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김기택씨(송강호) 가족의 이야기다. 그들을 따라 우리는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들어가 삶의 돌파구를 찾는다.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릴 땐 같이 즐겁고, 곤경에 빠지면 함께 당황한다. 〈기생충〉은 그렇게, 내 삶을 자조하는 블랙 코미디이자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이 담긴 슬픈 우화가 되었다.

같은 이야기를 박 사장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어떨까. 게으르고 가난한 자들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부를 노리고 우리 가족의 뒤통수를 친다. 괜히 호의를 베풀다가 위험에 빠졌다. 손쓸 틈도 없이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었다. 공포영화도 이런 공포영화가 없다.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작 〈뉴 오더〉는, 말하자면 박 사장네 가족을 주인공으로 다시 만든 ‘마라맛 〈기생충〉’이다. 빈부격차의 풍경이 한국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멕시코가 배경이다.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의 상징 녹색 페인트가 도시 곳곳에 흉한 얼룩을 만들어가는 어느 날. 무장 경호원들이 지켜주는 호화 저택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한창이다.

뒤늦게 도착한 여성 하객의 목덜미와 옷자락에 녹색 페인트가 묻어 있다. 오는 길에 시위대를 마주쳤다고 했다. 하지만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우리랑은 상관없다고, 모두들 안심하며 다시 웃고 떠들고 마시고 춤추고 있을 때였다. “당신들 뭐야? 여기서 뭐 해?” 소리치는 집주인 때문에 모두가 쳐다본 담장 앞에 녹색 페인트 범벅의 시위대 두 명이 서 있다. 그 뒤로 이제 막 담장을 넘어오는 시위대 두 명. 마당 안쪽에서 걸어 나온 또 다른 시위대 손에는 총까지 들려 있다. 재빨리 달려온 경호원들의 총구는 뜻밖에도 하객들을 겨눈다. 탕! 탕! 탕! 겁에 질린 신랑이 신부 마리안(나이안 곤살레스 노르빈드)을 찾아보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된다

사라진 신부. 쌓여가는 시신들. 귀중품을 쓸어 담으며 주인집 식구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가사 도우미. 영화는 이제 고작 25분이 지났고, 아직 60분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가차 없고 무자비한 스토리텔링이 관객의 멱살을 잡아채 질질 끌고 간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는 충격과 공포의 엔딩을 향해.

〈기생충〉이 박 사장 가족과 기택씨 가족의 발아래 숨어 있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 이야기가 흘러내린다면, 〈뉴 오더〉는 서로 대립하는 부자들과 빈자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의문의 존재들’로 이야기를 피워 올린다. “〈기생충〉보다 신랄한 계급 우화”로 평가받은 이유다. 코미디를 뺀 〈기생충〉. 쉼터 없는 피난처. 멕시코가 배경이지만 대한민국이 배경이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영화 속 거리를, 당신은 겁에 질려 걷게 될 것이다.

아, 그리고 내가 감지한 영화의 시각적 힌트 하나. 신부의 붉은 정장, 시위대의 녹색 페인트, 시신을 덮은 흰색 천. 영화를 지배하는 세 가지 색은 멕시코 국기에 담긴 세 가지 색깔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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