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1일 러시아의 한 의과대학 해부병리학 실험실에 있는 실험용 쥐. ⓒITAR-TASS

1975년 발간된 철학자 피터 싱어의 저작 〈동물 해방〉은 지금까지도 동물복지와 동물권에 관한 교과서처럼 읽힌다. 이 책의 제2장 ‘연구를 위한 도구’는 특히 동물을 이용한 실험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들(동물 해방론자)은 모든 동물실험에 대한 총체적이며 즉각적인 제거를 요구한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그들이 투표에서 승리를 거둔 경우는 없었다. (…) 그 어떤 주요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모든 동물실험이 일격에 폐지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경우에도 정부가 그처럼 제도를 개혁하는 경우는 없다.”

싱어가 지금 다시 이 책의 개정판을 낸다면, 여기에 이런 문장을 덧붙일지도 모른다. “단, 2022년 초 스위스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모든 동물실험을 전적으로 금지하고자 한 시도는 있었다.” 2월13일 스위스 국민은 동물실험 금지 안건을 놓고 투표한다(투표 결과 반대 79.1%로 부결됐다. 26개 주 전체에서 금지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높았다). 싱어의 책에 나오는 표현처럼 동물실험의 ‘총체적이며 즉각적인 제거’가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이 법안은 스위스 내에서 동물실험을 완전히 금지할 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동물실험을 거친 의약품이나 상품을 수입하는 것도 금지한다. 간접적 동물실험이란 상품에 들어간 부품을 생산하는 과정에 동물실험이 쓰이는 경우를 뜻한다. 이 모든 행위는 동물 학대, 즉 범죄로 간주되며 상황에 따라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 동물실험 금지 안건이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것은 1985년, 1992년, 1993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우선 법안 지지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이 법안을 내놓은 건 가정의학과 의사, 민간요법 치료사 등 11명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다. 주된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동물실험의 실제 효용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발휘한 100가지 작용물질(효소·호르몬·비타민 등) 중 95가지는 인간에게 쓰였을 때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생긴다고 한다. 따라서 동물실험은 완전하지도 않은 연구를 하기 위해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부도덕한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이 충분히 존재한다. 세포배양, 조직배양,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동물실험 금지가 의약 연구를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로운 실험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의약 연구의 ‘퀀텀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도덕적 명분과 일부 과학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현재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가 있을 때마다 정부, 의회, 각 정당과 이익집단 등이 해당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견을 공개한다. 이는 국민들의 투표 시 참고 사항이 된다. 이번 동물실험 금지안의 경우, 스위스 연방정부와 의회, 모든 정당이 반대 의견을 밝혔다. 법안의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방식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이유다. 심지어 스위스 내 주요 동물보호 단체인 ‘스위스 동물보호(STS)’ ‘동물 없는 연구협회’ 등도 이 안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동물보호 단체조차 이 법안에 반대하는 까닭은 뭘까. 실험이 완전히 금지될 경우 그것이 불러올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현실적으로 신약 개발에 동물실험이 쓰이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실험 금지는 곧 스위스에서 더 이상 신약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제약산업이 발달한 스위스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기도 하겠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법안이 동물실험을 거친 의약품의 수입까지 막기 때문에 국내 의약품 공급이 줄어들어 결국 국가 보건의료 시스템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 쓸 수 있는 약을 스위스에서 못 쓰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돈과 정보 등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외국에 나가 치료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치료할 길이 막힌다. 스위스 일간 〈노이에 취리허 차이퉁(NZZ)〉은 이를 놓고 “신약과 최신 치료법은 오직 해외 의료 여행이 가능한 부유층에게만 접근 가능해질 것이고, 이는 이중 계급사회(Zweiklassen-Gesellschaft)를 낳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법안 통과되면 나는 스위스를 떠날 것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건 의료기술의 소비자만이 아니다. 생산자도 나간다. 동물실험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세바스티안 예스버거 취리히 대학 교수가 있다. 그는 알츠하이머 치료법을 연구하는 뇌신경 과학자인데, 매년 생쥐 300~500마리를 이용해 실험을 한다. 예스버거는 스위스 일간 〈타게스안차이거〉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나는 스위스를 떠날 것이다. 이곳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이 금지된다면 몰라도, 스위스 내의 동물실험 금지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수요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스위스에서 못하는 실험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스위스는 동물실험 규정이 매우 까다로운 곳이다. 스위스에서 동물실험을 하려면 연구자들이 매 실험에 앞서 동물 이용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동물이 받는 고통보다 실험으로 인한 이득이 더 크다는 점도 입증해야 한다. 조건을 갖춰 실험 지원서를 내면 각 칸톤(주) 내 ‘동물실험위원회’에서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이 위원회에는 동물복지 전문가도 포함돼 있다. 이런 곳에서 실험이 금지되고, 규정이 덜 까다로운 곳에서 행해지면 결국 실험 동물들의 고통을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현재 스위스 동물보호법은 2008년 9월 발효된 것으로, 동물을 수백 종류로 구분해 보호하는 방법을 기술한 182쪽에 이르는 문서다. 구체적 내용을 몇 가지 보면 이렇다. 고통 없는 안락사 과정은 전문가만 행할 수 있고, 도축되는 동물이 피를 흘릴 때는 무의식 상태여야 한다. ‘동물의 외모나 능력에 개입함으로써 모욕을 주는 행위’도 금지사항이다. 예를 들어 동물에게 술을 먹인다거나, 털을 염색한다거나, 안경을 씌우는 것이 여기 속한다. 사회성이 큰 동물을 한 마리만 키우는 것도 불법이다. 여기엔 기니피그·생쥐·앵무새·메추라기·잉꼬 등이 포함된다. 집토끼는 처음 8주 동안에는 혼자 놔둬서는 안 되고, 그 이후에도 두 마리 이상을 함께 길러야 한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다른 토끼들의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런 규정을 위반하면 각 칸톤 수의과 부서에서 정한 벌금을 물게 된다. 이 법은 2018년 3월에 개정되었는데, 개정안에는 갑각류 보호 내용이 새로 포함됐다. 스위스 식당에선 살아 있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집어 넣어 요리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불법화했다. 이제는 랍스터를 요리하기 전에 반드시 기절시켜야 한다. 또 신선도 유지를 위해 살아 있는 갑각류를 얼음물에 담가 옮기는 것도 금지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세세한 규정을 읽다 보면 반발심이 들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생도 고통의 연속인데 동물의 고통을 생각할 여유가 있느냐고, 사람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최근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낙마 장면을 촬영하면서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쓰러뜨린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함께 쓰러진 배우의 상태를 우선 확인하는 게 마땅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한국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동물보호법이 촬영 현장에서 무시된 점, 배우와 달리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쳤으므로 악의적 의도가 포함된 학대 행위라는 점은 차치하자. 죽은 말이 불쌍하지도 않으냐며 공감에 호소하는 것도 접어두자.

대신 가장 기본적인 한 가지 원칙에서 출발해보자.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특별한 이유나 명분 없이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부도덕하다(이것은 피터 싱어의 대전제이기도 하다). 동물의 고통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증명된 과학적 사실을 거부한다면, 17세기에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동 기계’라고 했던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로부터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게으른 자일 것이다. 동물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을 위해 동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면, 종이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착취를 정당화하는 종차별주의자(speciesist)일 것이다. ‘종차별’이란 말이 낯설지도 모르나, ‘인종차별’과 ‘성차별’도 한때는 낯선 용어였다. 도덕적 비판이 실종된 채 ‘내가 속한 종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성, 인종 등 모든 차별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1월21일 동물보호단체가 KBS 앞에서 드라마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과연 코끼리는 도구를 쓸 줄 모를까?

때로는 동물의 지능이 인간보다 낮다는 점이 동물 이용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능 평가 기준도 철저히 인간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영장류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저서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에서 인간 중심적 평가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예전 학자들은 코끼리의 도구 사용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코 근처에 막대기를 두었다. 코끼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도구를 쓸 줄 모르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실험 방법을 바꾸니 결과가 달랐다. 코끼리 코가 닿지 않는 높이에 과일을 매달아두고 근처에 상자를 두었더니, 코끼리가 상자를 발로 차서 과일 밑으로 옮긴 다음 그것을 밟고 서서 과일을 따 먹었다. 코끼리의 도구 사용능력을 알려면 코끼리에게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는 게 우선이다. 인간 중심적 시각은 동물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법에 노출된 자연이다.” 프란스 드 발은 이 명제가 물리학뿐 아니라 동물의 마음을 탐구할 때도 성립한다고 말한다.

나는 하루아침에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법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인간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일을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년 한 해 동안 스위스에서 코로나 백신 및 치료제 연구에 쓰인 동물의 개체수는 1328마리, 쓰인 동물의 종류는 생쥐·기니피그·토끼 등이다. 이조차 전체 실험 동물 개체수(약 56만 마리)에 비하면 작은 일부분이다. 피터 싱어의 말대로 “실험실 동물 착취는 종차별주의라는 커다란 문제의 일부를 차지하며, 종차별주의 자체가 제거되지 않는 한 완전히 없어질 것 같지 않은 관행이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책을 통해 20세기의 연구실에서 무슨 일이 행해졌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다른 측면에서는 문명인인 사람들이 자행한 행동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면서 의아해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느낌은 로마 검투사 시합장에서 벌어졌던 잔악한 행위를 알게 되었을 때의, 또는 18세기 노예무역에 대한 글을 접했을 때의 우리의 느낌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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