수인종에서 위험이 훨씬 높았다. 영국 방역 당국에 전달된 과학적 조언에 이러한 불평등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왜 특정 인종에게 가혹했나?

코로나19 사망률의 인종 불평등은 부분적으로 주거 여건과 관련이 있었다. 바이러스 확산에 취약한 과밀 주거지역에 사는 경우가 많고, 필수 노동자로 불리는 ‘최전방’ 직군에서 소수인종의 비율이 높았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특정 인종 집단이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는가?’ 팬데믹은 영국 사회의 근본적인 불평등을 폭로하고 증폭시켰다. 우리는 구조적인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의 배달 노동자들. 대면 업무를 하는 필수 업종에서 코로나19 위험이 훨씬 높았다. ⓒ시사IN 신선영

영국은 코로나19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공중보건 위기 대응체계가 있었음에도 피해가 컸던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영국이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인 2020년 2월, 우리 팀은 영국의 건강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마멋 리뷰:10년 후’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 지역일수록 사망률이 높아지고 기대수명은 짧아졌다. 지난 10년간 영국의 건강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1차 유행이 시작되자 영국은 유럽에서도 매우 높은 초과사망률을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심화된 건강 불평등과 팬데믹 기간의 높은 사망률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나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건강을 우선시하지 않는 정치와 심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 공공서비스 지출 감소가 그것이다. 2010년 선출된 정부(보수당)의 우선순위는 긴축정책이었다. 긴축은 퇴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지방정부별로 1인당 지출액을 살펴보면, 해당 지역이 빈곤할수록 감소 폭이 컸다. 공중보건과 교육예산 등도 삭감되었다. 그것이 코로나19 직전 우리가 서 있던 곳이다. 팬데믹 이전의 일상은 그다지 건강하지 않았다. 이 모든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자는 의미로 보고서 제목을 ‘빌드 백 페어러’라고 붙였다.

왜 ‘더 낫게’가 아니라 ‘더 공정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나?

만약 우리가 ‘더 낫게 재건하자’고 말하면서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마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점점 더 많은 임금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인을 돌보는 이들이 임금을 충분히 받고 있는가? 영국 사회는 팬데믹 이후 연료 빈곤, 식량 빈곤, 생활비 위기 등 여러 사회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다. 더 공정하게 재건한다는 것은 생활비 위기가 빈곤 수준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치고, 빈자들이 부자들보다 훨씬 더 고통받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건강 불평등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해왔다. 팬데믹 이후 깊어진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건강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인식하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9월23일 영국 정부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영국 경제는 하루 만에 매우 신뢰할 수 없는 경제로 바뀌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나는 팬데믹 이후 우리가 ‘더 공정하게 재건하기’를 요구했지만, 그 전망은 밝지 않다. 반면 노르웨이 정부에서 ‘빌드 백 페어러’에 기반해 내 조언을 얻을 수 있는지 물어왔다. 노르웨이에서도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우리 팀은 노르웨이 정부가 더 나은 건강 형평성을 달성할 수 있도록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 런던 거리에 흔히 보이는 노숙인들. 마멋 교수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주목한다. ⓒ시사IN 신선영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건강 불평등은 의료시스템을 통해서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11년 영국의사협회(BMA) 회장을 맡았다. 그때 20개국 의사협회에서 온 의사들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해 의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회의를 진행했다. 이틀간의 회의였다. 첫날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교회 계단에 침낭을 펴고 자는 사람들을 보았다. 처음 머릿속에 든 생각은 정말 바보 같았다. ‘밤 9시15분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지?’ 집이 있다면 가족들과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고 TV를 보는 시간이겠지만 돈과 집이 없는 노숙인들은 달리 뭘 할 수 있겠나. 다음 날 회의에서 의사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우리 책임의 일부인가?” “우리가 이들의 병을 치료하고, 다시 길에서 잠들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합리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았다. 단순히 흡연하지 말고 운동을 많이 하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흡연과 건강에 해로운 식단, 신체 활동 부족 상태를 만드는 사회적 결정요인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영국 사회가 팬데믹으로부터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누가 사회를 움직이고 있었는가. 그들은 배달 노동자, 운전기사, 슈퍼마켓 직원, 청소 노동자, 보건의료 노동자, 사회복지사였지 은행가나 투자자가 아니었다. 간병인과 간호사들이 일을 멈춘다고 상상해보라. 그런데 영국 사회는 그들을 소중히 여겼나? 임금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국 요양보호사의 60%는 생활임금보다 낮게 받으며 노인을 돌본다. 당신이 직접 다리에 붕대를 갈아 끼우고 주사를 놓을 것인가? 그것은 돌봄 노동자가 하는 일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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