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의 영화 속 노동 현장은 주로 막차 시간 이후 펼쳐진다. 노동자들의 일상을 5~10m 정도 떨어진 공간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네마달 제공

영화 〈언더그라운드〉에는 배경음악이 없다. 경쾌한 리듬도 구슬픈 곡조도 깔리지 않는다. 쇠를 긁고 철문을 들어 올리며 기계를 삐걱대는 소리만 들린다. 관객 대부분에게 낯선 소리, 일상에서 접하면 자리를 뜨게 하는 소리이다. 하지만 영화 속 ‘소음’은 끈질기게 관객을 따라붙는다. 밀폐된 지하에 울려 퍼지는 쇳소리가 조금 익숙해질 때쯤, 매일 이 소리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무심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8월1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김정근 감독은 전작 〈버스를 타라〉(2012), 〈그림자들의 섬〉(2014)에서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를 다뤘다. 〈언더그라운드〉 역시 ‘노동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있다. 철도에 대한 감독 개인의 관심이 더해졌다. “일종의 ‘철도 덕후’이다. 열차만 보고서 연식을 맞히는 정도는 못되지만,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철로 만든 구조물을 다루는 게 흥미롭다. 열차·비행기·배 등등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계에 대한 어떤 경외심이 있다.” 제작 초기 단계부터 제목은 〈언더그라운드〉로 점찍었다. ‘땅 아래’와 ‘비주류’라는 뜻을 결합한 중의적 제목이었다. 조직된 노동자보다 더 아래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하’라는 공간을 통해 담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은 전작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해 아쉬웠던 문제다.

일반 관객에게는 정규직·비정규직 이전에, ‘지하철 노동’이 정확히 어떤 일인지 상상하는 것부터 까다롭다. 지하철 일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매표소 직원들은 무인 발권기로 대체되었다. 차량을 운전하는 기관사나 쓰레기통을 비우는 청소 노동자는 아주 가끔,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갈 뿐이다. 급격한 기계화나 이용자의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시간대에 일을 해서다. 영화 속 노동 현장은 주로 막차 시간 이후 펼쳐진다. 지하철을 자주 타는 사람일수록 낯설게 보일 법한 광경이 많다. 물과 세제로 플랫폼을 가득 채우고, 선로 위에 선 사람들이 스크린도어를 열어둔 채 점검한다. 기관사의 퇴근길도 이색적이다. 열차를 ‘주차’한 뒤, 지하의 선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서 퇴근한다.

감독이 영화의 템포를 의도적으로 늦춘 까닭

‘지하철 영화’라는 말은 급박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예컨대 출근길의 직장인들이 만원 열차에 급히 뛰어오르는 장면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적이고 느리다. 해체된 차량, 열차 없는 선로, 폐쇄된 역사 등 일반인이 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주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영화는 ‘의도적으로’ 템포를 늦춘다. 플랫폼에 들어오는 열차나 차창 밖 풍경이 아니라 기관사의 얼굴에만 초점을 맞춘다. 무표정하게 안내방송을 하고, 다시 전방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김정근 감독 설명에 따르면 느린 템포는 조장한 게 아니라 살린 것이다. “빠른 템포로 편집할까 생각도 했다. 쇠를 조립하는 과정에 격한 드럼 비트도 넣고 해봤는데, 실제 현장의 리듬은 그렇지가 않다. 나도 5년간 신발 공장에서 일했는데, 공장 일 해본 사람은 그곳의 속도가 어떤지 안다. 느리고 지루하게 흘러간다. 관객에게 간접 체험해보라는 의미에서 살렸다.” 영화에는 배경음악뿐만 아니라 내레이션도, 자막도 없다. 클로즈업도 드물다. 노동자들의 일상을 5~10m 정도 떨어진 공간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퀴퀴한 지하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날것 그대로의 일상이 보인다.

〈언더그라운드〉의 한 장면. 지하철역 청소 노동자들은 잠깐 쉴 때 20여 명이 모로 누워 잠든다. ⓒ시네마달 제공

카메라가 가장 집요하게 관찰하는 이들은 지하철역 청소 노동자들이다. 연두색 유니폼을 입은 청소 노동자의 뒤를 따라가며 촬영하는 장면이 있다. 이들이 쓰레기통을 들고 이동하는 동안 주변의 시민들은 몸만 틀어 비키거나 더러운 것을 발견한 듯 깜짝 놀라며 피한다. 김정근 감독은 현장에 가서 이들을 촬영할 때마다 가슴에 남는 게 있었다고 했다. “조금만 일을 하지 않아도 금방 티가 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말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고, 잠깐 쉴 때는 20명이 모로 누워 잠든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유령처럼 취급받는다.” 그런데 영화 속 청소 노동자들은 서러움을 토로하지도 불만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얼굴에 생기가 돈다. “예전엔 청소한다고 남들에게 말도 못했는데, 지금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청소하는 사람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대걸레를 든 채 감독을 딱하게 쳐다보며 “이것(영화 촬영)도 힘들제? 대박 나소”라고 말하는 이도 나온다.

영화 속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자신의 몫이 충분하지 않다며 정규직을 향해 무언가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일이 고되지 않거나 대우가 좋아서가 아니다. 다만 이들은 뭔가 억눌려 있거나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서울에서 온 민주노총 간부가 노조 설립을 권하고 구호를 외치자고 해도 수줍은 듯 웃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비정규직 정비사 한 사람은 반농담조로 자책에 가까운 말을 한다. “한참 일하다가 정직원분을 보니 웹툰을 계속 보고 있더라. ‘공부 좀 열심히 해서 나도 저렇게 할걸’ 싶었다. 물론 그분은 그 당시에 일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반감을 두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제 밥그릇이 작다고 생각한다. 옆에서 배고픈 놈이 숟가락 얹는 격인데 누가 좋아하겠나?”

김정근 감독은 정규직 노동자도 인터뷰했다. 하지만 영화에는 거의 넣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그들의 말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물기’가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좋은 공무원’으로 살아가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나 시혜적 태도인 사람들이 많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170만원으로 4인 가족이 먹고사는 어려움을 말하는 동안, 20대 초반에 기관사가 된 젊은 정규직 노동자는 여윳돈으로 경험 삼아 비트코인을 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도 넣어 영화를 “더 뾰족하게” 만들려다가 개인에게 원망이 갈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러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는 유일한 정규직 인터뷰이는 나이 든 기관사이다. 그의 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나 지하철 노동, 나아가 점차 무인화되는 산업 전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 매표소는 1~2년 정도 외주 인력을 고용했고, 기계화로 대체하면서 그것도 완전히 없앴다. 매표소 외에 다른 야간작업도 부분 부분 외주화해왔다. 기관사는 양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외주가 힘들 것이라고 봤는데, 우리에게는 무인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기관사 또한 기계화나 외주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반쯤 체념한 듯한 얼굴로 “안타깝지만 세상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현장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다룬다. 지하철 보수 현장을 견학하는 부산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현장 노동자들과는 다른 ‘관찰자’이지만, 단순한 외부자는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지하철 노동자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될 이들이다. 평소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던 학생들도 현장학습 도중에는 진지한 얼굴이다. 몰입한 나머지 입을 벌린 채 지하철 노동자들을 구경하는 학생도 있다.

“누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다 티 나요”

관객을 당황케 하는 장면도 있다. 현장을 쭉 둘러본 학생 한 명은 감독과 인터뷰 도중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정규직은) 운전하시는 분, 차 타고 철로 닦는 분. 비정규직은 두 발로 걷고 일일이 손으로 건드리는 분들…. 누가 정규직이고 뭐가 비정규직인지 다 티 나요.”

노동자들이 그렇듯 카메라 앞에 선 학생들 역시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누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알 것 같다’고 내뱉은 뒤 입술을 앙다물 뿐, ‘정규직으로 일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학생은 “부모님은 내가 현장직이 아닌 사무직을 택하길 원하셨다”라고도 말하지만, 영화에서 특별한 갈등은 불거지지 않는다. “‘뚜껑 열리는’ 포드 머스탱이 드림카이다”라고 말하지만 “못 사요. 진작 포기했어요”라고 곧바로 덧붙인다. 김정근 감독은 “이 친구들은 공부도 웬만큼 한다. 다만 가정형편이 안 좋은 경우가 많고, 철이 일찍 든 것이다. 대학 가서 미팅하는 게 아니라 빨리 좋은 현장에 가서 일 잘하고 돈 버는 게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영화 속 학생들을 차기작 주제로 삼아 촬영 중이다. “〈언더그라운드〉 촬영 후 구의역 김 군 사망사고가 터졌다. 그간 나이 든 노동자만 다뤘는데, 노동 초입의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탄생’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려 한다.”

김정근 감독(사진)은 전작 〈버스를 타라〉, 〈그림자들의 섬〉에서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를 다뤘다. ⓒ시사IN 신선영

김정근 감독은 ‘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언더그라운드〉를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지하철 비정규직 노동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도 않고, 정규직에 비해 별다른 숙련이 필요 없는 일도 아니다. 영화는 ‘현장’ 구석구석을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능숙하게 떠받들고 있는지 보여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두고 ‘무임승차’라고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김 감독의 ‘타깃 관객’이다. “지하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일에 만족하는 편이다. 고되고 불합리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어떤 초연함·덤덤함을 보인다. 격정이 아니라 ‘내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라는 자기반성이 먼저 나온다. 자신이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있는 사람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매도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영화는 등교하는 부산공고 학생과 퇴근하는 나이 든 기관사를 번갈아 보여주며 끝이 난다. 기성세대가 정년과 기계화에 밀려 퇴장하고, 꿈에 부푼 젊은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영상 속 지하철 노동은 몹시 고되어 보이고, 노동자들의 삶은 매일 녹록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면에 비친 이들의 얼굴은 대체로 담담하고, 더러는 미소까지 조금 머금은 모양새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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