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사랑한다. 오래됐다. 산 자의 집만큼이나 자주 죽은 자의 집을 찾는다. 결국 나도 가야 할 곳이기 때문일까. 그 모양이 봉분이든, 유골함이든, 바람에 날아갈 뼛가루든.
무덤에 관한 오래된 기억 둘을 품어왔다. 어릴 적이었다. 시골 큰아버지 댁에 놀러 갔다가 마을 아이들이 커다란 산소에서 미끄럼 타며 노는 걸 보았다. 도시에서 자란 내게 그 모습은 충격이었다. 무덤이란 삶의 공간과 따로 떨어져야만 하는 죽음의 자리, 백 년 묵은 여우가 입가에 피를 묻힌 채 캥캥대고, 원한 사무친 이들이 흐느끼며 배회하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소름 끼치는 곳인데 거기서 즐겁게 미끄럼을 타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아이들아, 귀신의 저주가 두렵지도 않니. 삶 곁에 죽음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 내겐 공포였다.
꼭 30년 전,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대절버스를 타고 내려간 곳은 망월동이었다. 어두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월 오후의 침묵과 울음들. 수많은 무명의 죽음을 마주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 머리를 채운 건 지겨움이었다. 저렇게 죽어도, 이렇게 울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 지긋지긋함.
무덤을 무서워했으나, 어쩌다 무덤을 사랑하게 되었고, 이제는 시시때때로 무덤가를 헤맨다. 끝내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오래전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할 때 석사학위 주제 또한 무덤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학위도 집어치우고 이른바 ‘작업 전선’에 섰을 때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거리와 무덤이었다. 둘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다운 삶을 가장 강렬하게 꿈꿨던 이들이 거리에서 외치다, 싸우다 삶을 다(하지 못)하고 묻혀버린 광주 망월묘역, 마석 모란공원, 양산 솔밭공원에서 나는 놀았다. 무례하게 놀았다. 사진기를 들고. 늦은 밤까지 놀다가 미쳤냐는 소리도 들었다.
이름 없는 박씨의 삶
날아간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제 몸을 활시위에 얹어 날렸던 사람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사람들.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이었다. 평범한 이웃이어야 했다.
모란공원묘지의 가을은 서늘하다. 뜨겁게 외치다 간 열사들의 무덤 사잇길을 걷다가 한 번씩 들르는 곳이 있다. 어머님 밀양 박씨의 무덤, 자식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1903년에 태어나 1972년에 돌아가신 어머님 묘비의 뒷면엔 자식과 손자의 이름만 적혀 있을 뿐 당신의 이름이 없다. 묘비에 새겨진 정갈한 글씨가 눈을 붙들고, 이름 없는 박씨의 삶이 생각을 붙든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결국 죽는다는 ‘그냥 사실’ 앞에서 이런 삶과 저런 삶, 이런 죽음과 저런 죽음의 구분은 무의미할까. 우주의 관점에선 그럴 것이다. 허나 나의 관점에선 아직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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