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륵. 자지러지는 여자아이들 웃음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교복 입고 다니는 학생 신분이 오늘로 마지막인 모양이다. 친구 넷을 세워두고 태희(배두나)가 사진을 찍으려 한다. 배경이 별로라며 왼쪽으로 옮겼다가 거기도 별로라며 아까 그 자리에 다시 친구들을 세운다. 하나, 둘, 셋. 찰칵!

쨍그랑. 창문을 깨고 세간살이가 내던져지는 어느 낡은 빌라의 아침 풍경이 바로 다음 장면이다. 심하게 다투는 소리를 문 안으로 다시 밀어넣고 집을 나서는 혜주(이요원)의 짜증 섞인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인천에서 서울로, 지루하고 고단한 전철 출근길을 따라 오프닝 크레딧이 화면 이곳저곳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띵동띵동. 연신 벨을 눌러보지만 끝내 열리지 않는 문. 당신 딸이 미워 손녀들까지 외면하신 외할아버지 댁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쌍둥이 자매 비류(이은주)와 온조(이은실). 부아아앙.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덤프트럭을 피해 도망치듯 길을 건너는 지영(옥지영). 방금 회사에서 잘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 길가 담장 틈에서 꺼내져 지영의 품 안에 들어온 새끼 고양이.

여기까지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처음 10분이다. 고작 10분 만에 사랑스러운 새끼 고양이처럼 관객 품을 파고들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영화다. 여느 청춘영화와 달리 파도가 밀려오는 예쁜 해변에 아이들을 세우지 않는다. 대신 크레인이 즐비한 항구로 데려간다. 이 영화가 고른 스무 살의 바다는 그런 곳이다.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옮겨봐도 그 또한 별로라서 결국 어디에 서든 다를 게 없는 바다. 그들의 스무 살이 그 삭막한 바다를 닮았다.

‘그때 스무 살’보다 ‘지금 스무 살’에게

사진에 찍히기보다는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고 싶은 주인공 태희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주는 연출. 까르륵과 쨍그랑, 연이은 두 장면을 여는 상반된 소리로 스무 살의 높낮이를 단숨에 체험하게 만드는 편집. 한껏 부푼 청춘의 마음이 이내 터진 풍선껌처럼 납작해지는 좌절감을 공간으로 구현한 미술과 로케이션. 여기에 필름 카메라로 찍은 촬영과 모임별의 음악까지. 영화의 모든 요소가 마음 맞는 친구처럼 어우러진 이 근사한 작품이 개봉 20주년을 맞이했다.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다시 극장에 걸렸다.

정말 좋아했던 친구를 20년 만에 다시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설렜다. 20대 끝자락에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영화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믿기 힘들 만큼 젊었다. 나는 나이를 먹었는데 영화는 단 한 살도 먹지 않았다. ‘그때 스무 살’ 관객보다 오히려 ‘지금 스무 살’ 관객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 내 품 안의 고양이 같은, 자꾸 들여다보고 어루만지고 싶은, 그 온기와 생기 덕분에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런 영화.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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