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전화에 설치된 메신저 앱은 모두 다섯 개다. 와츠앱(Whatsapp), 시그널(Signal), 스리마(Threema), 텔레그램(Telegram), 카카오톡(Kakao Talk)이다. 속한 그룹마다 사용하는 메신저가 달라서 이렇다. 유럽의 지인 대다수는 여전히 와츠앱을 사용한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 단체 채팅방은 시그널에 있고, 보안에 예민한 스위스 친구들 상당수는 스리마로 옮겨갔다. 대학원 동기들은 텔레그램에 모여 수업 정보를 교환한다. 한국의 가족, 친구들과는 카톡으로 소통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내가 어쩌다 메신저를 다섯 개나 깔게 됐을까. 이건 최근 생긴 변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와츠앱 하나면 거의 통했지만 1년 사이 사람들이 쓰는 메신저가 여럿으로 갈렸다. 이 같은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2018년 4월11일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대선 과정에 이용됐다는 의혹 때문에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EPA

‘유럽의 카톡’이라고 할 수 있는 와츠앱은 페이스북 자회사로 올해 초 약관을 개정했다. 모회사 페이스북과 데이터를 공유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공유 정보에는 사용자의 전화번호, 위치 정보, 모바일 기기 정보 등이 포함됐다.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고 와츠앱만 사용하더라도 이런 정보가 자동으로 페이스북에 전달된다는 뜻이다. 개인정보에 관해 사용자들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인 페이스북과 민감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고 하니, 여기에 반발해 와츠앱에서 탈퇴하는 이용자들이 급증했다.

그동안 와츠앱을 사용하며 쌓인 대화 기록과 사진 등의 자료가 있는데 그것들을 포기하고 다른 메신저로 옮아가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엔 강력한 동인이 작용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처음엔 잘 만들어진 메신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것이 공짜가 아님을, 자신의 데이터를 비용으로 치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데이터를 비용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빅테크 회사들에 주어지는 금전적 이익이 아니다. 미래 신산업의 자원으로 쓰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메신저에서 친구들과 주고받는 사진 파일이나 유튜브 링크, 위치 정보 등은 고스란히 머신 러닝의 자료로 축적된다. 이것은 더 나은 인공지능(AI)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Data is the new oil)’라고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에 석유 에너지가 산업혁명을 이끌었듯이, 지금은 데이터가 디지털 혁명을 이끈다.

데이터와 석유에는 차이점이 있다. 석유의 주인은 명확했고 산유국들은 석유를 팔아 부자가 됐다. 그러나 데이터의 소유권은 그것을 제공한 자가 아니라 수집한 자가 갖는다. 수집자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이른바 ‘빅테크’ 기업이다. 이들은 사용자에게 무료로 G메일, 와츠앱 같은 플랫폼을 제공한다. 플랫폼은 합법적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현대의 인프라다. 고가의 원유 채굴 설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상공간의 플랫폼일 뿐이지만, 이용자들은 자발적으로 이 공간에 모여들어 자신의 데이터를 내놓는다.

문제는 이들 빅테크가 전부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특정 국가가 석유 채굴 인프라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용도 치르지 않고 전 세계 석유를 독점한다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스위스에서 와츠앱의 대안으로 스리마가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스리마는 스위스 회사가 만든 메신저 앱이다. 사용자 관련 데이터를 최소한으로 발생시켜 보안에 강점이 있음을 내세운다. 가입 과정에서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포함한 어떤 개인 식별 정보도 요구하지 않는다. 유료(4스위스프랑, 약 5000원) 앱인데도 201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10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이용자가 급증한 시기는 두 번인데, 첫 번째는 2014년 페이스북이 와츠앱을 인수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2021년 와츠앱 약관 개정 때다. 물론 온라인 메신저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프라이버시를 포기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행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면 미국 회사가 아닌 자국(스위스) 기업이 낫지 않으냐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많은 스위스인들이 스리마로 옮아갔다.

스리마는 스위스 회사가 만든 메신저 앱이다. ⓒEPA

와츠앱 탈퇴 사태는 현재의 미국 중심 빅테크 구도에 어떠한 영향도 못 미친 일회성 이벤트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국경을 넘어 프라이버시를 침해받고 데이터를 빼앗기는 상황에 대한 유럽인들의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럽 학계에서 크게 주목받는 미디어 이론 중 하나가 ‘디지털 식민주의(Digital Colonialism)’다. 과거 유럽 제국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화하고 자원을 침탈했듯이, 현재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를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을 이용해 식민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과거 식민주의와 디지털 식민주의의 다른 점

식민화 과정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은 인프라 건설이다. 항로를 개척하고 기찻길을 낸다. 식민지에서 수탈한 자원을 본국에 효율적으로 실어 나르기 위함이다. 21세기의 디지털 식민화 과정에는 항로나 기찻길이 필요 없다. 온라인 플랫폼, 특히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한다. 과거의 동인도회사는 현재의 플랫폼 기업이다. ‘우리가 공짜로 기찻길을 깔아주고 근대화를 이뤄줬으니 식민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현재에도 유령처럼 떠다니는) 주장은 디지털 식민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페이스북이 사명으로 내세우는 ‘모두가 더욱 가까워지는 세상’은 21세기 버전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명의 실제 의미는 ‘모두의 데이터를 더 효율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세상’이다.

디지털 식민지가 종래의 식민지와 다른 점은 과거의 기찻길이 현재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대체됐다는 점 말고도 또 있다. 유럽이 식민화의 주체에서 대상으로 전락한 점이다. 식민화 전문인 유럽이 어쩌다 이 좋은 기회를 두고 제국의 지위를 잃었나. 왜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은 모두 미국에 있나. 이유를 하나로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대충의 흐름은 있다. 미국은 단일 시장이고, 유럽은 유럽연합(EU)이라는 기구가 있긴 해도 각국의 시장 및 규제 상황이 제각각이다. 더 쉽게 돈이 벌리는 시장인 미국에 벤처 캐피털이 몰린다. 자금이 집중되는 곳에는 인재도 모이기 마련이고, 점차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나타난다. 가끔 유럽에서 그럴싸한 서비스가 등장해도 미국 기업에 먹히는 일이 다반사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인기를 끌고 있는 독일 드라마 〈빌리언 달러 코드〉는 독일 엔지니어들이 1990년대에 내놓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나중에 ‘구글 어스’(전 세계 지리 정보를 위성사진으로 볼 수 있는 구글 서비스)에 이용됐다며 법정 소송을 진행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는 건 전 세계 경제 권력의 구도가 재정비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재정비되는 건 경제 권력만이 아니다. 법 권력의 구도도 바뀌고 있다. 올해 1월 트위터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정지시킨 일을 떠올려보자. 미국 의회 난입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이를 선동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독일 메르켈 총리는 트위터의 조치를 두고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메르켈 전 총리는 난민 정책 등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했지만, 그와 별개로 민간기업이 민주사회에서 선출된 대표의 입을 막아버린 건 지나치다고 보았다. 피해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씩이나 되니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지,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불명확한 이유로 하루아침에 유튜브 계정이 삭제되고 오래 쌓아올린 콘텐츠가 흔적 없이 사라져 절망하는 사람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이용자의 국적과 그곳의 법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메르켈 전 총리로 대변되는 유럽 사회에서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플랫폼 기업의 이용약관이 국가 법규에 우선하는 현실, 빅테크 기업들이 이미 법역(法域) 외 통치 중인 세상은 ‘코드가 법이다(Code is law)’라는 경구로 압축된다.

한국은 어떨까. 미국 빅테크 제국이 손길을 뻗치지 않는 영토는 없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식민주의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특히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지나친 규제 때문에 혁신 사업이 막히고 외국 기업에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때로 사실이다. 그러나 시야를 전 세계로 넓혀 보면 한국의 ‘지나친 규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디지털 식민주의를 막아내는 효율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한국의 ‘3단 장벽’에도 장점이 있다

지난 8월 말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속칭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또는 ‘구글 갑질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인앱결제(온라인상에서 유료 콘텐츠 앱을 구입할 때 구글이나 애플 같은 앱 마켓 사업자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통해서만 결제하도록 하는 방식)’를 강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 게임 앱을 구입할 때 그동안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그것도 수수료 30%까지 내면서 해야 했지만, 9월14일 법 시행 이후 이 상황은 달라졌다. 인앱결제의 부당함은 빅테크의 본고장인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지적돼왔지만 법으로 이를 금지한 건 한국이 최초다. 법 통과 소식을 유럽과 미국에서 비중 있게 보도한 이유다.

8월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구글 갑질 방지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연합뉴스

〈포브스〉는 법이 통과된 당일 ‘한국이 앱스토어 결제 시장에서 구글과 애플의 독점을 막는 최초의 국가가 되다’라는 기사를 냈다. 유럽연합의 주요 정책을 보도하는 매체 〈유랙티브(Euractiv)〉는 업계 주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을 내걸었다. “한국은 우리가 애플, 구글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디지털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한국의 힘이 규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이미 내재하는 경쟁력이 있다. 스스로 경쟁력이라고 인식조차 하기 힘든 이 특징은, 지리와 언어다. 우리는 흔히 인터넷이 공간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새로운 온라인 서비스는 태평양 아래에 파묻힌 파이프와 현지 서버 신·증축을 통해 한국에 전달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자리한 한국의 지리적 고립성은 미국 대륙의 새로운 서비스가 도달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준다. 한국어라는 막강한 언어장벽도 빅테크의 침입을 주춤하게 만든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 고유의 검색엔진(네이버), 지도 서비스(카카오맵), 메신저(카카오톡), 심지어 오피스 도구(아래아한글) 등이 굳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지리·언어·규제의 3단 장벽 덕이다. 이 3단 장벽이 한국을 세계적 IT 선도 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될까, 아니면 디지털 식민주의에 맞서는 무기가 될까. 우리에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규제 대 혁신’이라는 틀을 벗어나, 디지털 제국의 침입하에서 자국민의 데이터라는 귀중한 자원을 지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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