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11일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EPA

론스타는 한국에서 철수한 직후인 2012년 5월, 한국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보냈다. 한국에 ISDS를 제기하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한국 정부는 론스타의 불만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돈을 줄 생각도 없었다. 이렇게 ‘돈을 내놓으라’는 론스타와 ‘못 주겠다’는 한국 정부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6개월 뒤(2012년 11월), 론스타가 손해배상금(현재 환율로 6조2000억원) 청구까지 포함한 ‘중재신청서’를 발송하면서 한국과 론스타는 본격적으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에 들어갔다.

대다수 언론들은 이 사건을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국제 법정에 제소했다’라는 식으로 쓴다. 분쟁 상태인 국내 기업들이 민사 법정에 제소해서 시비를 가리는 경우(소송)에 ISDS를 비긴 것이다. 완전히 틀린 서술이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킬 ISDS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시민들에게 노출시켜왔다. 한국-론스타 분쟁 같은 사건을 ‘소송’으로 해결해주는 ‘국제 법정’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들이 국제 법정으로 부르는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같은 조직 역시 법정과는 어떤 상관도 없다. ICSID는 ‘분쟁 당사자들이 다투는 장소 제공’ ‘증언 기록’ ‘증거 보관’ ‘관계자들에 대한 연락’ 등을 수행하고 그 대가를 받는 ‘행정서비스 제공 기관’이다. 무엇보다 ISDS는 소송이 아니라 ‘중재’의 일종이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분쟁을 겪는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상대방을 힘이나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고, 이런 경우는 실제로 흔하다. 그러나 법치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는 분쟁해결 방법은 ‘중립적인 제3자’를 골라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

이런 분쟁해결 방법들 가운데 시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소송(litigation)’이다. 국가를 대리하는 판사(‘중립적인 제3자’)가 법정에서 분쟁 당사자들의 시시비비를 듣고 법률에 따라 ‘판결’한다. 판결엔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 거부하는 경우, 국가기관이 나서서 패소자의 재산을 압류해서라도 판결의 내용을 관철할 수 있다. 소송은 ‘국가권력의 작용’이고, 그 권력이 미치는 범위 내의 거주자는 판결에 승복하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이를 ‘판결의 확정력이 강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아래 〈그림〉 참조).

‘중재(arbitration)’는, 소송만큼 익숙하진 않지만, 널리 사용되는 분쟁해결 방법 중 하나다. ‘중립적인 제3자’가 소송에선 판사인 반면 중재에선 ‘중재인’이다. 판사는 국가의 대리인이지만, 중재에서는 분쟁 당사자들이 합의를 통해 다른 민간인을 중재인으로 선정한다. 중재인이 하는 일은 소송에서의 판사와 비슷하다. 분쟁 당사자들의 의견과 증언, 증거 등을 심리한 뒤 ‘판정(award)’을 내린다. 판정의 확정력은 판결만큼 강하다. 대다수 국가는 법률로 ‘(중재)판정은 법원의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해놓는다. 중재에서 패배한 쪽이 판정을 거부하면 국가기관이 나서서 강제 집행한다. 더욱이 소송에선 항소가 가능하지만 중재는 단심제다. 단 한 번의 판정으로 분쟁을 종결시킨다.

주로 기업들이 분쟁해결 방법으로 소송보다 중재를 선호한다. ‘공적 절차’인 소송은 공개가 원칙인 반면 민간 차원의 ‘사적 절차’인 중재는 ‘비밀 엄수’가 기본이다. 기업들은 서로 계약을 체결할 때 ‘분쟁이 발생하면 소송이 아니라 중재로 해결한다’는 문구를 계약서에 넣어 둔다. 이를 ‘중재합의’라고 부른다. 중재합의가 성립되어 있는 경우, 한쪽이 ‘분쟁을 중재로 해결하자’라고 요구하면 다른 쪽은 거부할 수 없다.

ISDS는 ‘소송’이 아니라 ‘중재’

ISDS는 중재의 일종이다. ISDS의 분쟁 당사자는 외국인 투자자와 피투자국이다. 예컨대 A라는 국가의 투자자 B씨가 C국에 투자해 공장을 세웠다고 치자. C국이 자국민의 기업엔 5%의 법인세율을 적용하지만 B씨 공장엔 그 두 배인 10%의 세율을 부과(‘내국민 대우’ 위반)한다거나 혹은 B씨에게 부당한 범죄혐의를 뒤집어씌워 공장 건물을 압수(수용)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B씨’와 ‘피투자국인 C국 정부’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B씨가 C국에 ISDS를 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ISDS를 제기하려면, 사전에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조약이 A국과 C국 사이에 체결되어 있어야 한다. 조약에는 ‘상대국 정부의 개인(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때 그가 부당한 손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조항들이 들어가 있다. 이와 함께 ‘만약 피투자국 정부가 상대국 투자자를 불리하게 대우하면, 그 투자자는 해당 정부에 대해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는 문구도 포함된다. A국과 C국이 투자협정을 맺고 있다면 비로소 B씨가 C국에 ‘A국-C국 투자협정을 위반’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ISDS). 일반적 중재와 마찬가지로 일단 B씨가 요청하면 C국은 무조건 중재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른 나라(D국) 투자자는 C국에서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C국-D국 투자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는 한 C국에 ISDS를 제기할 수 없다.

일반적인 중재와 마찬가지로, ISDS에서도 분쟁 당사자 양측은 합의를 통해 ‘중립적인 제3자’를 중재인으로 선정한다(중재판정부). 판정이 내려지면 승복해야 한다. 역시 단심제다. ISDS의 확정력은 1958년 체결된 국제조약인 뉴욕 협약으로 보장된다. 한국 등 뉴욕 협약 가입국은 ‘국제중재의 판정이 우리나라 내에서 집행될 수 있도록 보장한다’고 약속한다.

‘외국인 투자자’인 론스타는 ‘피투자국’인 한국 정부가 2011년 발효된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협정(BIT)’에 명기된 ‘투자자 보호’ 조항들을 위반한 탓에 자신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이 ‘한국-론스타 ISDS’는 지난 8월31일 판정문이 나오기까지 거의 10여 년이 걸렸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중재판정부에서 어떤 논리와 증언, 증거들로 다퉜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중재의 특성인 비공개 관습에 편승하여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심리 과정을 비밀에 부치자고 합의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가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중재의향서, 한국 정부가 간헐적으로 내온 보도자료,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얼개를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양 당사자 간의 쟁점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론스타 펀드들의 손해배상 청구인 자격

‘론스타 ISDS’에서 한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서류상 청구인’은 미국 텍사스주에 소재한 론스타가 아니다. 론스타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등록한 페이퍼 컴퍼니 법인들 8개다. 그중 하나는 외환은행 지분 51.02%의 ‘서류상 소유자’였던 ‘LSF-KEB Holdings SCA’(이하 SCA). 다른 7개의 법인은 스타타워, 극동건설 등에 투자하거나 외환은행의 지분을 추가로(14.15%) 매입한 바 있다.

당초 한국 정부는 SCA 등의 페이퍼 컴퍼니가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협정(이하 한-벨·룩 BIT)을 근거로 ISDS를 제기한 것 자체를 문제 삼았다. 한국이 한-벨·룩 BIT에서 약속한 것은 ‘한국에 들어온 벨기에·룩셈부르크 국적의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환은행이나 스타타워에 투자하고 이로 인한 수익과 손해를 감당했던 실질적 투자 주체는 미국의 론스타다. 그렇다면 론스타는 한-벨·룩 BIT가 아니라 한·미 FTA에 근거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했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 국적 투자자인 론스타가 한-벨·룩 BIT에 의거해서 제기한 이 ISDS가 원천 무효라며, 중재절차 자체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벨기에·룩셈부르크(이하 벨·룩)의 법인들엔 일하는 사람도 자산(건물, 기계설비 등)도 없다. 론스타가 법인의 이름과 은행 계정만 이 나라들에 만들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벨·룩은 유럽의 유명한 조세도피처다. 이 나라들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돈에 대해 거의 과세하지 않는다. 론스타 입장에선 미국에서 곧바로 한국에 투자했다가 수익을 들여오는 것보다 세계 도처의 조세도피처에 만들어놓은 법인들로 자금을 흘리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론스타 ISDS’의 서류상 청구인인 벨·룩의 법인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돈을 경유시키는 ‘도관’에 불과하며, 실질적 투자 주체는 미국의 론스타라고 한국 정부가 주장해온 이유다.

이에 대해 론스타 측은 “(해당 법인들은) 벨기에에 주소가 있고, 그곳에서 실질적인 투자관리 활동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한-벨·룩 협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지위”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한-벨·룩 BIT는 투자자를 “(한국과 벨·룩의) 법령에 따라 설립 또는 조직된 모든 실체”로 규정하고 있다. 탈세를 위해 만들어진 유령 법인이라고 해도 벨·룩에서 합법적으로 설립되었다면 한-벨·룩 BIT의 보호를 받으며 ISDS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쟁점에서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 한국 정부는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지연해서 론스타에 손해를 입혔는가

론스타는 2007년에 HSBC(5조9376억원), 2010년엔 하나금융지주(4조6888억원)와 외환은행 경영권 매매계약을 체결했으나 금융위원회가 매각을 승인해주지 않았다. 결국 하나금융에 3조9157억원으로 팔 수밖에 없었으니 큰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론스타 측은 ISDS 중재의향서에 한국 정부가 지지율 하락을 두려워해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썼다. 또한 이런 행위 뒤엔 론스타가 외국인 투자자라는 편견과 악의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론스타가 한국인 투자자였다면) 한국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여론이나 정치적 이유로 투자자들을 불확실한 상태로 장기간 방치할 수 있었을까?” 한국인 투자자가 외환은행의 대주주였다면 바로 팔 수 있었을 텐데, 론스타는 벨기에 국적의 투자자라는 이유로 매각을 승인받지 못했다는 논리다. KBS 보도(2020년 1월15일)에 따르면, 론스타는 중재판정부에 낸 ‘추가 서면’에서 “(한국 금융 당국이) 법의 지배에 의하기보다 정치적 유권자들을 만족시키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외환은행 매각을 부당하게 지연시켰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반박 서면’에서 “(매각 승인 지연은) 론스타 자신의 행위 또는 론스타가 책임져야 할 론스타 직원들의 행위로부터 직접 기인한 것”이라며 “정부는 항상 성실하게 법의 지시를 따랐다”라고 주장했다. 매각 지연이 한국 정부의 탓인지 론스타가 금융 범죄를 저질러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론스타는 어떻게 떼돈을 벌었나’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부당하게 과세했는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스타타워 모습. ⓒBloomberg News

한국 국세청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대금의 10%인 3915억원을 양도소득세로 원천징수했다. 론스타가 서울 역삼동의 스타타워 빌딩을 샀다가 팔아서 올린 차익(2500억여 원)에 대해서도 1040억원을 세금으로 징수했다. 이 밖의 투자수익들에 대한 과세까지 합치면 8500억원 정도라고 한다. 론스타는 이런 과세들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내지 않아야 할 돈을 한국 국세청이 강제로 받아갔으니 약탈(점잖은 표현으로는 ‘수용’)과 다를 바 없으며 한-벨·룩 BIT로 약속된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론스타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나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투자전략을 설계했는데, 이런 노력이 한국 국세청에 깡그리 무시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스타타워 빌딩 투자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스타홀딩스라는 법인을 만들었다. 스타홀딩스는 다시 한국에 자회사 법인을 설립했다. 이 법인은 2001년에 스타타워 건물을 샀다. 스타타워 빌딩의 서류상 주인은 론스타가 아니라 벨기에 스타홀딩스의 한국 자회사였다. 론스타는 2004년에 이 한국 내 자회사의 주식을 ‘싱가포르 투자청(GIC)’에 팔았다. 이로써 GIC는 스타타워를 소유하게 되었다.

론스타와 GIC는 스타타워라는 ‘부동산’을 사고팔았다. 그런데 서류상으로는 스타홀딩스란 벨기에 법인의 한국 자회사 주식이 거래되었을 뿐이다. 론스타는 왜 이런 복잡한 방법을 사용했을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과 벨기에 사이 ‘조세조약’에 따르면, 벨기에 투자자가 한국에 와서 주식거래로 번 소득(주식양도소득)에 대해서는 벨기에 정부가 과세하도록 되어 있다. 벨기에는 조세도피처다. 론스타가 스타타워에서 얻은 차익에 대한 세금을 한국이 아니라 벨기에 정부에 납부하고 싶어 한 이유다.

한국 국세청은 벨기에의 스타홀딩스를 ‘도관회사’라고 정확하게 봤다. 실제로 스타타워에 투자하고 수익을 얻는 업체는 미국의 론스타다. 그러므로 론스타가 스타타워 거래로 얻은 소득은 한국-벨기에 조세조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론스타는 국세청을 대상으로 소송까지 냈다. 그러나 대법원 역시 스타타워 거래가 외형상으론 주식거래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부동산 거래인 만큼 한국에 과세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론스타는 중재판정부에 낸 서면에서 국세청을 가리켜 “부패한 정치적 맹견”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한국-벨기에 조세조약을 근거로 “한국 기업 지분매각으로 얻은 수익에 대해 한국에서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으며, 벨기에 정부만이 (론스타의 펀드들에) 독점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반박 서면에서 “론스타 산하의 펀드들이 도관회사인 만큼 외환은행 등 한국 내 자산의 실질적 소유자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했다. 벨기에에 등록된 법인들이 한국에 보유한 자산의 실질적 소유자가 미국의 론스타 본사인 만큼 그 소득에 대한 과세 역시 한국-벨기에 조세조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를 다시 펼친 셈이다.

기자명 이종태 선임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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