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에서 한 일은 주로 은행과 부동산을 싼값에 샀다가 비싼 값으로 되파는 것이었다. 10여 년 동안 수조 원 규모의 순수익을 올린 뒤인 2012년 초 한국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뭔가 아쉬웠나 보다. 철수 직후,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개입 때문에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한국을 대상으로 46억7950만 달러(약 6조3000억원) 규모의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를 제기한다.

론스타가 한국에서 어떻게 큰돈을 벌었고, 왜 ISDS라는 수단으로 다시 한 번 더 큰 수익을 노리게 되었는지, ‘외환은행 사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및 매각 일지

1997년 외환위기 발생. 독일 코메르츠방크, 외환은행 경영권 인수 

2002년 말 론스타,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에게 인수 의사 타진 

2003년 7월15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이강원, 변양호, 김석동 등이 참석한 관계기관회의 개최 

2003년 8월 론스타, 외환은행 경영권 인수 

2006년 1월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추진 발표 

2007년 9월 HSBC, 론스타 외환은행 지분 51% 인수 합의 발표 

2008년 7월 금융위원회, 외환은행 매각심사 착수 계획 발표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론스타-HSBC 계약 파기 

2010년 11월 하나금융지주,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매계약 체결 

2011년 3월 대법원,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 유죄로 인정 

2012년 1월 금융위,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2012년 11월 론스타,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ISDS 제기 

2015년 5월 한국 정부-론스타 첫 심리 

2022년 6월29일 중재판정부, 중재 절차 종료

2022년 8월31일 중재판정부, 론스타의 청구액 6조원 중 2900억원 배상 판정

 

흔들리는 외환은행 인수 나선 론스타

1997년 가을의 외환위기 발발 직후 외환은행은 흔들리고 있었다. 외환은행이 대출했던 기업들이 지급불능 상황에 빠져 자금을 회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금이 필요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타난 금융기관이 독일의 코메르츠방크였다.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지분 32.5%를 매입(그 돈이 외환은행에 수혈됨)하며 경영권을 잡았다. 코메르츠방크는 안정적 경영을 위해 한국 정부(수출입은행) 역시 그만큼의 돈(32.5%)을 외환은행에 투자하도록 요청했다. 외환은행은 양대 대주주(코메르츠방크+수출입은행)의 조력으로 이럭저럭 위기를 극복해나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000년 들어 현대전자(지금의 SK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고 만다. 외환은행이 돌려받기 어렵게 된 돈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코메르츠방크는 손을 들었다. 이런 와중이던 2002년 말,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경영권 인수 의사를 전달받게 된다.

은행법상 금융기관이라면 그 국적이 한국이든 해외든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외 사모펀드의 한국 시중은행 인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융-산업 분리(금산분리) 원칙’이 법제화되어 있었다. 언제나 돈에 목마른 ‘비금융기업(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게 되면 제멋대로 자금을 빼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론스타는 한국의 은행을 ‘매입할 자격’ 자체가 없었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매입(해당 기업은 사모펀드의 자회사로 편입)한 뒤 그 가치를 올려 되파는 업종이다. 비금융기업들을 상당수 자회사로 갖고 있을 터이므로 론스타는 산업자본일 가능성이 컸다(당시 은행법으로는 계열사들의 자본총액을 모두 합친 금액의 25% 이상이 비금융기업 몫이거나, 비금융기업들의 자산이 2조원 이상이면 산업자본으로 분류했다). 실제로 몇 년 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란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론스타의 자회사 중 하나인 일본의 골프장 관리업체 PGM의 자산 규모만 4조원에 가까웠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들려는 집단이 있었다. 외환은행의 최고 경영진, 당시 한국의 경제 사령탑인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관료들, 론스타의 법률자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이다. 그들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어떻게든 인수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동기가 외환은행 위기를 빨리 해결하려는 나름의 충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큰 거래’를 성립시키면 떨어지는 ‘떡고물’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인수 장애물 치우기’ 나선 관계기관회의

2003년 7월15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외환은행 인수 건과 관련된 ‘관계기관회의’가 열렸다. 이강원 외환은행장,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여기서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증자가 없는(=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않는) 경우, 자기자본비율(BIS)이 5.42%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양호 국장은 수출입은행(당시 외환은행 대주주)이 외환은행 지분을 론스타에 넘기도록 “우리(재정경제부)가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동 국장은 ‘론스타의 금융기관 지위 인정’ ‘은행법 예외 조항’ 등 법률문제를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변 국장은 “각자 라인별로 최선을 다하자”라고 다짐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연합뉴스

해외 사모펀드이자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한 ‘묘안’을 “라인별로” 짜내고 합의한 자리였다. 그들에게 다행스럽게도,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를 금지한 은행법엔 ‘예외 조항’이 딸려 있었다. 만약 해당 은행이 곧이어 망할 ‘부실 금융기관’이라면, 산업자본도 인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부실 금융기관은 ‘BIS 8% 이하’인 은행을 뜻한다.

BIS는 ‘은행이 경영상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자기 소유의 돈(자기자본)’을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는 금액(예상손실액)’으로 나눈 비율이다. 당시 국제금융계에서는 예상손실액이 1000억원인 경우, 해당 은행의 자기자본이 80억원(1000억원의 8%) 이상이면 지속적 영업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통용되고 있었다(‘BIS 8%’ 규범). 예상손실액은 문자 그대로 ‘예측’에 불과하고 모든 차입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갚지 못하는 사태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자기자본 80억원이면 1000억원의 예상손실액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BIS는 마음먹기에 따라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는 수치다. 은행의 BIS를 낮추고 싶다면, 그 은행이 연말에 받기로 되어 있는, 예컨대 500억원이 상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과감하게 ‘예측’해버리면 된다. 이렇게 예상손실액이 커지면 BIS가 떨어진다(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관계기관’들 입장에서 ‘은행법 예외 조항’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실현할 수 있는 보루였다. 이제 외환은행의 BIS만 8% 밑으로 떨어지면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외환은행의 BIS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외환은행의 2003년 말 BIS가 최악의 경우에도 9.14%일 것으로 봤다. 그런데 관계기관회의로부터 일주일 사이에 상황이 180° 바뀐다. 외환은행 측이 자사의 연말 BIS가 6.16%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팩스를 금감원에 보낸 것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금감원은 즉각 외환은행을 ‘잠재적 부실은행’으로 규정한다. 이로써 산업자본 ‘신분’으로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얻게 된 론스타는 2003년 8월, 이 은행의 경영권(지분 51.02%)을 1조3834억원에 매입한다.

당시 론스타의 법률자문사 김앤장의 한덕수 고문은 2022년 8월 현재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를 맡고 있다. 추경호 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계기관회의가 열린 2003년 7월,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으로 론스타의 인수에 관여한 인물이다.

외환은행 경영권을 매입한 주체가 ‘론스타’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서류상 매입자는 ‘LSF-KEB Holdings SCA’로, 론스타가 조세도피처 벨기에에 등록한 페이퍼 컴퍼니다.

외환은행 인수 이듬해(2004년) 상반기에 론스타는 겹경사를 맞는다. 첫째, 외환카드를 외환은행에 ‘굉장히 저렴한 비용’으로 합병시켰다. 둘째, 외환은행 주가가 폭등하면서 론스타가 보유한 51.02%의 가치 역시 1조원 이상 치솟았다. 수익률 100%에 가까운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장기적으론 악재였다. 외환카드 사례부터 보자.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연합뉴스

‘주가조작’ 감행 뒤 “점점 재미있어진다”

론스타는 당초부터 외환카드를 합병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지분(43%)을 경영권 완전 확보가 가능한 수준으로 늘려야 했다. 외환카드 주식을 대폭 매입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 있었다. 외환카드의 2대 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올림푸스캐피털(25%)이다. 론스타가 합병 의사를 비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싼 대가를 요구할 터였다. 론스타는 재무자문사 씨티그룹 등과 함께 깊이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직후인 2003년 11월 중순 열린 이사회에서 론스타 측은 드디어 외환카드를 ‘싸게’ 합병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게 된다. ‘주가조작’이다.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감자(減資)한 뒤 합병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면 된다.

‘감자’는, 문자 그대로 ‘장부상 자본금’을 낮춘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의 수도 일정 비율로 줄인다. ‘50% 감자’라면 100주를 보유한 주주의 주식 수가 50주로 떨어진다. 누구도 이런 주식을 사려고 하지 않을 터이니 주가가 떨어진다. 론스타는 폭락한 주식을 주워 담으면 된다. 론스타 측은 2003년 11월21일 ‘감자 검토 발표 방침’이란 보도자료를 뿌린다. 11월20일 5400원이던 외환카드 주가가 11월26일엔 2550원으로 절반 넘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 진행 중이던 당시 외환은행의 론스타 측 이사인 마이클 톰슨 변호사는 씨티그룹 담당자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쓴다. “점점 재미있어진다.”

론스타는 이런 ‘주가조작’에 힘입어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지분을 68.6%까지 올리면서 합병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부당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위계를 사용한” 이 명백한 범죄행위는 2년 뒤 드러나 론스타를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외환은행 주가의 폭등도 화근이 되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 획득 과정에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이다. 2004~2005년 즈음엔 국회에서 론스타를 성토하게 된다. 감사원까지 나섰다. 2006년 6월, 감사원은 “당시 경영진이 외환은행 매각을 위해 부실을 과장했고,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관료들 역시 ‘은행법의 예외 조항’이란 법규를 무리하게 적용해서 헐값 매각을 지원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관계기관회의 참석자들이 로비를 받은 정황도 드러난다. 이강원 행장은 외환은행 매각 뒤 고문료와 성과급 명목으로 15억원을 받았다. 변양호 국장 역시 그가 2005년 설립하는 보고펀드에 400억원까지 투자받기로 외환은행과 약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 행장, 변 국장 등을 공모와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한다.

이런 와중인 2006년 1월,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4개월 뒤인 같은 해 5월에는 국민은행과 6조9000억원 규모의 매매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론스타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6개월 뒤인 2006년 11월, 계약이 파기된다. 계약서에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불법 사실이 없어야 매각대금 지급’ 같은, 론스타에 불리한 문구들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다음 해인 2007년 9월, 론스타는 영국계 글로벌 금융기관인 HSBC와 5조9000억원 규모의 매매계약을 다시 체결한다. 은행 경영권의 교체는 대다수 국가에서 심각한 규제 사안으로, 금융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회적 신용 흐름의 축인 은행이 엉뚱한 자들에게 장악되는 경우 사회적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렇다. 론스타는 금융위원회에 HSBC에 대한 매각 승인을 요청한다. 그러나 금융 당국으로서는 섣불리 매각을 승인할 수 없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및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외환은행 인수가 불법이었다면,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정당한 주인’이 아니다. 또한 외환카드 주가조작이 입증된다면, 론스타는 은행법에 따라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즉각 잃게 될 것이었다. 정당한 주인(대주주)이 아니라면 외환은행을 팔 자격도 없다. 금융위가 섣불리 매각을 승인했다면 ‘범죄자의 해외 도피를 도와줬다’라는 비난에 휩싸였을 터이다.

이런 이유로 매각 승인이 지체되고 있던 2008년 가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다. 글로벌 차원에서 수많은 은행들이 매물로 나왔다. HSBC는 론스타에 매매가격을 내리자고 제안한다. 론스타가 거부하면서 계약은 파기된다.

2015년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 붙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안내문. ⓒ연합뉴스

금융 범죄 인정 뒤에도 매각 승인한 당국

2년여 뒤 다시 론스타에 ‘한국 탈출’ 기회가 온다. 2010년 10월, 대법원이 변양호씨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것이다.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지만,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결하기 위한 직무상 신념에 따른 정책 선택과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배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변씨가 무죄라면 이강원씨가 그와 공모한 혐의 역시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다음 달인 2010년 11월, 론스타는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지분 51.02%를 4조6888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매각 승인도 다시 신청한다.

그리고 1년여가 흘렀다. 당초 금융계와 언론 등은 2011년 3월16일에 론스타-하나 매각 계약에 대한 금융위원회 승인이 나올 것으로 봤다. 그러나 엿새 전인 3월10일, 대법원이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를 유죄로 최종 인정한다. 론스타가 ‘금융 범죄자’라는 것이 공식 확인되었다. 외환은행 매각 자격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터무니없이 관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2012년 1월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한 것이다. 당시는 론스타가 일본 PGM 등 비금융기업을 보유한 산업자본이란 사실이 입증된 상태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체가 불법이란 주장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해당 은행법 조항까지 새로 해석하며 론스타를 ‘변호’해준다. 금산분리 원칙의 취지는 ‘은행이 국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므로 론스타의 해외 자산은 산업자본 여부와 상관없는 문제라는 논리였다.

론스타는 2012년 초, 1조3834억원에 매입한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으로 팔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 밖에도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였던 9년 동안 2조9027억원을 배당금으로 받았다. 스타타워, 극동건설 등에 대한 투자까지 고려하면 한국에서 대체로 7조~8조원 상당의 순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기자명 이종태 선임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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