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에 거주하는 김진경씨(40)가 기고하는 글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국민투표’다. 최근에는 동성 결혼 허용(2021년 9월26일·가결)부터 공공장소 출입 시 코로나19 증명서 제시(11월28일·가결), 동물실험 금지안(2022년 2월13일 예정) 등이 쟁점이었다. 법적으로 5만명 혹은 10만명의 서명을 얻으면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스위스만의 독특한 직접 민주주의 제도다. “축산농가에서 소의 존엄한 삶을 위해 뿔을 제거할지 말지가 안건으로 올라온 적도 있어요.” 안건은 부결되었지만 전국적으로 소뿔과 동물권이 주목받게 된 계기였다. 3개월마다 한 번씩 투표가 이뤄지다 보니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국민청원’이 떠오른다는 말에, 김씨가 “맞아요”라며 격하게 공감했다.

민주주의라는 어렵고 복잡한 주제에 김씨가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13년 전 스페인 출신 남편을 만나 2011년 스위스로 이주했다. 외국인과 결혼해 제3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경험은 차별과 혐오, 다문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스위스는 인구의 25%가 외국인인 다문화 사회였다. 아이들이 부르는 국민동요 속에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멸시가 담겨 있는 사회이면서, 아이 유치원에서 보낸 이메일에 코로나19 확진자의 성별을 감추기 위해 he나 she가 아니라 they를 쓰는 나라,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사회이지만 코로나19 초기 아시아인들이 대중교통 이용을 망설이게 되는 그런 곳. 일상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김진경씨의 이야기는 유럽 사회의 가장 연약하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 섣부른 찬사도, 폄하도 없이 유럽을 바라보자고 그는 말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지난해 11월 책 〈오래된 유럽〉(메디치)을 출간했다. 정치적 올바름, 인종차별 등 다문화 사회의 쟁점을 풀어가는 스위스의 방식을 관찰하며, 해답이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조건 나쁜 거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외우라는 주장은 건설적인 질문을 봉쇄할 수 있어요.” 차별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아니라고 김진경씨는 말한다. 그래서 책 속에는 유독 의문형으로 끝나는 문장이 많다. 인종차별은 과연 피부색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블랙페이스는 거두절미하고 나쁜가? “한국도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고유한 맥락과 전선을 형성하고 있어요. 다양한 이주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루트가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다시 낯설게 보고자 하는 누구든지, 이 책의 독자로서 만나고 싶다고 김진경씨는 덧붙였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도 이미 ‘이야깃거리’는 널려 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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