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자신의 운명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이미지가 아날로그 프린트 속에 존재하던 시절, 사진 속 인물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미래에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연구 자료가 되거나 사진집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상상하지 못한 채 카메라 앞에 섰을 것이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이미지의 운명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현재의 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하고, 이미지를 ‘공개’로 설정하여 올리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퍼져 증식되는 이미지들을 채굴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오래전 인류학자들이 먼 땅에 가서 자료를 수집했던 것을 컴퓨터 앞에 앉아 하는 이들은 새로운 종류의 시각 인류학자라 부를 법하다.
네덜란드 비주얼 아티스트 아누크 크라웃호프는 온라인에 존재하는 수많은 춤 영상에 흥미를 느꼈다. 지금은 십여 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춤 영상이 가히 폭발적인 세상이다. 틱톡에 올라가는 짧은 버전부터 그보다 긴 인스타그램 버전, 그보다 더 길게 소비되는 유튜브 영상까지 춤 영상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사용자들에게 노출된다.
SNS 수익 구조의 핵심은 사용자를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춤은 중요한 콘텐츠 중 하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감정과 기분을 전달할 수 있는 ‘언어’인 춤은 특정 문화권을 넘어 높은 조회수를 얻기에 유리하고, 밈(인터넷 2차 창작물)이 되어 퍼져나간다. 작가는 말한다. “춤은 문화, 지리적 위치, 시대를 관통해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 중 하나이다. 우리는 춤추기를 좋아하고, 춤을 출 때 가장 멋진 것은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책이 춤을 춘다면 이런 느낌일까?
다채로운 춤 영상에 매료된 작가는 총 8800여 개의 영상을 수집했다. 그 가운데 1000가지를 추려 영상마다 스크린샷을 찍었다. 다양한 국적의 50여 명에게 춤의 기원, 배경, 의미, 스타일 등에 관한 텍스트를 요청했다. 〈Universal Tongue〉은 이를 한데 모은 책이다.
책은 쿠바의 ‘아바쿠아 춤’에서 시작해 팝가수 저스틴 비버의 공연에 사용된 ‘#Purposetour’로 끝난다. 인종, 대륙, 국가 등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1000가지의 춤은 책 안에서 각각 동등한 분량을 할애받는다. 사실 이 책에는 난생처음 보는 생소한 춤이 더 많다. 이를 알파벳순으로 평평하게 나열함으로써, 어떤 것이 더 대단하거나 어떤 것이 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을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모두 2008쪽인 이 책은 마치 사람의 혀처럼 흐느적거리는 외형을 하고 있다. 책의 단면에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이 프린트되어 있는데, 책을 드는 모습에 따라 폰트의 형태가 달라진다. 책이 춤을 춘다면 이런 느낌일까?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운명을 몰랐을 것이다. 춤추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춤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책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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