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극우정당 당원 등 시민 7000여 명이 방역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AFP PHOTO

며칠 전 학교 강의실, 수업 시작 전에 모여 얘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말했다. “요즘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걱정이야. 다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는 거 아니야? 부분적 록다운(봉쇄) 조치가 취해지면 아마 대학이 제일 처음 문을 닫겠지?” 스위스 대학들은 2020년 초 팬데믹 발발 이후 세 학기(1년6개월) 동안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올가을에서야 다시 대면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확진 사례가 급증하고 중환자 병상이 포화상태라는 보도가 나오니 불안할밖에. 잠자코 대화를 듣던 러시아 출신의 V가 입을 열었다. “지금 온라인 강의가 문제가 아니야. 나는 백신을 두 배로 맞게 생겼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 V가 설명을 한다. “이번 겨울방학에 가족을 만나러 러시아에 갈 계획인데 거기선 내가 스위스에서 맞은 화이자 백신을 인정하지 않아. 스푸트니크 백신을 다시 맞아야 가족과 지낼 수 있어. 그게 끝이 아니야. 방학이 끝나고 다시 스위스에 돌아오면 화이자 부스터샷을 맞아야 해. 스위스에서도 스푸트니크 백신을 인정하지 않거든.”

스위스에서 공부하는 것과 방학 때 러시아에 가서 가족을 만나는 것 둘 다 포기하기 어려울 텐데 그 때문에 남들의 두 배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니, V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그때 옆에서 중국 출신의 S가 말했다. “이번 학기에 입학한 중국인들은 이미 겪은 일이야. 스위스로 오기 전에 중국에서 시노백을 맞았는데 그걸로는 식당이나 미술관 같은 공공시설에 들어갈 수 없더라고. 할 수 없이 다들 스위스에서 인정하는 화이자나 모더나를 다시 접종받았지.” 이어서 콜롬비아 출신의 A가 덧붙였다. “지난여름에 부모님이 콜롬비아에서 스위스까지 힘들게 오셨는데 식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 중국 백신(시노백)을 맞았다는 이유로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언제는 지구촌이니, 세계시민이니, 하지 않았어? 백신을 맞아도 거부당하는데 세계시민은 무슨, 헛소리지.”

A의 말처럼 세계시민(global citizen)은 이제 헛소리가 되었는가. 러시아 백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스푸트니크V는 (비록 러시아 내에서이긴 하나) 세계 최초로 승인이 된 백신이고, 러시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일찍 백신접종 캠페인을 시작했다. 문제는 호환성이다. 스푸트니크V는 유럽연합(EU)에서도, 미국에서도 승인받지 못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러시아에서도 미국이나 EU에서 접종하는 백신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미국, 서유럽, 러시아를 오가는 사업가나 유학생들은 V처럼 백신을 이중 접종하게 생겼다.

그게 싫다면?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 비자가 있어도 유효한 백신 패스가 없다면 활동 반경이 크게 제한된다. 일부 국가에선 PCR 테스트 음성 결과를 받아주지만, 2~3일에 한 번씩 해야 하는 검사 비용은 고스란히 개인 부담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중 접종을 하는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하다. 백신 종류를 섞어서 필요 이상으로 여러 차례 접종하는 경우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건 일회성 보고서들뿐이다. 국경 이동을 위해 건강을 담보로 과(過)접종하는 이 상황을 놓고, 백신 패스의 위력이 비자를 능가하게 됐다고 한다면 과장인가.

‘자각’ ‘신체 자주권’을 중시하는 이념

같은 백신을 쓰는 유럽 국가들 중에도 문제가 있다. 최근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유럽에서 독일어를 쓰는 나라들의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나쁘다는 점이다. 동유럽을 제외한 유럽 주요 국가들을 백신접종률에 따라 순위를 매기면 최하위가 그리스(63%)이고, 그다음이 오스트리아(65%), 스위스(65%), 독일(68%)이다.

이유가 뭘까. 스위스 바젤 대학의 사회학자 올리버 나흐트베이는 현재 독일어권 국가의 백신접종률이 현저히 낮은 이유에 대해 연구 중이다. 그가 11월12일 한 독일 매체〈Der Standard〉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 낮은 접종률의 배경을 살펴보자.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스위스·독일이 공유하는 주된 특징은 연방 시스템이라 중앙정부의 권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원화된 공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발도르프 교육이 대표적이다. 오스트리아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가 내세운 일종의 대안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1919년 독일 남부에 처음 발도르프 학교가 세워졌다. 성적표 없는 교과과정, 전인교육, 자치행정, 한 주제에 대한 집중 수업 등이 특징이다. 발도르프 이념과 학교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여전히 독일어권이 중심이다. 현재 이 학교는 독일에 236개, 스위스에 32개, 오스트리아에 21개 있다. 나흐트베이는 “독일에서 백신접종률이 가장 낮은 지역에 독일 전체 발도르프 학교의 약 4분의 1이 모여 있다”라며, ‘자각’ ‘신체 자주권’ 등을 중시하는 발도르프 이념이 백신접종을 ‘국가에 의한 개인의 자주권 침해’로 보는 시각과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발도르프 교육과 백신 반대 운동을 연결 지은 건 나흐트베이가 처음은 아니다. 2010년대에 미국에서 홍역 발병률이 높아지면서 전문가들이 발도르프 학교 등 특정 커뮤니티의 미접종률을 문제 삼았다. 미국에서 발도르프 학교가 가장 많은 주가 캘리포니아(27개)인데, 주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들의 백신접종률이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는 학교 창립자인 슈타이너의 사상과 떼놓고 볼 수 없다. 슈타이너는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와 자가 치유력을 중시했고, 대체의학을 신봉하며 백신접종에 회의적이었다. 현재 발도르프 학교가 백신에 대한 공식적 견해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창립자의 이념이 백신접종률과 관련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같은 교육 이념과 그 이념이 탄생한 독일어권의 저조한 코로나19 백신접종률도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슈타이너의 인종차별적 성향도 잘 알려져 있다. 흑인은 정신적 능력이 발달했고 백인은 지적 능력이 발달했다거나, 흑인이 있어야 할 곳과 백인이 있어야 할 곳이 다르다고 주장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이라면 극우 인종주의자나 할 법한 발언이다. 흥미롭게도 현재 독일어권 각국에서 접종률이 특히 낮은 지역은 극우정당의 세력이 강한 곳이다. 독일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률이 가장 낮고 감염률이 가장 높은 곳인 동부의 작센주는 극우 정당인 AfD(독일을 위한 대안) 지지율이 가장 강한 곳이기도 하다. 독일의 최근 설문조사(Forsa) 결과 미접종자의 약 50%가 AfD에 투표한다고 응답했다.

유럽의 독일어권 중에서 주목할 만한 곳이 또 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볼차노로, 이탈리아에 속하지만 특이하게도 주민의 약 70%가 독일어를 쓴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주민 상당수가 오스트리아계라서다. 볼차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이기도 한데, 코로나19 백신접종률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최하위다. 이 지역을 장악한 SVP(남티롤국민당)는 지방분권주의와 자치주의를 내세우는 우파 정당이다.

‘유럽의 독일어권에서 특히 접종률이 낮은 배경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공통적인 흐름이 나타난다.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 대안교육과 대체의학에의 의존, 그리고 극우정당의 세력 확장이다. 현재 두드러져 보이는 건 코로나19 음모론이나 백신 반대 운동이지만, 사실 음모론이나 백신 반대 운동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성돼왔다. 〈뉴욕타임스〉는 11월17일 ‘유럽의 코비드 문화 전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베를린의 한 음모론 연구 기관 관계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쓰고 있다. “백신 반대론은, 어떤 면에서는 유럽 정치를 10여 년간 흔들었던 포퓰리즘과 국수주의의 긴 꼬리일지도 모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나날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확진자가 늘고 병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각국의 방역 조치도 격상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북미 등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 중 처음으로 내년 2월부터 백신접종을 의무화했다. 지금까지는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3G 원칙, 즉 ①접종을 받았거나(Geimpft) ②코로나19에 걸렸다 회복했거나(Genesen) ③최근의 테스트 결과가 음성일 경우(Getestet) 백신 패스를 발급함으로써 공공장소 출입을 허용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지막 G에 해당하는 테스트 음성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감염 후 회복을 통해 백신 패스를 발급받을 경우 유효기간이 6개월이기 때문에 이들도 곧 접종을 받아야 한다(백신접종을 통해 발급받는 백신 패스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 3G에서 2G로의 전환이고, 사실상 모든 사람이 접종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미접종자가 35%에 이르는 곳에서 반발이 없을 수 없다. 매일같이 극렬한 시위 소식이 들린다.

스위스는 어떨까. 예상한 대로 국민투표로 결정을 짓는다. 11월28일 실시되는 국민투표 안건 중 하나가 ‘코비드법(Covid-19 Gesetz)’ 존폐 여부다. 코비드법은 2021년 3월 의회에서 개정된 것으로,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이나 코로나19 증명서(백신 패스의 스위스 버전) 사용 등 각종 방역 조치의 법적 근거가 된다. 이 법안은 이미 지난 6월 국민투표에 부쳐져 찬성 60%로 통과됐다. 그런데 반대자들이 다시 서명을 모아 제출함으로써 국민투표를 반복하게 된 것이다. 똑같은 법안이 6개월 안에 두 번이나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일은 스위스 국민투표 역사상 처음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코비드법에 찬성하는 국민이 절반 이상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급격히 변하고 있어서 실제 투표 결과를 알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독일·오스트리아 등 이웃 국가에서 내놓은 새로운 방역 조치가 스위스 국민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늘어나 위험해지면 코비드법에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짐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칫하다 우리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록다운에 들어가거나 백신접종이 의무화될지 모른다. 그걸 막으려면 코비드법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늘 길에서 본 접종 캠페인 위에는 커다란 스티커가 덧붙여져 있었다. ‘나는 절대 백신을 맞지 않겠다’라고 쓰인 스티커다. 우리 동네 기차역 승강장 광고판에는 ‘11월28일 코비드법 투표에서 반대표를!’이라는 홍보물이 붙었다. 투표 결과 반대의견이 더 많을 경우, 코비드법은 의회에서 통과한 지 1주년이 되는 2022년 3월19일을 기준으로 폐지된다. 그때부터 스위스에서 코비드 증명서를 비롯한 방역 조치는 사라진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나날이다.

11월28일 치러진 스위스 코비드법 국민투표 결과, 투표자 62%의 찬성으로 이 법이 통과됐다. 이날 투표율은 65.72%로 이례적으로 높았다. 이로써 코로나19 증명서를 제시해야만 공공장소 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코비드법은 앞으로도 한동안 존속한다. 이날 저녁 스위스 일간 〈NZZ〉의 투표 관련 기사 제목은 “국민이 결정했다: 이제 방역조치 회의론자들은 그들이 사회분열을 원치 않는다고 했던 점을 증명해야 한다”였다. 그동안 코비드법 반대론자들의 주된 논리였던 ‘코로나19 증명서가 접종자와 미접종자로 사회를 이원화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킨다’는 주장이 억지임을, 이제는 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회의론자들이 방역 조치에 협조해야 함을 지적하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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