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밟힌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어차피 이리저리 밟히며 사는 인생, ‘이왕이면 눈에 밟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발에 밟히면 노려보지만 눈에 밟히면 돌아보니까. 쉽게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자꾸 마음이 쓰이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안 보이면 잊히는데, 눈에 밟히는 것들은 안 보일수록 더 보고 싶어지니까.

영화 〈스틸 라이프〉(2013)의 주인공 존 메이(에디 마산)가 그런 사람이었다. 쉽게 곁을 떠날 수 없고 자꾸 마음이 쓰이는 사람. 그래서 자꾸 눈에 밟히는 사람. 고독사로 세상 떠난 이의 유품을 정리하고 정성껏 추도문을 써주는 게 그 사람 일이었다.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는 죽음을 대신 슬퍼해주고,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을 혼자 기억해주는,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 차 공무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쓰이는 예산을 낭비라고 생각한 구청이 그를 해고한 날, 또 사람이 죽는다. 마지막이라 처음으로,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러주려고, 고독한 죽음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고독하지 않게 해주려고, 혼자 애쓰고 용쓰는 그가 참 아름답고 고마웠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 같은 이 좋은 영화를 그래서 내가 기억해주기로 마음먹었다.

7년이 지났다.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는 그사이 아무 영화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다 기사 한 줄이 그의 눈에 밟혔다.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기 전 자신의 갓난 아들을 위해 새 가족을 찾는다는 기사를 읽자마자”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서른네 번째 생일을 앞둔 아빠 존(제임스 노턴)과 네 살배기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을 생각해냈다.

눈에 밟히고 엔딩에 치여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빠가 아이의 입양 가정을 알아보는 이야기. 어떤 집에 보내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일까, 확신이 서지 않아 매일 흔들리는 아빠의 3개월과,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금씩 이별을 배워가는 아이의 맑은 눈망울이 담겨 있는 영화. 〈노웨어 스페셜〉이 끝난 자리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자꾸 마음이 쓰여 쉽게 곁을 떠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눈에 밟히고 엔딩에 치여서 자꾸 눈물이 차오르는 영화였다.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는 죽음을 대신 슬퍼해주고,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을 혼자 기억해주는 일’은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 차 공무원의 일만은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우리가 늘 기꺼이 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를 입양하는 건 결국 관객이 될 것이다. 눈에 밟히는 사람들이 나오는, 눈에 밟히는 영화 한 편을 품 안에 넣으면서, 아이 손을 잡고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그 세상을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내고 싶은가.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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