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론스타 의결권 박탈 촉구 및 하나금융 배짱대출 규탄 촛불한마당’이 열리고 있다.ⓒ외환은행 제공

‘누가 외환은행 가격을 후려쳤나? 한국(정부)인가, 하나금융지주인가.’ 하나금융은 2010년 11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경영권(지분 51.02%)을 4조6888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1년1개월여 뒤인 2012년 초,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실제로 매입한 금액은 3조9157억원이었다. 당초보다 훨씬 싸게 샀다. 이후 10여 년 동안 ‘싸게 산 이유(와 그 원인 제공자)’를 둘러싸고 두 개의 국제중재가 진행된다. 하나는 최근 마무리된 ‘론스타-한국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다른 하나는 ICC(국제상업회의소) 차원에서 이뤄진 ‘론스타-하나금융 중재’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당초보다 싼 가격에 넘긴 결정적 이유로 금융 당국(금융위원회)의 ‘매각 승인 지연’을 꼽는다. 그런데 매각 승인 지연의 근본적 원인 제공자는 론스타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직후인 2003년 11월 외환카드를 합병하기 위해 주가조작을 했다. 헛소문으로 외환카드 주가를 폭락시켜 2004년 2월 적은 비용으로 이 회사를 삼켰다. 당시 외환카드의 2대 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올림푸스캐피털은 보유 지분(25%)을 론스타 측에 헐값으로 매각했다. 이 범죄행위는 2년여 뒤인 2006년에 덜미가 잡힌다.

론스타는 이 재판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2심에서는 무죄로 나왔다. 론스타와 하나금융이 첫 매매계약을 체결한 직후인 2011년 초엔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아 있었다. 대다수 관계자들은 무죄를 예측했다. 같은 해 3월16일로 예정된 금융위원회 회의에서 외환은행 매각 승인이 떨어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로부터 약 일주일 전인 3월10일, 상황이 뒤집힌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고등법원에 돌려보낸 것이다. 론스타의 금융 범죄가 공식 확인되었다. ‘금융 범죄자가 시중은행의 대주주이며, 보유 주식 매각으로 큰 수익까지 올려서는 안 된다’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금융위는 매각 승인을 보류했다. 2011년 12월, 하나금융과 론스타는 재계약으로 외환은행의 매매가격을 인하한다. 이듬해 초, 금융위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다.

2011년 3월 중순부터 12월의 재계약에 이르는 9개월 동안 금융위-하나은행-론스타 사이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8월31일 나온 ‘론스타-한국 ISDS 판정문’과 2019년 5월의 ‘론스타-하나금융 ICC 중재 판정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ISDS 중재판정부도 인정한 론스타 범죄

ISDS는 외국인 투자자와 피투자 국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다. 외국인 투자자가 입은 손해가 ‘피투자 국가(기관)의 행위’ 때문이라고 의심될 때 ISDS가 제기된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국가의 행위로 큰 손해를 봤다’라며 한국에 46억7950만 달러(약 6조3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론스타는 ‘한국의 부당한 행위들’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러나 ISDS 중재판정부가 인정한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민간기업인 론스타와 하나금융 사이의 거래에 한국 정부가 끼어들어 외환은행 매매가격을 후려쳤는가?’

이 ISDS에서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판결이 나온 이후 9개월 동안 금융위원회(즉, 한국)가 승인 심사를 질질 끌면서 외환은행 매매가격을 깎도록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금융위가 매매가격 인하를 압박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나금융이 자사 이익을 위해 론스타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매매가격을 낮췄을 뿐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은 론스타에 손해배상금을 물어줄 이유가 없다.

판정문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매매 승인의 지연 자체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판정부가 보기에도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은 심각한 범죄였던 것이다. “론스타는 자사가 이른바 ‘먹튀(먹고 튀기)’에 대한 한국 대중과 정치권의 적대감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론스타는 ‘먹튀’를 넘어 심각한 금융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사기 치고 튀기(Cheat and Run)’ 투자자로 비난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판정부는 한국의 잘못(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 금융위의 승인심사 보류에 부적절한 의도(매매가격 인하)가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판정문엔 2011년 당시 한국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론스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금융 당국은 산업자본인 론스타에 시중은행 인수를 허용하면서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렸다. 그 과정에서 고위 관료들이 사익을 취한 정황도 있었다. 론스타의 주가조작까지 공식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론스타가 큰 수익을 ‘먹튀’하도록 허용하면, 금융위원회는 감당할 수 없는 여론과 정치권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금융위가 매매가격이라도 깎으라며 버텼다는 것이 판정부의 판단이다. 판정문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매매가 인하가 이루어질 때까지 승인심사를 지연시키는 ‘기다리고 보자(Wait and See)’ 전략을 취했는데” “이는 정치인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당한 정책적 목적이 아니었다”.

판정부는 하나금융의 움직임에도 주목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매매가격 인하의 실질적 수혜자다. 당초 계약보다 8000억원 가까이 가격을 깎았다. ‘문제의 9개월’ 동안 론스타는 금융위와 직접 접촉하지 못했다. 하나금융이 금융위의 의향을 론스타에 전달하는 사실상의 ‘중개인’ 역할을 맡았다. 론스타는 하나금융 측과 접촉할 때마다 대화 내용을 몰래 녹취해 중재 심리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하나금융이 금융위의 의향(깎아줘야 승인한다)을 거짓으로 꾸며댔거나 과장해서 매매가격을 내렸을 가능성은 없을까? 실제로 론스타는 다른 중재(론스타-하나금융 국제상사중재)에선, 하나은행이 사기와 협박을 통해 매매가를 후려쳤다고 주장한다(이에 대해선 뒤에서 설명한다).

국제상업회의소(ICC) 프랑스 파리 본부 전경. ⓒWikipedia

그러나 ISDS 판정부는 하나금융을 “금융위의 가격인하 의향을 론스타에 기껍게 전달한 사절단(Willing Emissary)”으로 봤다. 하나금융은 ‘불가피한 상황(금융위의 의향)’에 기대어 론스타에 가격인하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었으니 기꺼웠을지도 모른다. 판정부가 “하나금융이 론스타의 곤경에서 이익을 추구한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본 이유다. 그러나 판정부는 하나금융이 론스타만큼이나 매매계약 성사를 원했으며 고작(?) 가격인하를 위해 계약 자체를 흔들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판단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거액의 자금을 이미 조달해놓은 상태로 이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판정부는 하나금융에 대해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긴 했다. 그러나 하나금융의 행위가 당시 상황을 움직인 원동력(moving force)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금융 측은 론스타의 유죄판결과 금융위의 자기 조직 보위라는 상황을 활용했을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결국 ISDS 판정부는 금융위(한국)에 ‘우리 조직 보위’라는 ‘정당하지 않은’ 목표 때문에 민간 거래에 개입해 매매가격을 깎은 책임을 묻기로 한다. 이는 ‘정당한 정책 목표’에 의거해 론스타를 징벌했다면, 한국의 책임을 묻지 않았을 것이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다만 판정부는 매매 승인 보류의 원인 중 하나가 론스타의 주가조작 범죄라는 점도 인정했다. 론스타의 위법행위가 금융위(한국)의 위법행위를 가능하게 만든 만큼, 양측이 손해액의 절반씩을 책임지라는 논리다. 이에 따라 론스타의 손해액으로 산정한 4억3300만 달러의 절반인 2억1650만 달러를 한국이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 론스타, ICC 중재에선 하나금융 책임론

론스타-한국 ISDS 판정문에는 ‘(론스타-하나금융) ICC 중재(Lone Star’s ICC Arbitration against Hana)’라는 문구가 수없이 언급된다. 론스타와 하나금융 사이에서 국제(상사)중재가 진행되었고, 여기 제출된 증언·판정 등이 론스타-한국 ISDS에 주요 증거자료로 채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SDS가 외국인 투자자와 피투자국 간의 중재인 반면, ‘국제상사중재’는 다른 나라 기업들 사이에 발생한 분쟁을 중재로 해결하는 절차다. ICC(국제상업회의소)는 130여 개국의 민간기업들이 회원인 국제 경제단체로, 국제상사중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론스타는 이 ICC 중재에 패배해서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준 바 있다. 론스타에 속아 보유 주식을 헐값 처분한 외환카드의 2대 주주였던 올림푸스캐피털이 2009년 3월 제기한 중재다. 이 중재의 판정부는 2012년 1월, 론스타와 외환은행이 올림푸스캐피털에 64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이로부터 4년여 뒤인 2016년 9월, 이번에는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1조5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국제상사중재를 제기한다. 이 중재에서 론스타는, 하나금융 측이 ‘금융위가 가격인하 없으면 매매 승인도 없다는 각오’라고 론스타를 속이며 협박해서 외환은행 매매가격을 깎았다고 주장했다. 2019년 5월 나온 이 ICC 중재의 판정문에 등장하는 사실관계는 대충 다음과 같다.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에서 유죄로 판결받은 직후인 2011년 3월29일, 김병호 당시 하나금융 부회장은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과 만나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김석동 금융위원장으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금융위원장은 이번 거래를 승인하기 위해 정말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승인하면 대중적·정치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가 이런 난관을 극복하려면 ‘우리’의 지원과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외환은행 거래 당사자인 론스타와 하나금융이다. ‘지원과 도움’은 매매가격 인하를 의미한다.

같은 해 10월28일, 엘리스 쇼트는 김병호에게서 다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전한다.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 측에 계약가격 인하를 재협상하라고 요청했다. … 금융위는 론스타에 너무 많은 수익을 허용했다고 비난받을 것을 두려워한다. 김병호는 (이런 내용을) 김승유 회장이 금융위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김승유는 그레이켄에게 보낸 서신에서 ‘론스타에 징벌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여론의 험악한 분위기를 서술한 뒤 “새로운 계약서”를 언급하며, “(금융위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금융위는 기존 계약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당시 하나금융 측은 론스타에 ‘우리는 지금의 가격대로 거래를 마무리하고 싶은데 금융위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재협상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ICC 중재에서 론스타는 하나금융을 ‘가격인하 주범’으로 몰아갔다. 판정문에 나온 론스타 주장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금융위의 매각 승인이 가격인하에 달려 있다’고 믿도록 론스타를 오도(misled)”했으며 심지어 “매매 승인을 늦추게 한 것이 분명하다”. 론스타가 하나금융의 양두구육(羊頭狗肉)에 속았다는 이야기다. 론스타가 입었다는 손해가 하나금융의 농간 때문이었다면 이후 ISDS 중재에서 한국(금융위)의 책임은 사라지거나 희박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ICC 중재의 판정부는 론스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판정부는 론스타가 하나금융과의 외환은행 거래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판단한다. … 그러나 그것(하나금융이 론스타에 전달한 금융위의 가격인하 압박)은 사기가 아니라 진실이었다. … 하나금융은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거래 계약을 완료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 판정부는 하나금융이 부당한 사태의 입안자(author)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2011년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오른쪽)과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지주 회장.ⓒ연합뉴스

2019년 5월에 마무리된 론스타-하나금융 중재에서는 하나금융이 완승했다. 손해배상금을 주기는커녕 수십억 원 상당의 중재 비용과 경비까지 론스타로부터 받아냈다. 판정문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가격을 내려야 매매를 승인하겠다는 금융위의 주장을 론스타에 전달한 통로(conduit)”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부당한 사태’의 입안자인 ‘진범’은 누구로 귀착되는가? 당연히 한국(금융위)이다. 이 ICC 중재의 판정은 론스타-한국 ISDS에서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되었다.

■ 금융위가 정당한 정책 목표 내걸었다면

론스타는 거의 동시에 두 개의 국제중재를 진행하면서 각각 다른 대상을 겨냥했다. ICC 중재에서는 ‘하나금융이 론스타 손해의 주범’, ISDS에서는 ‘금융위(한국)가 주범’이라는 논리를 구사했다. 하나를 잃어도 다른 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투자 포트폴리오’였다. 론스타로서는 ICC 중재에 패배해 한국(금융위)을 가해자로 확정시켰지만, 이를 ISDS에서의 (부분적) 승리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당시 금융위가 자기 조직의 정치적 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하나금융에 매매가격 인하를 은밀하게 종용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ISDS 판정문에 따르면, 정당한 정책 목표로 볼 수 없는 ‘금융위의 정치적 부담 덜기’를 위해 론스타의 손해를 초래했기에 ‘한국의 잘못’은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금융위는, 당시 시민사회의 요구대로, ‘금융질서 바로 세우기’ 같은 정당한 정책 목표를 내걸고 당당하게 금융 범죄자 론스타에 ‘징벌적 (외환은행 주식) 매각명령’을 내려야 했다. 공익을 위한 정당한 정책수행의 결과가 외국인 투자자의 손해였다면, 한국은 론스타 ISDS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을 터이다. 결국 금융위의 조직 보위 덕분에 론스타는 의혹과 논란으로 가득한 대(對)한국 투자를 손해배상금까지 챙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기자명 이종태 선임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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